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 한마디!] '유동화증권 투자 손실' 절반 받아낸 이홍원 변호사
"기초자산 실사 부실 주관사 책임 관철"
최근 법원에서 선고된 금융투자 관련 판결에서 유동화증권 기초자산에 대한 실사의무 위반을 인정해 유동화증권의 설계와 판매를 담당한 주관사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게이트키퍼(gatekeeper) 소송' 중 하나로 제기되어 1심에선 투자자가 전부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피해액의 50% 배상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금융시장에서 금융투자상품을 유통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관사에 대하여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가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소심부터 투자자 측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해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함께 1심을 뒤집고 승소 판결을 받아낸 주역 중 한 명인 법무법인 린의 이홍원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재판부의 실사의무 인정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금융상품 주관사의 부실 조사 · 실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처음 인정한 판결은 아니지만, 법적 근거를 들어가며 자산유동화 거래 주관사의 투자자보호의무를 명확히 한 판결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ABCP 매수 사흘 만에 연쇄부도
사건의 발단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인 CERCG캐피탈이 CERCG 본사의 지급보증 하에 발행한 외화사채를 기초 자산으로 약 1,600억원 규모의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를 사모 발행하여, 현대차증권을 비롯한 전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현대차증권은 위 두 증권사가 주관하여 국내 SPC가 발행한 ABCP 중 600억원 가량을 매수하여 이중 100억원 상당은 부산은행에 재판매한 뒤 나머지 500억원 상당의 ABCP를 보유했다. 그런데 ABCP를 매수한지 3일만에 CERCG의 다른 자회사가 발행하고 CERCG가 보증한 또 다른 회사채가 만기에 상환되지 못한데 이어 현대차증권이 매수한 ABCP의 기초자산에 대한 지급보증채무 역시 교차부도(Cross Default)를 맞게 되어 결국 ABCP가 만기일에 상환되지 못하자 현대차증권이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내지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항소심(2021나2046187)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먼저 "자본시장법 제37조 제1항은 금융투자업자의 고객이익우선의무를 각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당사자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의거하여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금융거래에 따르는 위험 등에 대한 정보의 측면에서 금융투자업자와 투자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금융투자업자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신의성실의무 내지 고객이익우선의무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하고, 자산유동화증권의 발행, 인수 및 판매를 주관하는 주관사는 기초자산 등에 대한 정보에 있어 투자자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주관사에게는 기초자산 등의 위험에 대하여 충분하게 실사 내지 조사하고, 투자자에게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제공할 실사 내지 조사의무가 있다고 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자산유동화 구조를 이용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고 금융시장에 유통시키는 과정을 주관하는 주관사는 유동화증권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기초자산 등에 관한 합리적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를 하고, 투자자에게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무엇보다도 주관사는 자산유동화 거래의 전체 구조를 설계한 자일뿐만 아니라 이러한 거래에 참여하는 당사자들 중 가장 적은 비용으로 기초자산 등에 관한 정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주체이므로, 주관사로 하여금 투자자에게 기초자산 등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를 통하여 획득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러하다"고 밝혔다.
