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중대재해의 예방과 ESG 경영

2022-01-04     이은재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기업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가 산업재해 예방조치에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대표이사 직속으로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관련 인원과 예산을 늘렸다. 기존에 변방의 스태프 조직에 불과했던 안전보건팀 담당자들의 활동에 힘이 실리자, 전체 임직원들의 안전보건에 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창욱

산업안전보건법상 조치들도 강화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사업장의 유해 ·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안전보건에 관한 종사자의 의견을 청취할 의무를 부과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거나 협의체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면 위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한다. 지금까지는 도급인이 해야 할 위험성 평가를 사내하도급업체에 일임하거나 협의체를 형식적으로만 운영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경영자가 이러한 의무들을 직접 챙기기 시작하자, 실무자들은 사업장 내 위험성 평가 절차를 재점검하고 협의체에 제기된 협력업체의 의견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시설투자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만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들도 보인다. 먼저 재무담당임원(CFO)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등(CEO, CSO) 사이에 예산 편성 권한의 조율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를 구비하고 유해 · 위험요인 개선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할 것을 규정했다. 인력의 충원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결정할 수 있지만, 수십억원이 소요되는 안전보건 시설 · 장비 투자는 경영진들이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공장을 순찰할 요원을 1명 더 충원하는 것보다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고 유해인자로의 접근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대재해의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다. 위임전결규정과 투자심의규정 등을 정비해 안전보건 예산의 결정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인조직의 정비

라인(계선)조직과 스태프 조직의 실질적 연계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하면서 대규모 기업에 경영책임자를 보좌하는 안전보건 스태프 조직(전담조직)을 두도록 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유해 · 위험작업에 대한 지휘 · 명령은 라인조직을 통해 이뤄진다. 라인조직, 특히 생산부서의 관리감독자(직장, 조장 등)들이 스태프 조직과 효과적으로 협업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어렵다. 경영책임자와 전담조직은 라인조직의 직급별 중간관리자들이 안전보건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의 가이드라인(ILO-OSH 2001)도 안전보건경영은 '라인책임'(line-management responsibility)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안전보건관리체계는 회사의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 시스템과 통합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의 이행을 점검하도록 했다. 대규모 상장회사에서는 이미 상법에 따라 선임된 준법지원인이 임직원들의 법령 준수 여부를 점검해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있다. 안전보건 관계법령도 준법지원인이 점검할 대상에 포함될텐데, 상당수 회사에서 산업안전보건법령 등의 준수 여부는 ISO 45001 인증을 주관하는 안전보건팀에서만 확인하고 있다. 준법지원인 지원조직(준법지원팀 또는 법무팀)이 안전보건 전담조직과 협업하여 회사의 모든 법률 리스크를 함께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사의 준법감시 책임 강화

ESG는 이사회 경영을 토대로 하며 최근 법원도 준법감시에 대한 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서울고법 2020나2034989 판결). 이사회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게 부과된 주요 의무가 이행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연 1회 안전보건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것을 넘어, 반기 또는 분기마다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력업체 관리와 지원

중대재해처벌법은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많은 숙제를 남겼다. 우선 사업장에서 일시 · 간헐적으로 작업하는 협력업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관리해야 한다. 사업장에 상주하는 사내협력업체는 협의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지만, 설비의 유지 · 보수 등을 위해 한시적으로 출입하는 협력업체의 정보는 회사의 구매팀(계약체결), 보안팀(출입기록관리), 생산팀(작업 발주 · 감독), 안전보건팀에 산재되어 유기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잠시 들어와 일하는 협력업체 종사자들은 사업장의 작업환경에 익숙하지 않기에 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협력업체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사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작업의 유해 · 위험요인을 발견 및 평가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평가뿐만 아니라 지원도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협력업체의 산재 예방능력을 평가하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이에 따라 점검하도록 했다. 다만, 영세업체들은 단기간에 안전보건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회사가 영세업체들과 사실상 수의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대 ·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관점에서 협력업체와 종사자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업중지권 행사도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작업중지 등 대응조치가 포함된 중대재해 매뉴얼을 만들 것을 규정했다. 다만, 협력업체 종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의류공장(Rana Plaza)이 붕괴하여 1,13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당시 협력업체 종사자들은 사전에 콘크리트 기둥의 균열을 발견하고 작업 중단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작업중지권을 통해 대형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도 가이드북에서 하도급 표준계약서에 작업중지에 따른 협력업체의 손실을 보장하는 조항을 두어 작업중지권 행사를 독려한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경영자 엄벌주의만으론 한계

경영자에 대한 '엄벌주의'만으로는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어렵다. 반부패와 달리 안전보건은 매우 기술적인 분야라서 경영자의 의지와 기업문화만으로 리스크를 예방할 수 없다. 스태프 조직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고, 라인조직의 각 담당자들이 이를 내재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현장의 리스크는 실제 현장에서 작업하는 종사자들이 가장 잘 안다. 종사자들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현장의 의견을 취합해 본사 차원에서 즉각적인 개선조치를 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관계자를 위한 ESG 경영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민창욱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cwmin@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