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Law] 표준필수특허와 소송금지명령
소송금지 · 방해금지 · 집행금지명령 신청 늘어
Ⅰ. 표준필수특허소송에서의 소송금지명령과 방해금지명령
표준필수특허에 관한 소송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소송의 대표적인 예로, 사안의 중대성이 큰 만큼 전략 다툼도 치열하다. 근래에는 실시료 협상과정에서 소송금지명령(anti-suit injunction, ASI)이 점점 빈번하게 활용되는 경향을 관찰할 수 있고, 이에 그치지 않고 그 대응으로 방해금지명령(anti-anti-suit injunction, AASI) 신청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소송금지명령 및 방해금지명령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다. 먼저 A국에서 표준필수특허의 특허권자가 실시자를 상대로 침해소송을 제기하거나 실시자가 특허권자를 상대로 FRAND 의무 위반을 근거로 한 소를 제기한다. 그런데 상대방은 B국에서 위 소송의 진행을 막기 위한 소송금지명령(가처분)을 신청한다. 이에 A국에서 소를 제기한 당사자는 B국에의 소송금지명령(가처분) 신청을 취하시키고자 다시 A국 법원에 방해금지명령(가처분)을 신청한다. B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경우 그 집행을 금지하고자 A국 법원에 집행금지명령(가처분)을 신청할 수도 있다.
협상 때 강력한 무기 될 수 있어
이와 같이 한 국가의 법원이 외국 법원에서의 절차 진행을 금지하는 결정 또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각 결정 또는 명령이 외국 법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소송 당사자에 대해 결정 또는 명령 위반 시 벌금 또는 간접강제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다른 나라 법원의 관할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당사자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고,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근 일련의 표준필수특허소송에서 소송금지명령이 발령되자 그동안 소송금지명령 제도에 회의적이었던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방해금지명령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에 관한 중국, 독일 등에서의 각 대표적 사례를 아래 간략히 소개한다.
Ⅱ. 소송금지명령 사례
Huawei v. Conversant 사건에서, Conversant가 Huawei를 상대로 복수의 국가에서 침해소송을 제기하자, Huawei는 2018. 1. 중국 난징중급인민법원에 Huawei가 Conversant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뒤이어 Conversant는 2018. 4. 독일 뒤셀도르프지방법원에 Huawei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2020. 8. 뒤셀도르프법원은 Huawei의 침해제품의 판매 · 사용 등을 금지하는 판단을 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Huawei는 중국 최고인민법원에 Conversant가 독일법원에서 독일 판결의 집행을 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였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ex parte 절차를 통해 당사자 및 청구기초(subject matter)의 동일성과 각 당사자 및 제3자에게 미치는 이익 및 손해의 비교형량, 국제예양 등을 고려하여 Huawei의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Conversant가 매일 1백만 위안을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중국, 인도 법원에 각각 소송
또한 Interdigital v. Xiaomi 사건에서는, Xiaomi가 2020. 6. 중국 우한중급인민법원에 적정 실시료 확인 소송을, Interdigital은 2020. 7. 인도 델리고등법원에서 침해소송을 제기한 뒤, Xiaomi가 2020. 8. 우한중급인민법원에 인도 침해소송에 대한 소송금지명령을 구하였다. 중국 우한중급인민법원은, 인도에서의 절차가 우한에서의 절차를 방해하는 것이며 Xiaomi에 대한 소송금지명령 발령 시 Xiaomi에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반면 특허발명을 실시하지 않는 Interdigital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2020. 9. Xiaomi의 신청을 인용하고, Interdigital의 위반시 매일 1백만 위안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Interdigital의 신청에 따라 인도 델리고등법원은 2020. 9. 위 소송금지명령에 대한 집행금지명령을 발령하였다.
Ⅲ. 방해금지명령 사례
대응적 방해금지명령
Nokiav. Daimlerand Continental 사건에서 독일 법원은 독일법상 방해금지명령이 허용된다고 판단하였다. 즉, 표준필수특허권자인 Nokia는 실시자인 Daimler를 상대로 2019. 3. 독일의 뮌헨, 만하임 등 지방법원에 침해소송을 제기하였고, Continental은 Daimler를 위해 보조참가하였다. 그 후 Continental은 2019. 5. Nokia 등을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북부연방지방법원에 FRAND 조건 위반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2019. 6.에는 Nokia가 독일 법원에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의 진행을 금지하는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였다. 그러자 Nokia는 2019. 7. 독일 뮌헨지방법원에 Continental의 위 미국 법원에의 소송금지명령 신청 및 진행을 금지하는 내용의 방해금지명령을 신청하였다.
