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뺑소니 유죄,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

[춘천지법] 야간에 사륜오토바이 치어 노부부 숨지게 한 화물차 운전자 항소심서 유죄

2023-01-24     김덕성

야간에 시골에 있는 도로에서 화물차를 몰다가 마주오던 사륜오토바이를 치어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노부부를 숨지게 하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귀가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에게 항소심에서 뺑소니 유죄가 인정됐다. 피고인은 주변에 세워진 경운기를 스쳐지나간 것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춘천지법 형사2부(재판장 이영진 부장판사)는 9월 30일 특가법상 도주치사와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화물차 운전자 A씨에 대한 항소심(2022노589)에서 사고후미조치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사고후미조치 혐의와 함께 도주치사 혐의도 유죄를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징역 2년 6개월 실형 선고

A는 2021년 11월 7일 오후 7시 40분쯤 화물차를 몰고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도로를 달리던 중 오른쪽 갓길에서 마주오던 B(78)씨의 사륜오토바이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를 몰던 B씨와, 함께 타고 있던 B씨의 아내(80)가 숨졌다. A는 다음날인 8일 오전 1시쯤 집으로 찾아온 경찰이 교통사고를 냈는지 묻자 순순히 냈다고 답변을 하였고, 교통사고를 내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에 '사고를 알고 있지만 별거 아니라서 그냥 우선 왔다'는 취지로 답했다. 주변에 세워진 경운기를 스쳐지나간 것으로 착각했다는 주장이었다.

1심 재판부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사고현장을 이탈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도주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사고후미조치 혐의만 인정하자 검사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사고가 일어나 피해자들에게 사상의 결과가 발생한 사실을 A가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도주치사죄도 유죄라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교통사고 발생시점은 일몰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야간이고, 사고지점에는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교통사고 발생 당시 피고인이 운전한 차량의 전조등이 켜져 있었으며, 피해자들이 탑승한 사륜오토바이의 전조등이 피고인을 향하여 켜져 있었던 사실도 인정된다"며 "피고인은 교통사고 발생 당시 사륜오토바이를 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경찰이 전조등이 켜져 있었던 사륜오토바이를 보지 못하였던 이유를 묻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못 봤습니다'라고 진술하였을 뿐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교통사고로 화물차는 앞범퍼 우측 부분, 우측 헤드라이트 하우징, 우측 사이드미러 하우징, 조수석문, 우측 앞바퀴 흙받기 등의 구조물이 파손 및 이탈되었으며, 사륜오토바이의 우측 앞부분이 대부분 파손된 채로 전도되었고 그 충격으로 여기에 탑승하였던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르렀는바, 교통사고로 화물차가 받았을 충격은 상당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교통사고 당시) 뭐 그냥 뭐 스치는데 알 듯 모를 듯 느꼈습니다'라고 진술하였는데, 위 피고인의 진술은 교통사고의 정도나 피해규모에 비추어 볼 때 믿기 어렵다"며 "피고인은 사건 당시 교통사고 발생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였으나, 교통사고 발생지점 주변에 세워진 경운기를 스쳐지나간 것으로 착오하였다고 주장하나, 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경운기는 도로를 침범하지 않고 거의 도로 바깥쪽 가드레일 선상에 세워져 있었으므로, 차량이 차도를 따라 정상적으로 도로를 주행하는 경우 경운기를 스치듯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재판에선 특히 교통사고 발생 후 현장에 출동하여 피고인을 긴급체포한 경찰관 C의 법정 증언이 재판부가 뺑소니 유죄를 선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C는 1심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그때 탑승하고 있었던 두 분이 돌아가셨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자, 피고인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면서 '아이고, 우리 형님은 아니겠지'라고 말한 사실이 있거든요", "(피고인이) 사륜 오토바이를 충격했다고 명확하게 말씀한 사실은 없고요", "사륜 오토바이라는 말을 일절 한 사실이 없고요"라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위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은 사륜오토바이를 충격하였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경찰관이 사륜오토바이를 충격하였다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평소에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피고인의 사촌형이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4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으며, 교통사고 발생 전 술을 마신 사실이 있으므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적발될 경우 무겁게 처벌될 것이 두려워서 피해자들이 탑승한 사륜오토바이를 충격하고도 그대로 도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양형과 관련, "죄질이 매우 나쁘고,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야간에 사륜오토바이를 역주행하여 운전한 피해자들에게도 교통사고 발생에 대한 과실이 있는 점, 피해자들이 헬멧 등을 착용하지 않아 사고결과 가 확대된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는 점, 피고인의 차량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