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부동산 이중저당은 배임죄 아니야"
[대법] 부동산 이중매매와 달리 판단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속한 뒤 다른 사람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었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P사의 대표이사인 이 모씨는 2016년 6월 14일 최 모씨로부터 전환사채 대금 명목으로 18억원을 빌리면서 담보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 최씨 명의의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하고, 최씨로부터 근저당권 설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받았으나, 2016년 12월 15일경 이 아파트에 I사 명의로 채권최고액 12억원의 4순위 근저당권을 마쳐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손해액을 4억 7,500만원만 인정하여 특경가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손해액을 12억원으로 산정하여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 6월로 형량을 높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그러나 6월 18일 "채무자가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는 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의무이고, 채무자가 위와 같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며 "따라서 채무자가 제3자에게 먼저 담보물에 관한 저당권을 설정하거나 담보물을 양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9도14340). 대법원은 이와 달리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했다.
대법원은 또 "위와 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금전채무에 대한 담보로 부동산에 관하여 양도담보설정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채권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그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담보하기 위한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채권자에게 그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들어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 이루어지는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간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은 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고, 피고인을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피해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는데, 위 판결은 부동산이 국민의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부동산 매매대금은 통상 계약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뉘어 지급되는데,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매매대금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지급하고도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방지할 충분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래 현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부동산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종래의 견해를 유지한 것이라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는 이 판결의 다수의견에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재형,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대법관은 이에 대해,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저당권설정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고, 위와 같은 채무자의 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며 배임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타인의 사무에 관한 엄격해석을 통해 종래의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형벌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私法)의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클라스가 상고심에서 이씨를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