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사고버스서 내려 고속도로 갓길에 서 있다가 2차 사고…버스운전자도 책임 있어"
[대법] "승객 지위 유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2008-03-17 최기철
대법원 제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2월 28일 사고를 당한 승객과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엘아이지손해보험(주)가 관광버스가 가입한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상고심(2006다18303)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2003년 6월 1일 새벽 0시20분 쯤 영동고속도를 타고 서울에서 강릉 방향으로 2차로를 운행중이던 S여행사 소속 관광버스가 그랜저 승용차와 부딪혀 사고 지점에서 72m 떨어진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해 사고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후 약 10분 뒤 이 모씨가 혈중알콜농도 0.06%의 주취상태로 소나타를 몰고 사고지점 후방에서 접근하다가 사고로 1차로에 서 있던 그랜저 승용차에 추돌한 데 이어 갓길에 정차한 이 관광버스를 덮치면서 관광버스 뒤에 서 있던 김 모, 박 모씨를 치어 박씨가 크게 다치고, 김씨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1달 20일쯤 지나 숨졌다.
김씨의 유족들과 박씨가 관광버스를 상대로 보상금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하자 원고 보험사가 무보험자동차 상해담보약정에 기해 보험금을 지급한 후 관광버스가 가입한 피고를 상대로 구상에 나섰다. 사고 당시 관광버스 운전자 문 모씨는 정차 후 별도의 사고표지판을 세우지 않은 가운데 버스로부터 약 100m 떨어진 갓길에서 손전등을 이용해 뒤 따르는 차량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는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차 사고 후 관광버스의 승객들 대부분은 버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숨진 김씨 등을 비롯한 일부가 관광버스에서 하차하였으나 사고수습 등이 이루어진 후에는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목적지인 강릉으로 가기로 예정된 것으로 보이는 점, 김씨 등이 관광버스에서 하차하여 버스 후방 고속도로 갓길 상에 서 있다가 버스가 정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사고가 발생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김씨 등은 2차 사고 당시 비록 관광버스에서 하차하고 있었지만, 운행 중인 관광버스의 직접적인 위험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승객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로, ▲관광버스 운전사인 문씨가 1차 사고 후 버스를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시킨 다음 사고 수습 등을 위하여 하차하면서 따로 차내 방송 등을 통하여 김씨 등을 비롯한 승객들에 대하여 사고 발생 사실을 알리거나 버스 내부에서 계속 대기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김씨 등을 포함한 승객들 중 일부가 나름대로 사고 상황을 살피기 위하여 버스에서 하차한 후 버스의 후방 갓길에 서서 소지한 라이터 등을 켜들고 진행 차량에 대하여 신호를 보내거나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2차 사고를 당한 점 등도 들었다.
재판부는 "원심이 김씨 등이 더 이상 관광버스의 승객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관광버스의 소유자인 S여행사나 운전사인 문씨에게 2차 사고의 발생에 관련하여 과실이 없다고 보고 S여행사에게 2차 사고에 관련하여 김씨 등에 대하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한 법률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에게 배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3조 단서 2호 소정의 승객이란 반드시 자동차에 탑승하여 차량 내부에 있는 자만을 승객이라고 할 수 없다"며, "운행 중인 자동차에서 잠시 하차하였으나 운행 중인 자동차의 직접적인 위험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자도 승객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는 운행자와 승객의 의사, 승객이 하차한 경위, 하차 후 경과한 시간, 자동차가 주 · 정차한 장소의 성격, 그 장소와 사고 위치의 관계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결정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최기철 기자(lawch@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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