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검사가 성폭행 피고인에 유리한 유전자감정서 증거목록에서 누락…국가가 위자료 지급하라"
[대법] "증거제출의무 위반"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인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목록에서 누락했다가 뒤늦게 제출한 검사의 잘못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게 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월 16일 준강간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A씨가 검사의 증거제출 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1다295165)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 "국가는 A씨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액 · 유전자 미검출'
A씨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체로부터 채취된 시료에서 (피고인의) 정액과 유전자가 검출되지 아니하였다'는 취지의 유전자감정서가 첨부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의뢰회보가 있었으나, 검사는 A씨를 기소하며 위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목록에서 누락했다. A씨가 형사사건 1심 재판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하여 법원에 위 유전자감정서 사본이 송부되자, 검사는 그 이후에야 위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A씨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고, 위 판결은 항소심, 상고심을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01다23447)을 인용,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고 할 것이고, 검사가 수사 및 공판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하던 원고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게 된 경위를 비롯한 제1심 판시 사실 등을 종합하면 시료에서 원고의 정액이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감정서는 형사피고사건에 대한 원고의 자백이나 부인, 소송 수행 방향의 결정 또는 방어권 행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자료로 볼 수 있는데, 검사가 원고에 대한 공소제기 당시 위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목록에서 누락하였다가 원고 측 증거신청으로 법원에 그 존재와 내용이 드러난 이후에야 증거로 제출한 것은 검사가 직무를 집행하면서 과실로 증거제출의무를 위반한 것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고의 정신적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받아들인 제1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며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 검사의 직무행위로 인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에서 과실과 위법성, 손해의 발생 및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앞서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하던 원고가 검찰 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게 된 경위를 보면, 여전히 범행 당시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정액 검출 등 객관적 증거가 있다면 이에 근거해 원고 본인이 범행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진술이 이루어진 경위, 수사 초기 원고가 범행을 부인한 사실, 검찰 조사 당시 원고는 여전히 범행 당시 본인의 행위와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사실, 동일한 시료에 대해 1차적으로 이루어진 성폭력 피해자 진료기록에서는 정액이 검출되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으나 보다 정확한 유전자감정결과 이와 반대되는 취지로 정액과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온 사실 등을 종합하면 유전자감정서는 원고의 자백이나 부인, 소송 수행 방향의 결정 또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자료로 볼 수 있다(유 · 무죄 판단의 대한 증거가치는 별론으로 함)"며 "그렇다면 검사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유전자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위와 같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정적 증거인) 유전자감정서를 증거목록에서 누락하였다가 원고측의 증거신청으로 법원에 그 존재와 내용이 드러난 이후 증거로 제출하였다"며 "이는 검사가 직무를 집행하면서 과실로 증거제출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한 경우 검사에게 그 증거제출의무가 있다는 종래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이러한 검사의 증거제출의무는 적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까지 명확히 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