[산재] "산재와 인과관계 없는데 마지막 사업장 기준 평균임금 산정 위법"

[서울행정법원] "인과관계 있는 사업장 임금으로 산정해야"

2024-09-24     김덕성

A씨는 B사, C사 등에서 약 37년 동안 그라인딩, 신호수 등의 업무를 하면서 분진에 노출되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진단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신청, 근로복지공단이 A씨의 마지막 분진작업 사업장인 C사의 임금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한 후 이를 토대로 산출한 장해급여를 지급했다.

A씨는 그러나 가장 장기간 근무한 B사의 임금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균임금 정정과 보험급여 차액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2023구단73161)을 냈다.

A씨는 B사에서 34년 6개월간 그라인딩 업무를 하다가 퇴직한 뒤 C사 등에서 신호수 업무를 했다. 그라인딩 업무는 그라인더 등을 사용해 선박 블록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매끄럽게 해주는 업무를 말하며, 신호수 업무는 실내 조립공정에서 무전기, 호루라기를 이용해 천장 크레인 등을 통해 자재와 공정 도구들을 지정된 장소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신호를 하는 업무다.

서울행정법원 이용우 부장판사는 8월 21일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과 보험급여 차액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판사는 "근로자가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진폐 등 직업병 진단이 확정되어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그 기준이 되는 퇴직일은, 원칙적으로 그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업무를 수행한 사업장들 중 직업병 진단 확정일에 가장 가까운 마지막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두60380 판결 참조)"고 전제하고, "다만, 이는 해당 근로자가 근무한 복수의 사업장들 모두가 직업병의 발병 또는 악화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만일 이러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사업장이 어느 하나로만 특정된다면, 이때는 당연히 해당 사업장에서 퇴직한 날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만연히 마지막 사업장을 적용사업장으로 하여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또 "진단 시점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직업병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받은 임금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도록 한다면,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그 직업병 진단 직전에 근무한 사업장이 어디인지라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사업장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업무상 재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원고가 B사를 퇴직한 이후에 수행하였던 신호수 업무 역시 분진 등 유해요소에 노출되는 작업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이 중 C사 등 4곳에서 각 근무한 기간은 짧게는 9일, 길게는 27일에 불과하여, 적어도 위 4곳의 사업장에서의 업무수행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상당한 기여를 곧바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적어도 원고가 C사에서 수행한 업무와 원고의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피고는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제대로 살피지 아니한 채 C사가 원고가 근무한 마지막 사업장이라는 편면적인 이유만으로 이를 적용사업장으로 삼겠다는 입장 하에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원고가 B사에서 수행한 그라인딩 업무는 금속 분진 등에 직접 노출되어 지근거리에서 분진을 흡입하게 되는 반면, 이와 비교하여 그 후로 원고가 수행한 신호수 업무는 비록 분진에 노출되는 것 자체는 그라인딩 업무와 동일하지만 주변에서 용접 및 그라인딩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발생하는 분진을 일정 거리를 두고서 간접적으로 흡입하게 되는 것이어서, 위 두 가지 업무 중에서는 그라인딩 업무가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보다 많은 원인을 제공하였을 개연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원고는 B사에서 위와 같이 분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그라인딩 업무를 수행한 기간은 약 34년 6개월에 이르고, 위 회사에서 퇴직한 후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2014. 8. 27. 폐기능검사의 이상결과가 나오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이 사건 상병의 발병이나 악화에 가장 직접적인 기여를 한 사업장은 B사라고 볼 여지가 많고, 이 사건 상병은 진폐증과 마찬가지로 분진 노출 후에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특징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피고 원처분기관은 이 사건 처분을 하기에 앞서,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문기관의 역학조사를 따로 거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 사건 상병과 상당인과관계가 가장 높은 사업장이 어디인지를 살피는 과정을 밟거나 이를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도 아니한 채 상병 발생에 주된 원인을 제공한 사업장이 어느 곳인지를 알 수 없다고 쉽게 단정하고서 피고의 지침 내용에 의존하여 마지막으로 유해요인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인 C사를 적용사업장으로 인정하였는바, 이 사건 처분에 관하여 위와 같이 피고 원처분기관이 업무를 처리한 방식은 그 자체로 객관성과 합리성이 흠결되어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더보상이 A씨를 대리했다.

판결문 전문은 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 참조.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