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여성도 제사주재자 될 수 있다"

15년 만에 대법 판례 변경 이끈 김상훈 변호사

2023-06-05     이은재

대법원이 5월 11일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과 제사주재자에 관한 종전 판례를 변경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두 판결 모두 노동법과 친족상속법 분야에서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은, 의미가 큰 판결이다. 각각의 사건에서 원고 측을 대리해 판례 변경에 기여한 두 명의 변호사를 인터뷰해 해당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와 대법원 판결의 구체적인 내용을 상세히 짚어보았다.

그동안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을 승계하는 주체 즉, 제사주재자에 대해 호주상속인→호주승계인→종손→장남 등으로 법률과 판례가 변경되어 왔다. 대법원은 그러나 5월 11일 전원합의체 판결(2018다248626)을 통해 종전 판례를 변경하고,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맡는다는 새로운 법리를 선언했다. 대법원이 스스로 밝혔듯,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계승에 중점을 두었던 관습상 제사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판결이다. 리걸타임즈가 상고심에서 원고 측을 대리해 판례 변경에 단초를 제공한 법무법인 트리니티의 김상훈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상속법 전문가로, 2009년 고려대 법대에서 친족상속법을 연구해 법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당시 법학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도 "제사용재산의 승계에 관한 연구"였다.

고려대 법학박사

-엄청난 변화와 파장이 예상됩니다. 우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요.

"그동안 제사주재자에 대한 법률과 판례가 여러 차례 변화해 왔는데, 이 과정을 보면 결국은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연장자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가 제1순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상훈

-1, 2심에선 종전 판례에 따라 원고 측이 패소했습니다. 나이는 아래지만 장남에게 선친의 유해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원고 대리인으로서 상고심에서 변경된 판례와 같은 내용의 주장을 한 것인가요.

"상고이유서를 제 박사 논문하고 결론을 일치시켰어요. 고인의 배우자를 포함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안마다 법원이 구체적 타당성을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거죠.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별개의견이 상고이유서에서 제시한 주장과 같은 의견을 냈는데, 다수의견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남녀 구분 없이 연장자녀로 못박은 겁니다.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들어 있는 거 같아요."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우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밝혔다. 배우자를 포함한 공동상속인 간 협의가 우선이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녀 중 연장자가 제사주재자가 되는데, 예외를 두어 각각의 사안에 따른 구체적 타당성도 도모하고 있다. 즉,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연장자녀라도 제사주재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특별한 사정의 예로, 장기간의 외국 거주, 평소 부모를 학대하거나 모욕 또는 위해를 가하는 행위, 조상의 분묘에 대한 수호 · 관리를 하지 않거나 제사를 거부하는 행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모의 유지 또는 유훈에 현저히 반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으로 제사를 주재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의 명시적 · 추정적 의사, 공동상속인들 다수의 의사, 피상속인과의 생전 생활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김상훈 변호사는 "판례 변경으로 장남의 누나 즉, 장남보다 나이가 위인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는 큰 변화가 생긴 만큼 관련 분쟁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대법원이 예외로 든, 직계비속 중 최근친의 연장자라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사정을 둘러싸고 많은 분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장남이 장기간 외국에 산 누나를 상대로 "내가 제사주재자"라고 소송을 내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나이가 누나들보다 아래인 미성년의 장남과 장남의 생모를 상대로 낸 유해인도소송이다. 그러나 민법 1008조의3에 따르면,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금양임야와 묘토인 농지 등을 둘러싼 분쟁도 예상할 수 있다.

금양임야, 묘토 분쟁 등 증가 예상

김 변호사는 "금양임야와 묘토인 농지는 공동상속 대상이 아니라 제사주재자의 단독상속재산"이라며 "특히 금양임야나 묘토와 같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이를 단독상속할 경우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제사주재자이고 이 재산은 제사용 재산이라고 주장하면서 분할상속된 부동산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제사용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세무서가 상속세를 부과하면 제사주재자인 상속인이 이 재산은 제사용 재산이라고 주장하며 다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례 변경이 이루어진 이 사건에서, 작고한 A씨의 부인과 장녀(29), 차녀(23)가 "파주시에 있는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안치된 A씨의 유해를 인도하라"며 장남을 낳은 A씨의 내연녀 B씨와 이 추모공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과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종전 판례에 따라 "장남이 제사주재자로서 A씨의 유해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B씨는 장남의 법정대리인으로서 그 유해를 점유 · 관리하고 있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부인과 혼인관계에 있던 중 2006년 11월경 B씨와 사이에 장남(17)을 두었고, A씨가 2017년 4월 사망하자 B씨는 A씨의 유체를 화장한 후 그 유해를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봉안했다.

공익활동으로 상고심 수행

김 변호사는 1, 2심에서 진 이 소송의 상고심에 여러 대리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요청으로 수임료를 받지 않은 공익활동 차원의 상고심 수행이었다.

김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 대학원 시절부터 친족상속법을 전공한 가족법 전문가로,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외에도 녹십자 회장이 장남을 제외하고 다른 가족과 재단법인에 재산을 나눠주도록 유언한 것과 관련, 장남이 재단과 어머니, 동생 등을 상대로 낸 유언무효확인소송에서 수증자인 재단과 어머니, 동생 등을 대리하여 유언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또 2015년 받아낸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이 아니라 계약이기 때문에 위탁자가 유언처럼 철회할 수 없고 특약대로 수익자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유언대용신탁에 관한 첫 판결도 그가 수탁자인 하나은행을 대리해 받아낸 판결이며, 지난해 10월엔 직장 상조금은 조위금과 같은 성격이어 상속재산이 아니라 유족의 고유재산이라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도 이끌어냈다.

딸들이 내는 유류분 소송 많아

한국상속신탁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서강대 로스쿨 등에 출강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가족간 유대 내지 결속감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지고,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개인의 자산규모도 커지면서 상속분쟁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하고, "딸들이 남자 형제를 상대로 내는 유류분 청구 등 상속다툼이 가장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초고령화 시대 진입에 따라 재혼 비율이 늘어나다 보니 전처 소생 자녀들과 재혼 배우자 간 상속분쟁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과거에 비해 유언장을 작성하는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유언의 효력을 문제 삼는 소송도 자주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