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봇물…새 소송문화 열리나

변호사들, '블루오션 찾자' 인터넷에 카페 개설 잇따라1만~3만원에 손배소 제기, 이기면 거액 성공보수 기대관련 기업들 초비상…'위자료 산정기준 현실화' 지적도

2008-06-16     여은미
"옥션 사고와 관련, 2차 소송인단을 모집중입니다. 소송비용은 무료, 성공보수는 배상액의 20%를 받습니다."

"하나로텔레콤 집단소송모임 카페를 개설합니다. 피해를 본 분들에게 실질적인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객정보 유출 등 수많은 피해자가 관련된 대형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들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에 나서는 집단소송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문화의 확산과 함께 변호사들이 집단소송 당사자를 모으는 카페 등을 속속 개설하며 뛰어들고 있어 집단소송이 변호사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함께 연대해 손쉽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어 좋고, 변호사들에겐 집단소송이 또 하나의 블루 오션(blue ocean)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늘어나는 '집단소송 카페'=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다음(www.daum.net)에 들어가 직접 '옥션 소송'이라고 치고, 검색해 보았다. 옥션 해킹 사고는 경매 등을 통해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옥션 사이트가 해킹당해 1000만명이 넘는 고객들의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다. 5월 17일 현재 57개의 카페가 검색됐다. 이번에는 네이버(www.naver.com)에 접속해 같은 말로 검색해 보았다. 32개의 관련 카페가 검색됐다. 옥션뿐만이 아니다. 회사가 고객 정보를 외부업체에 넘긴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인 '하나로텔레콤 정보유출사건'과 관련해서도 다음과 네이버에 각각 20개가 넘는 집단소송 관련 카페가 운영 중에 있다.

일부 카페 회원 30만명 넘어

카페 운영자들은 대부분이 변호사들이다. 인터넷 카페가 집단소송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소송 당사자를 모으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박진식 변호사가 운영하는 다음 사이트의 '옥션정보유출소송모임' 카페와 김현성 변호사가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명의도용피해자모임'카페의 경우 5월 현재 회원수가 이미 30만명을 넘어섰다. 회원 중 상당수가 소송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대략 수십명의 변호사들이 카페를 열어 관련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당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법무법인 남강과 법무법인 한반도, 해냄법률사무소 등 법무법인이나 법률사무소 이름으로 운영하는 카페도 적지 않다. 또 피해자들이 연대해 당사자들을 모은 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모, 백 모 변호사의 경우 옥션의 고객정보 유출로 피해를 보았다는 피해자들이 연대해 설립한 소송카페로부터 사건을 맡아 소송대리인으로 나섰다.

이들 집단소송 카페들의 운영내용을 분석해 보면, 무엇보다도 착수금이 매우 저렴한 게 우선 눈에 띈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는 착수금이 보통 1만~3만원선이다. 이 돈만 입금하면 옥션이나 하나로텔레콤을 상대로 변호사를 선임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경우 착수금만 보통 수백만원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변호사들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당사자 수라고 한다. 당사자가 많아지면 적은 착수금으로도 얼마든지 소송 수행이 가능한 게 집단소송의 특징이다. 한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는 "1명당 1만원의 착수금만 받아도 인지대 등을 내고, 비용이 남는다"고 이쪽 시장의 사정을 전했다. 변호사에 따라서는 아예 착수금을 받지 않고 무료로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없지 않다. 또 한 번의 착수금으로 1심, 2심 등의 구분 없이 상소심 등 소송이 끝날 때까지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도 있다. 일종의 턴키(turnkey) 서비스다.

승소액의 10~30% 성공보수 약정

그 대신 변호사들은 성공보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일종의 실비 명목으로 착수금을 받아 소송을 수행한 후 소송에서 이겨 손해배상을 받으면 그 중 일부를 변호사 보수 등으로 받아내는 방식이다. 성공보수 비율은 대략 10~30%선. 예컨대 손해배상액이 1명당 100만원이면, 변호사가 1명당 10만~30만원을 성공보수로 가져가는 식이다.



