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계약서 안 쓰고 제화업체에서 작업했어도 지휘 · 감독 받았으면 근로자"

[서울중앙지법] "퇴직금 지급하라"

2024-05-05     김덕성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김도균 부장판사)는 4월 4일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 제조업체인 A사의 공장에서 갑피, 저부 작업을 수행하다가 2019∼2021년 퇴직한 작업자 15명이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2021가합564798)에서 "원고들은 임금을 목적으로 피고에게 종속되어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피고는 원고들에게 퇴직금으로 각각 7,000여만원∼17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 중 팀장이었던 4명은 서면 또는 구두로 A사와 업무용역위탁계약을 체결하였으나, 그 외 팀원인 나머지 원고들은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로부터 지휘 · 감독받은 사실을 인정, 원고 전원에게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갑피작업은 재단된 가죽을 구두의 형태로 접착과 봉제하는 작업을 말한다. 저부작업은 골에 봉제된 가죽을 씌우고 창을 붙이고 건조하는 작업이다.

A사는 "팀장들과 업무용역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갑피작업과 저부작업을 위탁하였을 뿐 이들을 지휘 · 감독한 사실이 없고, 나머지 팀원인 원고들은 팀장들에 의해 고용되어 팀장들의 지시를 받으며 갑피작업과 저부작업을 수행하였을 뿐이므로, 원고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수행한 갑피작업과 저부작업은 피고의 정규직 직원이 작성한 계량지와 완성품 견본에 따라 이루어졌고, 계량지에는 디자인 번호, 색상, 치수, 수량, 창, 중창, 굽, 내자보드 길이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원고들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며 "피고의 개발실장이나 공장장 등 정규직 직원은 갑피작업이나 저부작업 도중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을 경우 이를 원고들에게 전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들은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지는 않았으나 통상 피고가 정한 계량지의 수량에 따른 작업을 당일에 완료해야 했고, 피고의 구두 제작 과정은 제품 기획 및 견본 제작에서부터 재단, 갑피, 저부, 검품 및 출고 작업이 순차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원고들이 담당한 갑피작업 및 저부작업이 임의로 중단되기도 어려웠다"며 "따라서 원고들의 근무시간은 사실상 피고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고, 원고들의 휴일 및 하계휴가기간 역시 피고의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하게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고들이 갑피작업과 저부작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계, 설비, 원자재 등은 모두 피고가 제공하였고, 이에 원고들은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피고의 공장에 반드시 나와야 했으므로 근무장소도 정해져 있었다. 원고들은 또 자신들이 작업한 구두가 얼마나 판매되었는지, 그로 인한 수익이 얼마인지 등과 무관하게 작업량에 비례하여 보수를 지급받았다.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것 외에 제3자를 고용하여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지도 않았으므로, 원고들이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거나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로부터 고정급이나 기본급 없이 작업량에 단가를 곱한 금액을 지급받기는 하였으나, 위와 같은 보수는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었고, 원고들의 작업량이 피고에 의해 정해졌을 뿐 아니라 단가 역시 원고들과의 협의 없이 사실상 피고가 결정한 것으로 보이며, 근로제공 외에 필요한 자본적 수단들 대부분이 피고에 의해 제공되었으므로, 원고들이 받은 보수는 근로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팀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경우 팀장들의 소개로 피고의 공장에서 업무를 수행하게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①팀장이나 팀원을 가리지 않고 원고들은 피고가 제공한 계량지나 완성품 견본을 보면서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팀장과 팀원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②팀원들도 팀장과 마찬가지로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의 정함이 있었고, 팀장 못지않게 장기간 피고에 전속되어 계속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점, ③피고는 시기에 따라 보수의 지급방법을 달리 하였는데 특정 시기에는 원고들에게 직접 보수를 지급하기도 하였으므로, 팀장들 외에 나머지 원고들의 존재 역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점, ④특히 피고는 팀원들 중 1명에게는 그 요구에 따라 직장가입자로서 건강보험에 가입해 주었을 뿐 아니라 보수를 직접 지급하였고, 또 다른 1명에게는 산업재해 보상금을 수령하도록 도와주기도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팀장들의 근로자성과 팀원들의 근로자성을 달리 볼 만한 뚜렷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며 "따라서 팀장들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아무런 계약서도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