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의료사고에 부제소 합의했어도 상태 악화됐으면 추가 배상해야"

[울산지법] "추가손해 예측했다면 합의 안 했을 것"

2021-01-31     김덕성

의료사고 피해자가 병원 측과 민 · 형사상 소송과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했더라도 이후 상태가 악화되었다면 병원 측이 추가로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A(여 · 사고 당시 51세)씨는 2011년 10월 3일 오전 3시 44분쯤 심한 두통으로 B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지주막하 출혈 증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색전술을 받았으나, 색전술 시행 과정에서 뇌동맥 파열이 발생, 그로부터 약 3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한 채 팔과 다리가 마비되었고, 이에 의사는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 절제술과 파열된 뇌동맥류에 대한 결찰술을 추가로 시행했다. 이후 의식을 찾지 못해 약 1개월 동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은 A씨는,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고, '뇌 손상에 의한 사지부전마비와 인지기능 저하로 노동능력 상실률이 54%로 사료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이 의료사고와 관련, B대학병원에 항의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1억 8,0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향후 민 · 형사상 소송과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병원 측과 합의하고 퇴원했으나, 퇴원 이후에도 상태가 더 악화되어 결국 2019년 8월경 동아대병원에서 '극도의 중증 뇌손상 후유증으로 노동능력을 100% 상실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판정을 받자 다시 B대학병원을 상대로 15억여원을 추가로 배상하라는 소송(2019가합16716)을 냈다. B대학병원은 "이 소송은 부제소합의에 위반하여 부적법하다"고 항변했다.

울산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용두 부장판사)는 12월 23일 B대학병원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고의 책임을 70% 인정, "피고는 원고에게 5억여원을 추가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결(99다63176)을 인용,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가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고 그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때에는 그 후 그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여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지만, 그 합의가 손해 발생의 원인인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후발손해가 합의 당시의 사정으로 보아 예상할 수 없는 것으로서, 당사자가 후발손해를 예상하였더라면 사회통념상 그 합의금액으로는 화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할 만큼 그 손해가 중대한 것일 때에는 당사자의 의사가 이러한 손해에 대해서까지 그 배상청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다시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원고와 피고의) 합의는 이 사건 의료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원고는 합의 당시 최종장애로 인한 치료비, 개호비 등 추가손해가 발생하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으며, 사회통념상 이러한 추가손해가 발생하리라는 사정을 예측하였더라면 원고가 1억 8,000만원의 합의금액으로는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추가손해에 대하여는 합의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한국의료분석원의 심사결과와 피고 병원이 작성한 향후 치료비 추정서에는, '약 18개월 이상 충분한 기간이 경과한 이후에 호전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임', '향후 3년간, 재활치료를 받는 3년 동안’과 같은 표현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그 무렵까지도 원고에게 발생한 장해의 정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사건 합의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약 11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졌는바, 합의는 의료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위와 같은 상황에 있던 원고와 원고의 가족들로서는 합의 당시 현재와 같은 추가손해가 발생하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는 합의가 이루어질 무렵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기본적인 신체활동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동아대학교병원에 대한 신체감정촉탁 결과에 따르면, 원고는 현재 기본적인 신체활동을 전혀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고, 이 사건 합의가 이루어질 무렵 원고의 상태와 현재 원고의 상태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으므로, 원고가 이 사건 합의로 피고 병원으로부터 지급받은 합의금 180,000,000원이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고 병원의 본안전항변은 이유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의료사고 발생일 이후로 원고의 신체 및 인지 저하가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점(그로 인하여 원고의 노동능력상실률을 기간별로 특정하기 어려운 점), 원고는 2013. 4.경 넘어지면서 골절상을 입고 수술을 받기도 하였으며, 그 이후 자주 넘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위와 같은 사정이 원고의 상태를 악화시키는데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사정과 그밖에 의료행위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난이도와 위험성 등을 참작,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하고, 위자료 3,000만원을 더해 피고는 원고에게 5억여원을 추가로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