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정신과 치료 전력 없어도 사망보험금 지급해야"
[대법] "우울장애 유사 증상…면책약관 비해당"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더라도 우울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되어 보험사 면책약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5월 9일 숨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근로자 A(여)씨의 남편과 두 자녀가 현대해상화재보험 등 보험사 5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의 상고심(2021다297529)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2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해 안방 욕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수사기관은 A씨가 육아와 회사 업무를 병행하며 업무상 스트레스와 육아휴직 문제 등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다가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업무상의 사유로 정상적인 인식(판단)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재해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A씨가 가입한 현대해상 등 5곳의 보험사가 A씨의 남편과 두 자녀의 보험금 지급청구에 대해서 'A씨가 심실상실에 따른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하자 A씨의 남편 등이 소송을 냈다. A씨가 든 각 보험계약의 약관은 '회사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보험사 5곳에 총 1억 8,9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다고 진단을 받거나, 그런 질환 관련하여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며 A씨의 사망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서 각 보험계약에서 정한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다시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먼저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는지와 관련하여, 사망한 사람이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였다고 볼 만한 의학적 견해가 증거로 제출되었다면 함부로 이를 부정할 수 없고, 그러한 의학적 소견과 다르게 인과관계의 존부를 판단하려면 다른 의학적 · 전문적 자료를 토대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주요우울장애 진단을 받았거나 관련된 치료를 받은 사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사망한 사람의 나이와 성행, 그가 자살에 이를 때까지의 경위와 제반 정황, 사망한 사람이 남긴 말이나 기록, 주변인들의 진술 등 모든 자료를 토대로 사망한 사람의 정신적 심리상황 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망한 사람의 주요우울장애 발병가능성 등을 비롯하여 그가 주요우울장애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A가 자살에 이르기 전에 주요우울장애를 진단받거나 치료받은 사실은 없지만 자살에 이를 무렵 극심한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였고 주요우울장애 증상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A의 사망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작성한 심리학적 의견서에도 A에게 주요우울장애가 의심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A가 자살에 이를 무렵 주요우울장애를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을 여지가 없지 않다"며 "원심으로서는 A가 사망하기 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유족 등 주변인의 진술 등을 비롯한 모든 사정을 토대로 A의 당시 정신적 심리상황 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A의 주요우울장애 발병가능성 및 그로 인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인지 여부 등을 심리하였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생전에 정신질환 진단 또는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사망 직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없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A가 자살에 이를 당시 정신질환이나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 원심의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