독일 뮌헨지방법원은, 만일 Continental의 신청에 따라 미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한다면 Nokia의 특허권이 간접적으로라도 침해될 수 있다고 보았고, Nokia를 긴급히 보호할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보았다. 또한 소송금지명령이 비록 미국법 하에서 허용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경우 독일에서 위법한 것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소송금지명령이 독일에서의 소권을 박탈하여 법치주의나 적법절차의 원칙, 당사자의 재판청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 그러하다고 보았다. 이에 불법행위에 대한 금지 · 예방청구권을 인정하여 2019. 7. 11. Continental을 상대로 한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2019. 7. 30.에는 Continental에 대하여 미국 법원에 한 소송금지명령 신청을 취하하지 않을 경우 250,000유로 이하의 과태료 또는 경영자에 대한 6개월(반복 위반시는 2년) 이하의 질서구금을 부과한다는 취지의 방해금지명령을 하였다. 특히 방해금지명령 신청 사건의 판단을 위해 Continental 측을 심문할 경우 미국 법원이 그 전에 소송금지명령을 발령할 위험이 있다고 보아 ex parte 절차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Continental이 항소하였으나, 독일 뮌헨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다.
예방적 방해금지명령
방해금지명령은 위와 같이 상대방이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한 뒤 그에 대응하여 신청할 수도 있지만, 아직 소송금지명령 신청이 없었음에도 예방적 성격의 방해금지명령 신청이 허용되기도 한다.
IP Bridge v. Huawei 사건에서, 표준필수특허권자인 IP Bridge는 Huawei와 실시권 협상을 진행하던 중 2021. 1. 8. 독일 뮌헨지방법원에 Huawei가 IP Bridge를 상대로 중국 등의 법원에서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지 못하도록, 또는 이미 신청하였다면 이를 취하할 것을 구하는 방해금지명령을 신청하였다. 뮌헨지방법원은 Huawei가 소송금지명령 신청을 아직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21. 1. 11. Huawei가 중국 법원에 소송금지명령 신청을 할 경우 250,000유로 이하의 과태료 또는 경영자에 대한 6개월 이하의 질서구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의 방해금지명령을 내렸다.
금지 · 예방청구권 인정
독일 뮌헨지방법원은 IP Bridge에게 불법행위에 대한 금지 · 예방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았고, 자기방어를 할 권리도 인정된다고 하였다. 나아가 Huawei가 과거 Conversant와의 사이에서 중국 법원으로부터 소송금지명령을 얻어낸 전력이 있는 점, IP Bridge와의 협상과정에서 Huawei의 임원이 이 부분을 직접 언급한 점, IP Bridge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지 않은 점 등을 들어 IP Bridge로서는 Huawei가 가까운 미래에 불법행위를 할 것이라고 믿을 만하다고 보았다.
또한 IP Bridge가 소송금지명령의 위협이 있다고 판단한 뒤 신속하게 방해금지명령을 신청한 점, 소송금지명령이 내려지면 특허권자의 금지청구권이 사실상 박탈되는 셈이라는 점, 소송금지명령이 중국에서 신청 직후 신속하게 발령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사안의 긴급성도 인정하였다.
Ⅳ. 최근 동향
이처럼 소송금지가처분이 표준필수특허소송을 위주로 실시권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국가의 법원에서 판단을 받고 다른 국가에서는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전통적으로 소송금지명령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온 대륙법 국가에서도 그에 대한 대응으로 방해금지명령 발령 여부를 적극 검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관련 법안 상원에 제출
나아가 유럽연합은 중국 법원의 적극적인 소송금지명령 발령을 TRIPS 위반으로 보아 2022. 2. WTO에 제소하였고, 미국에서는 2022. 3. 특허침해를 이유로 미국 법원의 소송이나 ITC 절차를 제기하였거나 제기하고자 하는 특허권자를 상대로 외국 법원에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는 자의 경우는 침해사실이 인정되면 고의성이 추정된다고 보고 증액배상 및 변호사비용 청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Defending American Courts Act)이 상원 사법위원회에 제출되었다.
글로벌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소송금지명령은 더 이상 무관한 일이 아닐 것이다. 외국에서의 표준필수특허분쟁이 우리나라에서의 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인지하고, 소송금지명령이나 방해금지명령과 같은 제도에 어떻게 접근하여야 당사자의 소권과 사법주권의 실질적 보호가 이루어질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박운정 외국변호사 · 이인재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unjung.park@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