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퇴사하며 직장상사 성희롱 피해 이메일로 공유…명예훼손 무죄
[대법] '비방 목적' 인정 안 돼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회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피해 사실을 알렸다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뒤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인정됐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요건인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월 13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여)씨에 대한 상고심(2017도19516)에서 이같이 판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2014년 8월 C사에 입사하여 마케팅팀 사원으로 근무한 A씨는, 2016년 3월 서울 둔촌동 매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자 4월 회사에 사직 의사를 표시하고, 다음날 C사 전국 208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명에게 '성희롱 피해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다가 기소됐다. 이메일에서 문제가 된 명예훼손적 표현은 '현재 HR팀장으로서 직장 내 성희롱 등 고충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B씨로부터 과거에 성추행을 당하고 성희롱적인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C사 영업관리 본부장이 이메일이 발송된 다음 날인 2016년 4월 5일경 A, B씨를 순차적으로 따로 면담하였는데, 당시 A씨는 'B가 잘못했다, 안 했다를 떠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 (B가) HR팀장을 하는 것은 맞지 않으니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하고, B는 '본인은 아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술 취해서 그런 것 같다, 2년 전 일이라 본인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그 후 B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2016년 4월 8일 HR팀장에서 경영지원본부 EHS팀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A는 2016년 4월 6일 직장 내 성희롱이 있었다는 이유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C사 대표이사를 상대로 진정을 제기하였으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5월 23일경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행정종결 처리하였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이 원하지 않는 인사발령을 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메일을 작성하였다고 보이므로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하자 A씨가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보낸) 이메일은 피고인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고, 피고인은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이메일을 전송하였다"며 "따라서 이메일을 전송한 피고인의 주된 동기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설령 부수적으로 피고인에게 전보인사에 대한 불만 등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은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에서 정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피고인은 이메일의 수신인을 C사 매장 대표와 본사 소속 직원들로 한정하여 발송하였고, 이메일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등 인신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메일에서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하여 유사사례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신고와 처리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이 근절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그 동기를 밝히고 있고,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 등 관련 규정과 C사의 '매장 내 불편부당한 내용 신고안내문'을 함께 첨부하였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사례를 곧바로 알리거나 문제로 삼을 경우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장 내에서의 부정적인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 등 이른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며 "피고인이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이를 문제 삼거나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에 앞서 종전 대법원 판결(2018도15868 판결 등)을 인용,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서 정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란 가해의 의사와 목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는 드러낸 사실의 내용과 성질,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표현 자체에 관한 여러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 · 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되며, 여기에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란 드러낸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 · 사회 그 밖에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고, 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인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공공성 ·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침해의 정도,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