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법자문사협회, '성소수자난민 지원 국가정보 리서치' 발간
7개월간 15개 나라 실태 조사, 보고서 완성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동성 간의 합의된 성관계가 불법이며, 적발될 경우 기혼자는 사형 처벌이 가능하고, 미혼자는 태형으로 처벌된다. 또 샤리아법은 옷차림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트랜스젠더의 자기표현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이란 등도 성소수자(LGBTI)의 성적 지향에 해당하는 동성 간 성관계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하고 있으며, 리비아, 모로코, 수단, 알제리, 우간다, 자메이카, 카메룬 등에선 사형은 아니더라도 수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등 동성 간 성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
이처럼 동성 간 성행위 등을 처벌하는 나라에서의 박해를 피해 성소수자들이 한국으로 도피한 경우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외국법자문사협회와 공익법 단체 공감이 5월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에 있는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 회의실에서 '성소수자난민 지원을 위한 국가정보 리서치' 보고대회를 갖고 성소수자난민에 관한 여러 이슈를 점검했다. 보고서 내용을 소개한 코브레앤김의 양지희 미국변호사에 따르면, 이번에 발간된 성소수자 처벌에 관한 국가정보 리서치엔 한국에서 성소수자 비호를 위한 난민 신청이 많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이집트를 포함하여 모두 15개국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과 동성 간 성행위 등에 대한 처벌 정보가 정리되어 있다. 외자협 소속 외국법자문사들이 나라별로 나눠 지난해 9월 리서치를 시작, 7개월여만에 완성한 공익활동의 산물이다.
외자협 복지 · 사회환원 공동위원인 코브레앤김의 백재형 미국변호사는 "영미 로펌 서울사무소 소속의 외국법자문사와 애널리스트들이 나라별로 꼼꼼한 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취합해 전체 보고서를 완성했다"며 "성소수자의 난민 지위 인정 등을 위해 노력하는 공감 등 공익법 단체와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변호사 등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경우 동성애는 1993년도에 비범죄화 되었으며 더 이상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정신질환으로 간주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사회는 반-LGBTQ 감정을 품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또 2013년 러시아 연방의회 하원인 국가두마는 '전통적이지 않은' 성관계의 선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 LGBTQ와 지지하는 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처벌하고 LGBTQ 개인 및 활동가들의 집회의 자유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쓰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성소수자난민에 관한 지금까지의 판결을 소개한 공감의 김지림 변호사는 "성소수자가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할 경우 박해를 받은 경험이 없더라도 박해의 가능성 즉, 동성 간 성행위 등에 대한 사형이나 징역형 처벌 등 떠나온 나라의 법제도 등을 모두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성소수자에 대한 처벌 가능성 등 박해에 관련된 제도를 수집해 정리한 이번 보고서는 그 자체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원에서 난민으로 인정할 지 여부는 개개의 사건에서 판결을 기다려봐야 하겠지만, 변호사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성소수자 난민 신청 때 관련 국가의 내용을 활용하고 재판부에 직접 제출할 수 있는 보고서"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거의 없지만, 2002년 10월 18일에 선고된 서울고법 2022누32961 판결은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나라로 도피한 성소수자가 낸 사건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한 입장을 통해 확인되는 바와 같이,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은 선천적이거나 바꿀 수 없는, 또는 포기하거나 숨기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되는 정체성의 핵심적인 요소에 해당한다"며 "국가는 어떤 사람이 어떤 국가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근거로 고문, 박해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대한 충분한 근거 있는 두려움을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사람을 해당 국가로 이주, 추방,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냈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어 말레이시아에서 실제로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형 및 벌금형의 처벌을 받았고, 원고가 처벌을 받았던 시기뿐 아니라 이 사건 처분(난민 신청 거부처분) 당시에도 위와 같은 말레이시아의 법령이 계속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원고로서는 자신이 처한 위협에 대하여 국가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이 명백한 바, 이러한 위협이 원고의 성정체성으로 인한 부당한 사회적 제약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고, 이를 넘어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로서, 난만협약에서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림 변호사는 "원고가 피신해온 해당 국가의 법률 및 그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지 여부와 과거에 성적 지향을 드러낸 것을 이유로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등 엄격한 기준을 따져 난민 지위를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성소수자의 난민 지위 인정은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능성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