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시공사 선정 무효여도 재개발 추진위가 시공사로부터 빌린 돈은 갚아야"
[대법] "소비대차약정 유지 의사 여지…유효"
서울 관악구 일대 120,192.15㎡를 사업구역으로 한 A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설립 추진위원회는 2006년 7월 주민총회를 열어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두 달 뒤인 9월 26일 이 주택재개발사업에 관하여 공사도급(가)계약을 맺었다. 공사도급(가)계약의 일반조건에는 '현대건설은 A재개발 추진위의 요청에 따라 A재개발 추진위에 주택재개발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소요되는 자금을 대여한다'는 소비대차약정이 포함되어 있다. B씨 등 사업구역 내 토지 등 소유자 12명은 또 공사도급(가)계약에 따른 A재개발 추진위의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현대건설은 이후 위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2006년 10월부터 2010년 7월까지 75차례에 걸쳐 A재개발 추진위에 합계 34억 5,000여만원을 대여했다. A재개발 추진위는 그중 일부 대여금에 관하여 다시 현대건설과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현대건설에 공정증서를 작성해 주었으며 위 12명 중 일부는 이에 따른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문제는 사업구역 내 다른 토지 등 소유자들이 A재개발 추진위를 상대로 시공사 선정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불거졌다. 2010년 11월경 위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과 판결이 확정되자, 현대건설이 A재개발 추진위와 B씨 등 12명을 상대로 대여금 34억 5,000여만원 중 25억 2,400여만원을 반환하라며 소송을 냈다. 현대건설은 대여금 34억 5,000여만원 중 공정증서가 작성된 9억 2,600여만원에 대해선 위 공정증서에 집행문을 부여받았음을 이유로 이를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만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소비대차약정은 유효라고 보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재개발 추진위는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으며, B씨 등 12명만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인 이상 이를 전제로 하는 공사도급(가)계약도 무효이고, 공사도급(가)계약에 포함된 소비대차약정 역시 무효"라며 현대건설의 청구를 기각하자 현대건설이 상고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그러나 2월 2일 다시 판단을 뒤집어, 소비대차약정이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9다232277). 법무법인 세종이 현대건설을 대리했다.
대법원은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하나, 그 무효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아니한다(민법 제137조)"고 전제하고, "여기서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의 일부가 무효임을 법률행위 당시에 알았다면 의욕하였을 가정적 효과의사를 가리키는 것(대법원 2011다9068 판결 등 참조)"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법률행위의 일부무효 법리는 여러 개의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그 계약 전부가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서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적용된다"며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이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하여져 하나의 계약인 것 같은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더라도 소비대차약정이 여전히 유효라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공사도급(가)계약 및 소비대차약정 당시에는 2002. 12. 30. 법률 제6852호로 제정된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추진위원회의 법적 지위와 기능에 관한 조항이 마련되었으나, 시공사 선정이 법상 그 기능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추진위원회에 의한 시공사 선정이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았고, A재개발 추진위원회는 공사도급계약 체결 전인 2006. 9. 18.경 관할 관청으로부터 '재개발 추진위원회에서의 시공사 선정은 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라는 안내를 받기도 하였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이 원고와 A재개발 추진위원회는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의 법적 효력이 분명하지 않아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고 거기에 소비대차약정도 포함시켰으며 이에 기초하여 그 무렵부터 2010. 7. 15.경까지 수차례에 걸쳐 금전 대여관계를 맺어 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재개발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라 하더라도 조합 설립 후 조합 총회에서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한 시공사 선정을 추인하는 결의를 할 수 있고, 이러한 결의로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한 시공사 선정은 유효하게 된다"며 "이 사건에서도 원고와 A재개발 추진위원회는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차 조합이 설립되면 조합 총회 결의를 통하여 재개발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공사 선정결의나 공사도급계약이 유효로 될 수 있다는 사정을 염두에 두었다고도 볼 수 있고, 재개발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될 것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원고와 A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자금 대여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의사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현대건설과 A재개발 추진위원회는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을 체결할 당시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원고와 A재개발 추진위원회에게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할 의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을 심리하여 소비대차약정의 유효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이러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공사도급계약에 소비대차약정이 포함되어 체결되었다는 사정과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과 소비대차약정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공사도급계약과 함께 소비대차약정도 무효가 된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무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