피고들 직원 2명 유죄 확정
이홍원 변호사는 이와 관련, "항소심에서 주관사의 실사의무를 단순히 이론 · 법리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관계로부터 도출해내도록 노력하였다"며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피고들 증권사 직원 2명에 대한 형사 판결의 의미와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하여 주장하고, 본건 투자가 이루어지게 된 구체적인 경위와 전후의 사정들을 현출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전략이 주효한 것 같다"고 항소심 변론전략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홍원 변호사 팀은 또 피고들이 투자자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신의성실의무 및 투자자 보호의무의 법률상 근거를 보강하고, 주관사와 투자자 사이의 신임관계, 유동화거래에서 주관사가 수행하는 역할 등으로부터 주관사의 기초자산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의무가 도출되며, 이러한 의무를 불이행한 경우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를 비롯한 투자자들을 위하여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부담하는 피고들의 담당 임직원이었던 심모, 정모씨가 실사 내지 조사의 대상이 되는 CERCG 측으로부터 부정한 금원을 수취하였는바, 이는 이들이 ABCP의 발행 과정에서 성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였는지 의심할 만한 정황에 해당하고,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이 ABCP의 발행 과정에서 합리적인 수준에서 기초자산 등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다하였는지는 더욱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피고들은 이 사건 ABCP의 기초자산인 회사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CERCG는 당시 국내에 생소한 중국 기업이었고, ABCP의 발행규모도 상당하였으나, 피고 측에선 CERCG의 전반적인 재무상황 등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를 하지 않았다. 또 ABCP 발행 당시 중국외환관리국(SAFE)에 대한 보증사실의 등록 즉, SAFE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만약 SAFE등록이 되지 않는 경우 회사채의 보증인인 CERCG는 중국 밖에 소재한 역외자산으로 보증채무를 이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회사채의 상환 및 ABCP의 어음금 지급과 직결되는 사항인데, 당시 CERCG에게 역외자산이 충분히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현금화가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떠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전혀 조사하거나 확인하지 아니하였다.
재판부는 ABCP의 신용등급을 두 번째로 우수한 단계인 A2로 평가한 나이스신용평가와 서울신용평가의 신용평가서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였으니 면책되어야 한다는 피고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CERCG는 ABCP 발행 무렵 국내에 생소한 해외 기업이었고 중국 경제체제의 특수성으로부터 비롯된 불명확성 및 불투명성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CERCG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실사 내지 조사 없이 취득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하고, "결국 나이스신용평가, 서울신용평가의 신용평가 등급은 피고들의 CERCG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결정되었던 것인바, 위와 같은 복수의 신용평가 등급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피고들의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이 면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실사 내지 조사의무의 구체적 범위와 정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주관사의 기초자산 등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의무는 모든 형태의 유동화증권에 대하여 동일한 수준으로 정하여진다고 볼 수는 없고, 기초자산의 성질, 자산유동화의 구조, 투자자의 전문성, 역외거래가 포함되었는지 여부 등 유동화증권과 관련된 사정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주관사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의 범위와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실사 내지 조사 의무의 범위와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 유동화증권의 발행 과정에서 기초자산 등에 관한 위험을 추단할 수 있는 의심스러운 정황(이른바 위험 신호, red flag)이 발견되는 경우 유동화증권의 발행, 인수, 판매를 주관하는 주관사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가 부과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위와 같은 주관사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담당하는 임직원이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실사 내지 조사의 대상이 되는 자로부터 부정한 경제적 이익을 받았거나, 자산유동화 거래의 종결에 따라 그로부터 위 임직원에게 귀속될 부정한 경제적 이익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정은 주관사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 이행의 적정성을 중대하게 해할 개연성이 있는 정황에 해당하므로, 그와 같은 사정 또한 주관사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한층 더 엄격하게 요구하여야 할 근거가 된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주관사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가 유동화증권이 사모(私募)의 방법으로 발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 측에 민법 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을 인정했다.
전문투자자 피해구제 확대 고무적
이홍원 변호사는 피해액의 50% 배상을 인정한 손해배상의 범위와 관련해서도, 이번 판결은 원고가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전문투자자임에도 피해구제를 확대한 고무적인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홍원 변호사는 금융과 M&A 등 기업법무가 주된 업무분야로, 각종 투자 및 증권과 관련한 자문과 소송, 적대적 M&A 관련 분쟁해결에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제41회(사법연수원 31기)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2018년 법무법인 린에 합류하기 전 김앤장에서 10년 넘게 활동한 경력도 있다.
이홍원 변호사 외에도 이번 승소 판결을 받는데 린의 나윤민(사법연수원 32기) 변호사와 윤현상 외국변호사 등이 함께 활약했다. 나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욕주 변호사인 윤 변호사는 로펌으로 옮기기 전 맥쿼리자산운용의 법무담당 임원 등을 역임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