◇달라지는 소송문화=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사람이 함께 당사자가 돼 소송을 벌이는 집단소송은 무엇보다도 당사자 수가 많은 게 특징이다. 소송 당사자들로서는 배상액으로 얼마를 받아낼 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서는 상당한 액수의 착수금이 부담될 수 있으나, 비슷한 상황의 피해자들이 함께 연대해 소송에 나설 경우 착수금 부담없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옥션에서 물건을 샀다가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바람에 카페를 통해 소송에 참가한 한 피해자는 카페 게시판에서 "분하고 억울했지만 소송비용 때문에 그냥 넘어가려 했었다"며, "집단소송에 참가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소감을 전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간편하게 소송 진행상황을 체크할 수 있는 점도 인터넷을 통한 집단소송 참가의 잇점. 카페를 통해 소송에 참가하고 있는 한 하나로텔레콤 피해자는 "시간이 절약돼서 좋다. 소송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간편하다"고 말했다.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착수금은 미미하지만, 소송에 이겼을 때의 성공보수는 의외의 수확이 될 수 있어 많은 변호사들이 관심을 갖고 뛰어들고 있다. 개인변호사들 사이에선 집단소송이 새로운 블루 오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위기다. 당사자 수와 손해배상액에 따라 사건의 경제적 가치는 달라지겠지만, 잠재적인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2만명 이상의 피해자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나오고 있다. 손해배상액으로 100만원씩만 받아내도 최소 20억원의 성공보수를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집단소송에 나서고 있는 변호사들은 그러나 배상액과 성공보수라는 장미빛 결과만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집단소송을 우습게 보고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간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코 가볍게 접근할 수 없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위임장만 해도 소송참가인이 1만 명이면 1만장을 출력해야 한다. 이 외에 소장, 준비서면, 증거물 등을 준비하려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위임장엔 당사자의 날인이 꼭 들어가야 해 당사자가 1만명이면 1만개의 도장을 찍어야 한다. 한 변호사는 여섯 명의 직원을 쓰면서도 아침 7시부터 밤 11시, 늦게는 새벽 2, 3시까지 집단소송에 매달리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주말이나 연휴도 모두 반납했다고 한다.

변호사 감시 '안티 카페' 등장

소송 외적인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돈을 받았다는 확인 메시지나 소송진행 절차에 대한 공지가 조금만 늦어도 카페 게시판은 인신공격에 가까운 악플이 난무한다. 최근에는 아예 집단소송 변호사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종의 '안티 카페'도 생겼다.

카페를 운영하며 집단소승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만큼 수입이 많은 게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소송 관련 서류 작성에 드는 인건비는 물론 인지대 내랴, 카페 운영하랴, 적지않은 돈이 들어간다고 볼멘소리를 늘어 놓았다.

집단소송이 진행되는 절차는 비교적 간편하다. 소송에 따라, 카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소송에 참가하려면 카페 게시판에 소송참가신청을 하고 착수금을 입금한 뒤 소장 작성에 필요한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기입한다. 이와 함께 승소했을 때 손해배상액을 입금받을 수 있는 계좌번호와 연락처를 남기면 변호사가 이를 토대로 당사자를 확정, 위임장 작성 등 실질적인 소송절차 진행에 들어간다. 이 모든 절차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게 카페를 통한 집단소송의 특징이다. 사전에 약관을 정해 입금과 동시에 소송을 위임한 것으로 처리해 진행속도를 빨리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원고 확인작업. 변호사들은 액셀프로그램을 응용해 속도와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또 위임장 날인엔 조립식 도장을 이용한다. 물론 사전에 소송참가인들의 승낙을 받는다.

소장, 준비서면 온라인 확인

당사자 입장에서 착수금이 제대로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자동으로 이뤄진다. 카페마다 입금확인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입금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프로그램 창에 기입하면 입금자가 곧바로 입금이 됐는지 알 수 있다. 대입이나 입사시험 합격자 조회와 같은 방식이다.

소장이나 준비서면은 온라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변호사가 작성한 서류를 그림파일 등으로 스캔한 다음 첨부해 카페 게시판에 띄우는 방식이다. 소송참가인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변호사에게 의견도 제시할 수 있다.

집단소송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과 관련, 법조계에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비교적 간편한 방법으로 권리 구제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순기능을 강조한다. 네이버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설창일 변호사는 "집단소송은 피해자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자기권리를 응집된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이라며, "배상액이나 착수금 등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저변에 깔린 순기능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변호사들에게 새 시장으로서의 의미도 적지 않다고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장을 맡고 있는 황도수 변호사는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집단소송은 기업이나 인터넷사업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개미이용자들의 혁명"이라며,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매년 1000명씩 배출되는 변호사들의 과잉공급에 맞춰진 좋은 소송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피고의 위치에 서게 될 기업들에선 비상이 걸렸다. 재판 결과에 따라선 엄청난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옥션 사고의 경우 피해자가 10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피해자 1명당 배상액이 10만원씩만 책정된다고 해도 전체 배상액은 1조를 훌쩍 넘어선다. 한 번 실수로 기업이 존망의 위기에까지 내몰릴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 사건 위자료 20만원

그러나 여전히 미미하기만 한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이 현실화돼야 한다는 등 제도적인 여건이 보완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리니즈2 사건의 경우 법원의 위자료 인정액은 1명당 10만원, 국민은행 고객 정보유출사건에선 1명당 20만원의 위자료가 인정됐다. 한 변호사는 "자동차 손해배상 사건을 제외하면, 사실상 위자료 산정기준이 없는 형편"이라며, "현실적인 정비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수많은 카페의 개설 등 과열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변호사들 사이의 지나친 수임 경쟁이 변호사 윤리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러한 과열 경쟁이 변론의 질 저하를 초래해 피해자 구제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운영하는 집단소송 관련 카페를 사칭해 입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등 부작용도 이미 고개를 들고 있다.

최기철 기자(lawch@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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