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수급업체가 소유주 동의 없이 전지작업 해 수목 훼손…도급 준 한전 책임 90%"

[정읍지원] "수목 소유자와 미협의 등 중대한 과실 있어 민법 757조 단서 적용"

2024-04-08     김덕성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지작업(나무 가지치기)을 도급받은 업체가 수목 소유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지작업을 해 수목이 훼손되었다. 법원은 전지작업을 도급 준 한전의 배상책임을 90% 인정했다.

한전은 배전선로 근접 수목을 제거해 안정적인 전력공급과 수목 접촉에 의한 고장발생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읍 시내지역과 야외선로 지역 내 수목 약 2,472주에 대한 전지작업을 시행하기로 하고, 2021년 3월 위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을 내용으로 하는 공사입찰 공고를 했다. 한전은 한 달 뒤 낙찰자인 B사와 수목 전지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공사도급계약을 이루는 수목 전지공사 시방서엔 '3. 작업 시 주의사항 타. 사유림은 전지 전 관리자 및 소유자와 협의하여 민원을 예방해야 하며, 특히 과실수와 정원수는 소유주 입회하에 전지하며 민원 발생시에는 시공사에서 책임을 진다', '6. 개인기관 소유의 수목은 반드시 소유주와 협의한 후 전지를 실시토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B사는 2021년 6월 19일 정읍시에 있는 토지에 식재된 A(여)씨 소유의 느티나무와 대왕참나무 등 합계 25그루에 대해 A씨의 동의 없이 전지작업을 실시했고, 그 결과 수목들이 훼손되었다. 이에 A씨가 한전을 상대로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2022가단12839)을 냈다. 조경업자인 A씨는, 정읍시 토지를 임차한 후 그곳에 판매용 조경수인 느티나무와 대왕참나무를 심은 남편으로부터 이를 양수받아 길러왔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김국식 판사는 2월 15일 한전의 책임을 90% 인정, "한전은 A씨에게 1,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 판사에 따르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62조는 '사업시행자는 해당 공익사업을 위한 공사에 착수하기 이전에 토지소유자와 관계인에게 보상액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제38조에 따른 천재지변 시의 토지 사용과 제39조에 따른 시급한 토지 사용의 경우 또는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의 승낙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하여 사전보상 원칙을 규정한다. 그리고 토지수용법상 기업자는 토지수용으로 인하여 토지소유자 또는 관계인이 입게 되는 손실을 수용의 시기까지 보상할 의무가 있고 그 보상금의 지급 또는 공탁을 조건으로 수용의 시기에 그 수용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보상을 함이 없이 수용목적물에 대한 공사를 시행하여 토지소유자 또는 관계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1988. 11. 3.자 88마850 결정 참조).

김 판사는 "이 사건의 경우 피고는 사전보상을 하지 않았고, 원고의 동의를 얻은 적도 없다. 또한 이 사건 수목들의 상태와 피고가 이 사건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을 포함하여 수목 전지공사를 진행한 기간 및 전체적인 경과 등에 비추어 보면, 앞서 본 바와 같은 절차를 거침이 없이 곧바로 이 사건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을 시행해야 할 정도로 긴급성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피고의 이 사건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은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피고는 위법한 이 사건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으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전은 이에 대해 "이 사건 수목들에 대한 전지작업을 도급한 도급인으로서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없으므로 민법 757조에 따라 그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민법 757조는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판사는 이에 대해 "피고는 가로수의 관리자인 정읍시장에 대하여 가로수 및 이 사건 수목들을 포함한 비가로수의 전지작업 허가를 요청하고, 아직 허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목들의 소유자, 관리자와 전지작업에 관하여 아무런 협의가 없었음에도 내부지침(배전선로 근접수목 관리절차서)를 위반하여 공사 발주에 의한 전지작업 시행을 결정하고 수급업체에 수목 전지공사를 도급하여 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이 사건 수목들의 소유자를 알 수 없었다고 하면서도 '관리자 또는 소유자를 알 수 없는 수목을 전지하기 위해서는 관리(소유)자 탐문, 수목전지 협조 안내문(현수막) 게시 등의 사전 준비를 시행한다'라는 내부지침을 준수하지 않았고, 공사도급계약의 시방서에도 위와 같은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위와 같은 사정에 피고의 설립목적 등을 더하여 보면, 피고에게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전은 2021. 2. 15. 정읍시장에 대하여 시내지역, 시외지역에 위치한 수목 2,472본(가로수 344본, 비가로수 2,128본)에 대한 전지작업 시행의 허가를 요청하였으나, 2021. 6. 23. 정읍시가 관리하는 가로수 344본에 대하여만 전지작업 허가가 이루어졌다.

김 판사는 다만, 수목들의 상태와 피해의 규모, 한전의 과실 내용과 정도, 한전의 공익적 동기, A씨와 한전의 경제상태 등을 고려, 한전의 책임을 90%로 제한했다.

박혁 변호사가 A씨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