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 임의 사용했어도 배임 · 횡령 모두 무죄
[대전지법] '타인 사무 처리하는 자' 아니고, '재물'로 볼 수 없어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을 임의로 사용했어도 배임죄 또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A씨는 2019년 8월 27일경 일본에 있는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잘못 이체된 다른 사람 소유의 시가 8,070만원의 비트코인 6.61645203개를 보관하던 중, 임의로 환가하거나 다른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당초 횡령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가 1심에서 배임 혐의를 택일적으로 추가하는 내용으로 공소장변경을 신청했고, 1심 재판부는 이를 허가했다. 1심 재판부가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 A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자 A씨가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횡령 혐의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항소심(2021노3179)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3부(재판장 문보경 부장판사)는 그러나 7월 7일 배임죄와 횡령죄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이 사건 비트코인이 법률상 원인 없이 피해자로부터 피고인 명의의 전자지갑으로 이체되었더라도 피고인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임 혐의는 무죄라는 것.
재판부는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 시스템의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가상자산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자는 가상자산의 권리자 등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는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고 이러한 사정만으로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사람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가상자산은 국가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블록체인 등 암호화된 분산원장에 의하여 부여된 경제적인 가치가 디지털로 표상된 정보로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도9855 판결 참조)"고 지적하고, "가상자산은 보관되었던 전자지갑의 주소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고, 거래 내역이 분산 기록되어 있어 다른 계좌로 보낼 때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자산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고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하면서 가상자산을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 · 처분한 경우 이를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착오송금 시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판례(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참조)를 유추하여 신의칙을 근거로 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①이 사건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가 없으므로 유체물이 아닌 점, ②사무적으로 관리되는 디지털 전자정보에 불과한 것이어서 물리적으로 관리되는 자연력 이용에 의한 에너지를 의미하는 '관리할 수 있는 동력'에도 해당되지 않는 점, ③가상화폐는 가치 변동성이 크고 법정 통화로서 강제 통용력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예금 채권처럼 일정한 화폐가치를 지닌 돈을 법률상 지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가상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은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로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임의로 소비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하였다고 하여 이로써 피고인에게 횡령죄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2011도832)에 따르면, 횡령죄의 객체는 자기가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이므로 재물이 아닌 재산상의 이익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 또 재물과 재산상 이익을 구별하고 횡령과 배임을 별개의 죄로 규정한 현행 형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사무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채권이나 그 밖의 권리 등은 재물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
박정구 변호사가 A씨를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