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수자원공사에서 집회 연 용역업체 노조원들 무죄

[대법] "근로제공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쟁의행위 필요"

2020-09-22     김덕성

한국수자원공사의 사업장에서 집회를 열었다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수자원공사 용역업체 노조원들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용역업체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근로제공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인 한국수자원공사의 사업장에서 쟁의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월 3일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집회를 열었다가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 등 한국수자원공사의 시설관리 용역업체와 청소 용역업체 직원이자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대전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 5명에 대한 상고심(2015도1927)에서 이같이 판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무법인 여는이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수자원공사지회는 용역업체들을 상대로 한 임금인상 등에 관한 단체교섭이 결렬되고 노동위원회를 통한 노동쟁의조정 절차도 불성립으로 종결되자 조합원들의 찬반투표를 거쳐 2012년 6월 25일 파업에 돌입했다. 수자원공사지회장인 김씨와 나머지 피고인들, 다른 조합원 등 30~40명은 한국수자원공사를 압박하여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신고된 장소인 한국수자원공사 정문 앞 인도에서 집회를 하지 않고, 같은 날 오전 9시 50분쯤부터 오전 12시 30분쯤까지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장 내 본관 건물과 수질분석연구센터 건물 사이 인도에 모여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를 틀어놓고 용역업체들에 대하여 임금인상, 성실교섭 촉구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율동과 함께 노동가를 제창했고, 김씨 등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이와 같은 집회는 다음 날인 6월 26일 오전 10시쯤부터 1시간 동안, 약 일주일 뒤인 7월 3일 오전 10시쯤부터 약 1시간 20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씨는 "집회신고 장소로 나가라"는 수자원공사 측의 수차례 퇴거 요구를 정당한 사유없이 불응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대법원은 "피고인 김씨가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한국수자원공사 사업장에서 이 사건 각 집회를 개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김씨를 비롯한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은 수급업체들(용역업체들)을 상대로 임금인상 등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파업에 돌입하고 임금인상, 성실교섭 촉구 등을 요구하였다"며 "파업은 피고인 김씨를 비롯한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및 경제적 지위의 향상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파업 과정에서 단결을 유지하고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호소하며 조합원들의 쟁의행위 참가를 독려하기 위하여 각 집회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또 "피고인 김씨를 비롯한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은 위 장소에서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를 제창하거나 행진을 하는 등 집회나 시위에서 통상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여 집단적인 의사를 표시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비교적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총 3일간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의 이러한 행위는 폭력이나 시설물의 파괴를 수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게다가 피고인 김씨를 비롯한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이 각 집회를 통해 일시적으로 농성을 한 장소는 한국수자원공사 직원들의 수질분석업무를 위한 주요 시설로 볼 수 있는 본관 건물 내부가 아니라 본관 건물과 수질분석연구센터 건물 사이의 인도인데, 이러한 장소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업무수행을 위하여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급업체들 소속 근로자들에게도 평소에 통행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장소"라며 "피고인 김씨를 비롯한 수자원공사지회 조합원들이 한국수자원공사의 시설관리권을 배제하는 등 전면적이고 배타적인 점거에 이르지도 아니하였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쟁의행위에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들의 쟁의행위 참가를 독려하고, 위법한 대체근로를 저지하며, 쟁의행위 기간 중 단결을 유지하는 등 수급업체들 소속 근로자의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근로제공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인 한국수자원공사의 사업장에서 쟁의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반면, 수급업체들 본사나 사무소의 위치로 인해 이 사건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수급업체들의 사업장에서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측면이 있었다"며 "따라서 사용자인 수급인에 대한 정당성을 갖춘 쟁의행위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루어져 형법상 보호되는 도급인의 법익을 침해한 경우, 그것이 항상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고,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