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형이 동생 휴대폰 · 운전면허증으로 비대면 대출받아…동생, 갚을 의무 없어"

[의정부지법] "절차 간소화로 인한 위험은 금융회사 부담"

2021-06-05     김덕성

현대캐피탈이 동생 명의 휴대폰으로 몰래 비대면 대출을 받은 형 대신 돈을 갚으라며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의정부지법 민사2부(재판장 김기현)는 4월 22일 현대캐피탈이 동생 A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소송의 항소심(2019나218005)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현대캐피탈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2018년 9월 16일 형으로부터 '핸드폰을 바꾸려고 하는데 서류가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형에게 운전면허증과 자신 명의 농협은행 통장 사본의 사진을 전송했다. 형은 그 직후 자신이 사용하던 동생(A) 명의의 휴대폰을 이용해 현대캐피탈에서 휴대폰 본인인증을 거쳐 2,200만원을 대출받아 코란도스포츠 중고차량을 매입했다. 

대출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현대캐피탈에 전화를 걸어 대출 취소를 요청하는 한편, 형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해 벌금 3백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아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A씨의 대출 취소 요청을 거부하고 도리어 "이자가 연체되었으니 대출금을 일시에 갚으라"며 A씨를 상대로 대여금 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A씨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이 권한 없이 피고의 명의를 도용하여 (원고와) 대출약정을 체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와 피고 사이에 대출약정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 명의 휴대폰으로 대출신청서 링크(URL)를 문자메시지로 전송하였고 피고의 형이 위 링크를 클릭하여 원고가 마련한 대출신청서에 접속한 후 피고 명의 휴대폰으로 인증번호를 보내 확인하는 방법으로 본인인증 절차를 거친 다음 피고 명의 운전면허증 번호와 피고의 생년월일을 입력하는 절차를 걸친 후 대출을 승인받고, 원고는 위조된 문서인 피고 명의의 '차량 인수증 및 대출금 수령 위임장'을 받은 후 지정된 대출금 수령인인 중고차량 판매자에게 중고차량 대출금 2,200만원을 송금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위 인정사실만으로는 원고가 수신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해, 피고가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대출약정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는 작성자가 송신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원고는 여신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회사로서 채무를 부담하게 될 당사자에게 직접 그 의사를 확인하는 등 보다 신중하게 대출을 실행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고, 영업의 편의를 위해 그 절차를 간이하게 하여 발생하는 위험은 원칙적으로 원고가 부담하여야 한다"며 "비대면 금융거래는 대면 거래와 달리 의사표시자를 직접 확인할 수 없고, 제3자에 의한 해킹 등 명의도용 가능성, 조작실수로 인한 오입력 등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가능성 및 상품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대면거래보다 높기 때문에 관련 법령의 해석 등에 있어 소비자보호를 고려하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는 이 사건 대출약정을 하면서 단순히 피고의 운전면허증 번호를 입력하도록 하고, 원고가 보낸 링크를 통해 휴대전화 본인인증만 하였을 뿐인데, 휴대전화를 이용한 본인확인방법의 신뢰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워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보완하는 추가적인 본인확인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대출약정과정에서 원고가 요구한 피고의 생년월일, 운전면허증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는 금융거래시 이용되는 보안카드번호, 전자식카드나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비밀번호 등에 비해 타인이 이를 입수하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 할 수 없어,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보완하는 추가적인 본인확인수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표현대리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도, "형이 대출약정 당시 피고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하였고, 피고가 형에게 피고의 운전면허증 사진, 통장사진을 교부한 점에 비추어 보면, 형에게 대출약정에 관한 기본대리권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원고는 비대면 실명확인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던 점, 만일 대출약정 당시 원고가 비대면 실명확인의무를 준수하여 추가적인 본인 확인절차를 거쳤다면 대출약정이 체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에게 (피고의) 형이 피고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믿은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