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불가항력을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Essam Al Tamimi 특별기고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록다운(lockdown)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중동 로펌 알타미미(Al Tamimi)의 설립자이자 회장(Chairman)인 에삼 알타미미(Essam Al Tamimi)가 코로나19와 관련, "불가항력을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관한 상세하면서도 깊이 있는 글을 작성해 공유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한국기업들이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계약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자 일반 국제거래에서도 참고가 될 수 있는 에삼 알타미미의 분석을 알타미미 한국팀의 도움으로, 전문 번역해 게재한다. 영문 원고의 제목은 "Coronavirus: can we rely on Force Majeure to terminate contractual agreements?"이다.
하버드 로스쿨(LLM)에서도 공부하고 Clifford Chance 런던 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에삼 알타미미는 1989년 고국인 UAE의 샤르자(Sharjah)에서 비서 1명을 데리고 개인 법률사무소를 시작, 로펌 알타미미를 변호사 수만 400명이 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독보적인 대형로펌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그는 여전히 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소송과 국제중재 분야에서 최고의 분쟁해결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를 도와 다양한 분야의 법률 제 · 개정 등 입법에도 기여하고 있다. 2019년엔 칼둔(Khaldoon) UAE 행정청장 등과 함께 변호사로는 유일하게 아랍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편집자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는 개인, 기업, 정부 차원을 넘어 전 세계에 걸쳐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들은 과연 사업을 유지할 있을지, 원자재 및 제품의 수급은 가능할지, 그간 체결한 각종 계약상 의무 등을 이행할 수 있을지 여부 등과 같은 중요한 경영상 판단을 해야만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직면해 있다.
관광(Hospitality), 스포츠, 문화 등의 특정 산업 분야에서는 각종 계약의 취소, 연기, 지연 등을 이미 목도한 것은 물론, 불행히도 전 세계적인 실직 대란이 불가피할 것임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결국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업 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어, 기존의 계약이행이 불가능해지며 자금난을 겪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계약 당사자들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유형의 분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결국 기업과 기업이 체결한 각종 계약의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각 단계에서의 법률 분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업무를 지속할 것인지, 대금 지급을 유예 및 중단할 것인지, 계약을 해지할 것인지, 무엇보다 이러한 판단을 통해 행해질 조치가 과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하여 고용주와 근로자, 채권자와 채무자, 거래처와 고객사 등의 관계에서 다각도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통 창구를 열어놓고 유지하는 것과 다양한 반응들을 수용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동일하게 중요하다. 특히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기업, 기관, 공장 그리고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영업활동 정지 제재를 내린 경우의 예를 든다면, 이는 일면 쉽게 불가항력(Force Majeure)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영향과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 또한 그 불가항력이 장기화하는 경우 그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는 지 여부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중동 국가들은 대륙법 체계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유사한 방법으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각자의 법률시스템과 분쟁 해결 절차 및 관할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고려해야 할 법적 쟁점 역시 상이하다. 많은 서방국가들의 경우 영미식 보통법(Common Law)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대륙법(Civil Law) 체계를 따르고 있기도 하다. 편의를 위해 본 기고문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법상 불가항력의 법리와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UAE 법률이 취하고 있는 입장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명시적인 불가항력 조항이 없는 경우라면 불가항력 조항이 목적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계약에서 불가항력은 특정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당사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로 규정되는데, 이는 특히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불가피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당사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법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불가항력의 면책 규정상 당사자는 계약상 채무불이행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UAE 민법(Civil Transaction Law No 5 of 1985) 제27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쌍방 당사자를 구속하는 계약에서, 불가항력이 일방의 계약상 의무 이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고, 계약은 자동적으로 해제된다(In contracts binding on both parties, if Force Majeure supervenes which makes the performance of the contract impossible, the corresponding obligation shall cease, and the contract shall be automatically cancelled).
(2) 일부 이행불능의 경우 계약의 해당 부분은 소멸되며, 이는 계속적 계약의 일시적 불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각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가 그와 같은 사정을 알았을 경우에 한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In the case of partial impossibility, that part of the contract which is impossible shall be extinguished, and the same shall apply to temporary impossibility in continuing contracts, and in those two cases it shall be permissible for the obligor to cancel the contract provided that the obligee is so aware).
코로나19 관련 상황에 대하여 제273조를 적용해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약 및 역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불가항력 사유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1. 계약, 역무 또는 활동이 코로나19의 현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플라스틱 컵을 제조 및 공급하는 공장이 필요 부품을 계속 조달 받고 공장 운영에 필요한 노동력에 차질이 없는 경우라면, 공장의 생산은 코로나19의 불가항력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불가항력 사유가 쌍방 당사자의 계약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행위의 본질 및 필요 부품의 가용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계약상 의무는 계속 유효하게 존속하게 된다(In the event the work, contracts or activities are not directly and wholly impacted by the current state of COVID-19, for example a factory that is producing and supplying plastic cups continues to be able to get the components required to make the cups as well as continue to have the labour force necessary to operate the factory – in this scenario the production of the factory has not been affected by the Force Majeure situation of COVID-19. Accordingly, the contractual obligations will continue and remain effective as the Force Majeure event does not apply to the nature of the activity and the availability of all components necessary for both parties to implement their contractual commitments).
2.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이 일방 또는 쌍방 당사자의 계약 이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 계약은 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효되고, 따라서 계약은 불가항력 사유로 인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If the Force Majeure due to COVID-19 makes the execution of the contract in relation to one or both parties impossible, then the contract is automatically rescinded by law, so that the contract is considered non-existent as a result of the subsisting Force Majeure event).
