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⑬ 어소 변호사의 커리어 점검

"좁은 분야 한정된 일만 하고 있다면 전문분야 확대 고민해 볼만"

2023-08-08     김진원

"For Once, Rookie Consultants Don't Have Enough to Do(갑자기 일감이 없어진 주니어 경영컨설턴트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제목이다. 팬데믹 이후 불확실해진 경기 전망으로 미국 기업들의 경영컨설팅 수요가 급감하자 일감 감소로 불안해하는 BCG, 맥킨지, 베인 등 미국의 주요 경영컨설팅 회사 소속 주니어 경영컨설턴트들의 현황을 진단한 기사다.

보도에 따르면, 성취욕이 강한 주니어 경영컨설턴트들은 일을 하면서 항상 "Am I getting the right experience, am I doing the right things, am I going to learn?(내가 적절한 경험을 쌓고 있는가,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가, 업무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가)"를 되뇌며 자신의 커리어 상태를 점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갑자기 일감이 없어지고 한가해지자 커리어 개발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저년차 컨설턴트로 의미있는 경험을 충분히 쌓아야 컨설팅 회사에서 내부 승진을 하거나 기업체, 사모펀드 등 타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는데, 일감 부족으로 충분한 트레이닝 기회가 없어지면서 장기적인 커리어 플래닝이 꼬일까봐 고민한다는 것이다.

◇은정

내가 한국 로펌에서 주니어 외국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자격국인 미국(캘리포니아주)이 아닌 한국에서 일하면서, 나 또한 내가 한국 로펌에서 미국변호사로 연차에 맞는 적절한 경험을 쌓고 있는지,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지,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지 등을 늘 의식했고, 내가 수행했던 업무에 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내 외국변호사 커리어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곤 했다.

오랜만에 그 체크리스트를 꺼내 일반 기업법무 및 M&A(corporate/commercial/M&A) 분야에서 주니어 및 중견 어소 외국변호사로 경험했던 업무 유형을 되짚어봤다. 보통의 경우 같은 업무를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경험해야 연차에 맞는 능숙한 국제법무 전문가로 발돋음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업무 경험이 서로 달라 어떤 것을 축적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나의 경우 어소 변호사 시절 한국변호사들과 협업하면서 외국변호사로서 많이 다뤄본 업무는 외국 회사의 자회사, 지점, 연락사무소 등의 설립, 변경 및 폐쇄를 시작으로 주로 회사법에 관한 업무들이었다. 특히 각종 국제영문계약의 협상, 작성 및 번역에 관한 업무를 많이 수행했는데, 개별적인 계약들은 비밀유지계약, 물품매매계약, 대리상계약, 총판계약, 제조판매 및 물류계약 등 수많은 유형의 계약이 망라되어 있다. 또 기술과 지식재산권, 소프트웨어 등의 라이선스계약도 다뤄보았고, 국제소송 지원, 국제중재 등의 업무도 수행했다.

영문 국제계약, 합작투자, M&A, 법률실사, 외국인투자기업 관련 기업법무는 집중, 반복적으로 많이 처리해 나름 깊이 있는 전문성이 생긴 반면, 조세나 상표출원, 해외증권 발행 등의 일부 업무는 피상적으로 아는 수준이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업무를 접하더라도 그에 관해 어떤 질문을 전문가에게 해야 하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외국변호사로서 경험한 업무들은 한국변호사들이 처리하는 법령 리서치나 국문 의견서 및 소송서류의 작성, 재판실무 등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업무가 한국법을 기반으로 한 영문 의견서와 보고서의 작성, 국제영문계약 협상 및 작성, 각종 문서의 법률번역, 회의 통역, 영어 컨퍼런스 콜과 회의 참석, 국제소송의 영문 현황보고 메일 작성 등 영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한 외국변호사 특유의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내 오래된 체크리스트에는 업무 유형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험한 산업 분야와 수료한 변호사 교육과정도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산업분야는 크게 IT, 금융, 유화, 타이어,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인터넷, 휴대폰, 전력, 광고, 철강, 알루미늄, 제지, 화학, 시멘트, 컨설팅, 다단계판매 등 한국의 주요 산업군이 망라되어 있다. 변호사 교육으로는 각종 국내 및 국제 계약서 작성, M&A, 기업소송, 인사노무, 소송전략, 기업의 자금조달 및 해외증권 발행,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사항, 주주총회 및 이사회 법률 관련 실무과정 등을 틈틈이 수강하고 그 교육과정 이름과 수강날짜를 기록해 두었다.

어소 변호사로 10년간 위와 같이 폭넓은 업무를 처리하고 공부하면서 내 전문분야를 일반 기업법무와 M&A로 설정하고 외국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런 실무 경험과 지식은 이후 다양한 산업군에 속한 국내 외국인투자기업에 파견 및 고용되는 외국 기업인의 취업비자를 취득하는 출입국관리(이민 · 국적) 업무로 전문분야를 더 세밀하게 세울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는 정해진 커리어 트랙이 없기 때문에 의미있는 변호사 커리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항상 "한국에서 내가 외국변호사로 적절한 경험을 쌓고 있는지,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지,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자기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계속 업데이트 해보자. 이렇게 상시적으로 꼼꼼하게 자기 상태를 점검하고 분석하면서 부족한 업무 경험이나 실무지식을 보완하면 한국에서 외국변호사 커리어를 세워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로펌에 입사해 몇 년이 지난 후 자신의 체크리스트를 돌아볼 때 너무 좁은 분야에서 한정된 일만 하고 있거나 그 일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전문분야의 폭을 더 넓혀야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