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중앙선 침범 사고'라고 중과실 단정 곤란
[대법] 피해자 손배청구권 채무자회생법상 면책 인정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 566조 4호는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앙선 침범 사고를 낸 채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채무자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비면책채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1997년 1월 오전 10시쯤 부모의 차량을 운전해 서울 종로구에 있던 청계고가도로의 편도 3차선 중 1차로를 진행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에서 진행하는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피해차량에 타고 있던 3명 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동부화재해상보험이 피해자들에게 보험금 4,500여만원을 지급한 뒤 사고를 낸 A씨를 상대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행사하는 소송을 냈고, A씨는 청구를 인낙했다. 동부화재가 소멸시효 중단과 연장을 위해 A씨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내 2012년 9월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런데 A씨가 법원에 파산과 면책을 신청해 2015년 6월 면책결정이 확정되었고, 면책 대상 채권자목록에 동부화재의 채권도 포함되었다.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2020년 2월 동부화재로부터 채권을 양수한 뒤 A씨를 상대로 양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동부화재의 채권은 면책결정에 따라 면책되었다'는 A씨의 본안전 항변을 배척하고,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의 청구를 인용했다. 사고가 고가도로에서 상당한 속도로 차량을 운전하다가 1차로로 진입하는 다른 차량을 발견하고 핸들을 과대 조작하여 중앙선을 침범한 A씨의 과실로 발생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채권은 채무자회생법 566조 4호에서 규정한 비면책채권인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그러나 5월 17일 A씨에게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지 않아 이 사건 채권은 비면책채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3다308270).
대법원은 먼저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의 하나로 규정한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중대한 과실'이란 채무자가 어떠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만연히 계속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어떠한 행위를 하였더라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쉽게 회피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등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3353 판결 참조)"고 전제하고, "이때 채무자에게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주의의무 위반으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사고가 발생한 경위, 주의의무 위반의 원인 및 내용 등과 같이 주의의무 위반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제3조 제2항 단서는 중과실이 아닌 경과실로 중앙선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음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채무자가 위 조항 단서 제2호에서 정한 중앙선 침범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규정하는 중대한 과실이 존재한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피고가 약간의 주의만으로도 쉽게 피해자들의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여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는 고가도로 1차로를 주행하던 중 차로에 다른 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하였다. 위와 같이 피고는 다른 사고의 발생을 피하려는 과정에서 중앙선을 침범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피고는 사고 당시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하여 주행하지 않았고, 그밖에 다른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해자들 중 1명이 사망하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사정은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중한 정도'에 관한 것으로서 채무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직접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