3. 불가항력 사유가 일시적인 경우라면 계약상 잔존 채무 대신 일부 이행이 가능할 수 있다. 이 경우 이행이 불가능해지는 계약의 일부는 계약에서 소멸되거나 유예될 수 있고, 이행 가능한 나머지 부분은 그러한 이행이 계약 일방당사자에게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는 이상 계속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일부불능에도 불구하고 이행이 가능할 경우, 계약상 의무 이행은 계약금액 및 계약기간의 조정, 계약의 일부 삭제 또는 계약기간의 연장 등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의 영향이 곧 종식되는 경우, 계약의 일부를 삭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계약의 이행이 일방에 대하여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If the Force Majeure event is temporary, then it may be possible to perform part of the contract and not the rest of the contractual obligations. In this scenario, that part of the contract, which becomes impossible to perform, may be removed and/or suspended and the other part, which is possible to perform, shall continue provided that such performance does not cause severe difficulties to one of the parties to the agreement. Accordingly, the contractual commitments can be amended by, for example, adjusting its value, its duration, deducting part of it, or extending its duration if it can be implemented despite the partial impossibility. For example, if the impact of COVID-19 ends soon, and part of the contract can be deducted and the rest of the agreement will be executed unless in this case the implementation of the commitment is exhausting, significantly for one of the parties).
4. 계약 이행이 부분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계약의 일방당사자는,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어렵다는 이유로, 또는 불가항력 사유에 의해 이행불능이 부분적 또는 일시적이지만 계약 체결 당시 의무가 현저하게 달라졌다는 이유(영미법상 Frustration의 법리와 유사함)로, 계약의 해지를 구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Even if the contract is partially impossible to perform, it is permissible for one of the parties to the contract to request the termination of the contract on the grounds that it is impossible or very difficult to fulfil the contract or the obligations have been transformed into radically different obligations from those undertaken at the moment of entry into the contract (akin to the English law doctrine of frustration) even if the impossibility is partial or temporary due to the Force Majeure event).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지만 불가항력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이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안들도 있다. 따라서 각 사안마다 제반 상황, 사실관계, 산업 분야 등 고유한 특징들을 고려하여 불가항력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 또한 그 같은 상황은 매일 변하므로 이러한 상황 변화가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두바이 교육부는 가장 먼저 학교 및 학원의 잠정적인 폐쇄를 지시하였지만, 이는 영구적인 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학교 및 학원은 여전히 교직원들과의 고용관계를 유지한 채 온라인 수업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수업료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산업분야는 좀 더 늦게 영향을 받은 바, 이는 같은 불가항력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각 산업 분야나 섹터별로 영향을 받는 시기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법원에 '채무자 부담 완화' 재량권 있어
UAE 민법 제249조는 예견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여, 계약의 이행이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채무자에게 과중한 손실을 줄 우려가 있어 채무자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 법원은 제반 상황 및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비교형량하여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채무자의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에 반하는 합의는 무효에 해당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산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예외적인 사건으로, 향후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견이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또 그 효과가(예를 들어, 비상 조치의 실행 전후) 계속 동일하게 지속될 것인지 여부는 의문이다. 따라서 계약상 의무의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 경우 또는 계약을 지속할 경우 코로나 19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라면, 계약당사자들은 따라서 민법 제249조를 근거로 채무 경감을 통해 계약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계약금액의 감액, 유예기간 부여 및 법원 재량 하의 다른 구제방안들이 포함될 수 있다.
불가항력 및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판단기준은 쌍방당사자를 구속하는 계약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가 없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불법행위, 즉 법령이나 정부의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도 적용된다.
UAE 민법 제282조는 자신의 불법행위로 인해 상대방이 입은 직접적인 손해에 대하여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배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해당 손해가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 즉 갑작스런 사고나 불가항력, 제3자나 피해자 자신의 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라면 면책된다.
"직접 영향 받으면 계약 해지 정당화…계약 조건 수정도 가능"
이상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 없었던 다수의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를 불가항력 사유로 판단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큰 틀에서는 일부 개인 및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특정 사업 분야의 경우 불가항력을 적용하여 계약 해지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더라도,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수급 기간의 지연 등 변화한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는 역무 및 행위에 한해서는 쌍방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 조건을 수정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불가항력 사유나 변화된 환경에 따른 영향 없이 지속되는 특정 계약 및 사업의 경우에는 불가항력을 사유로 한 면책이 적용될 수 없겠지만, 이 역시도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고 경제적 상황이 변화할수록 점차 영향을 받을 수 있고, 특히 이러한 변화에 따라 개인 및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이 뒤따르는 경우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 중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이해당사자, 계약당사자 나아가 커뮤니티 차원에서 소송, 중재 등의 법적 절차 없이 가능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해지해야만 하는 경우라면 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해 계약상 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 및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같은 시각은 비단 시공자, 건물주, 매도인, 매수인 및 수출입업자 등뿐 아니라,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과 고객사, 고용주와 피고용인, 교육기관과 학생, 항공 등의 운송 업체와 승객 등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이미 영향을 받았거나 향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게 될 모든 산업 및 직종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속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되어 모든 관련 기업들의 사업이 정상화되고 종국에는 가장 조화롭고 건강한 방식으로 사회가 복구되길 기원한다.
Essam Al Tamimi(e.tamimi@tamim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