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혼인신고 안한 한 · 중 부부 자녀에 주민등록증 부여했으면 한국 국적 인정해야"

[대법] "국적비보유 판정은 신뢰보호 위반"

2024-04-16     김덕성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한국 국적의 아버지와 중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을 부여했다면 한국 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제때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진 않은 건 맞지만 행정청이 주민등록증을 부여한 이상 한국 국적 보유를 정당하게 신뢰했다는 이유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3월 12일 A(25)씨와 B(23)씨가 "국적비보유판정을 취소하라"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두60011)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 B는 한국 국적인 아버지 C와 중국 국적인 어머니 D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A, B의 출생 당시 C와 D는 법적으로 혼인한 상태가 아니었다.

C는 2001년 6월 A, B에 대한 출생신고를 했다. 그 무렵 A, B가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을 전제로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었으며, 2008년 1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A, B가 한국 국적자임을 전제로 A, B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도 작성되었다. A, B의 부모는 뒤늦게 2008년 12월 혼인신고를 했으나, 관할 행정청은 A, B에 대한 출생신고가 '외국인 모와의 혼인외자의 출생신고'에 해당하여 정정 대상이라는 이유로 2009년 2월 A, B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말소했다. 이에 C가 A, B에 대한 인지신고를 하여, A, B는 C의 가족관계등록부에 C의 자녀로 등재되었으나, 그 국적이 중국으로 표시되었고 A, B의 가족관계등록부는 별도로 작성되지 않았다.

A, B는 각각 17세가 되던 해인 2015년, 2017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출입국 · 외국인정책본부는 2013년 5월과 201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A, B의 부모에게 A, B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음을 전제로 인지에 의한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안내했으나, A, B의 부모는 이행하지 않았다. 어머니 D는 2017년 2월 한국 국민으로 귀화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A, B는 국적 수반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A, B는 성인이 된 이후인 2019년 1월 법무부장관에게 국적법 제20조에 따라 국적보유판정을 신청하였으나, 법무부장관이 A, B가 한국 국적 보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적비보유 판정을 하자 A, B가 소송을 냈다. 국적법 20조 1항은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 국적의 취득이나 보유 여부가 분명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이를 심사한 후 판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국적비보유 판정은 신뢰보호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신의칙에도 위배된다"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 패소 판결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대법원은 국적비보유판정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은 외부에 공시되어 대내외적으로 행정행위의 적법한 존재를 추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행정청이 원고들에게 공신력이 있는 주민등록번호와 이에 따른 주민등록증을 부여한 행위는 원고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공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6두10931 판결 등 참조)"고 전제하고, "비록 원고들에 대한 가족관계등록부가 말소되었다거나 원고들의 부모에게 원고들의 국적 취득이 필요하다는 점이 안내되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에 대한 주민등록이 계속 유지된 이상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공적인 견해표명도 계속 유지되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고들이 미성년자였을 때 자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원고들은 국적법 제3조 또는 제8조에서 정한 간소한 국적 취득 절차에 따라 한국 국적을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나, 원고들이 한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행정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미성년자였던 원고들은 이를 신뢰하여 국적법 제3조 및 제8조에 따른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국적비보유 판정을 통해 원고들은 평생 동안 보유했다고 여긴 한국 국적이 부인되고 그 국적의 취득 여부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신들이 출생하고 성장한 한국에 체류할 자격부터 변경되는 등 평생 이어온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는 중대한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부모에게는, 원고들의 가족관계등록부가 폐쇄되고 출입국 · 외국인정책본부로부터 원고들의 국적 취득이 필요하다고 안내받았음에도 원고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원고들에 대한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으나, 원고들의 부모가 아닌 원고들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안내가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이상 원고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였음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이를 알지 못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원고들에 대하여는 각각 17세가 되던 해에 주민등록증이 발급됨으로써 원고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신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정당하게 신뢰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처럼 원고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신뢰한 데에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원고들의 신뢰에 반하여 이루어진 국적비보유 판정은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