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의 활용
CP 활성화는 새해 주요 정책과제 중 하나…공표명령 면제 등 유인 강화
국정농단 사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국내 대기업 A 임원에 대한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계속 중인데, 최근 이 사건의 재판부가 A 임원에 대하여 몇 가지 요청을 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재판부가 A 임원에게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 작동이 필요하다", "재벌 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데 기여해 달라", "심리 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 주시기 바란다."
5천억 이상 상장사는 준법지원인 선임해야
이와 관련하여, 기업 법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미 어느 시점부터 기업경영에 있어서 준법감시, 준법지원, 준법경영,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등의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 기업환경의 어떠한 측면에서 필요한지,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구현하고, 또 평가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이 준법지원팀, 준법경영팀, 컴플라이언스팀 등 조직을 만들어 왔고, 이미 상법은 자산총액 5천억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준법지원인'을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정하고 있으며(제542조의 13),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도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는 '준법감시인' 임면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제25조).
높은 수준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춘 해외 기업들에서 컴플라이언스팀은 주로 사전적인 의미의 기업활동에 대한 법 준수 및 리스크 관리, 규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법무팀(legal department)은 주로 사후적인 의미의 법률적 대응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준법'으로 해석되는 이러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일관된 기준이나 규정 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2002년부터 공정거래 관련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개념을 도입하고, 우수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이를 적극 장려해오고 있다. 이하에서 최근 다시 공정위가 컴플라이언스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배경과 2019년 10월 22일 개정된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 운영 및 유인 부여 등에 관한 규정(이하 "CP 규정")을 중심으로 CP(compliance program, 이하 "CP")의 요건, CP 설치 · 운용에 대한 기준, 평가방법 등 공정거래법 준수 측면에서의 CP 정책 등을 살펴보겠다.
다시 CP에 관심을 가지는 배경
공정위는 지난 2018년 11월 19일 국회에 제출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통하여, 공정거래 자율준수 문화의 확산을 위한 CP 평가제도 및 그 평가결과에 따른 포상 및 지원 근거를 공정거래법에 명시하는 의견을 제안하였다. 이에 더하여, 조성욱 신임 공정위원장은 지난 12월 19일 공정위의 2020년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주요 정책과제 중 하나로 기업의 자율적인 법규 준수 문화 조성을 위한 CP 제도 활성화를 제시하였다.
현재 국회에 CP 평가제도의 법률 명시 등 전부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공정위가 CP 활성화를 주요 정책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은 그 동안 정부 주도의 정책 추진만으로는 근본적인 시장질서 개혁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준법경영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등을 통하여 자율적인 공정거래 문화 확산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정위는 이러한 CP의 개선 및 활성화를 위하여 10월 22일 공정위 CP 규정을 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지속적으로 사전적이고 자율적인 공정거래법 준수 문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CP 도입을 장려하고, CP 운영에 따른 인센티브를 적극 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러한 공정위 정책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CP 도입 및 등급 평가에 따른 혜택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CP 제도의 내용
공정위가 200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CP 제도란, 공정위 CP 규정에 근거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기업에게 CP 등급평가를 하고, 일정 등급 이상을 취득하면, i)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의 공표 의무를 면제 또는 감경하고, ii)공정위의 직권조사를 1년에서 2년까지 면제해 주는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과거에는 최우수 CP 등급을 받은 기업에게는 공정위 소관 법령 위반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할 때 최대 20%까지의 과징금 감경이라는 상당한 혜택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이 직접적으로 CP 제도 및 이로 인한 혜택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과 지나친 과징금 감경 혜택은 오히려 기업들이 위법행위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어, CP로 인한 혜택은 당초보다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정명령 공표 의무 면제, 감경뿐만 아니라 직권조사 면제 등 실제 기업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인이 제공되고 있다.
CP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1년 이상 CP를 운영한 업체가 CP 등급평가를 신청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CP 등급평가 업무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2010년부터 공정위로부터 위임을 받아 수행하고 있다.
CP의 도입 요건 및 평가방식
기업이 CP를 도입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CP 기준과 절차 마련 및 시행 (2)최고경영자의 자율준수 의지 및 지원 (3)CP 운영을 담당하는 자율준수관리자 임명 (4)자율준수편람의 제작 · 활용 (5)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자율준수 교육 실시 (6)내부감시체계 구축 (7)공정거래 관련 법령 위반 임직원에 대한 제재 (8)효과성 평가와 개선조치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CP 등급평가를 신청하면, 우선 평가위원이 평가 기준을 중심으로 기업의 CP 운영자료를 바탕으로 평가하고(1단계 서류평가), 이 서류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위원이 기업 현장을 방문하여 자율준수관리자와의 면접, 운영실사 등을 진행한다(2단계 현장평가). 각 단계별 평가결과를 분석한 후, 공정위가 신청 기업에게 최종 등급을 통보하며, 이 결과는 대중에게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평가에 소요되는 비용은 CP 등급평가를 신청한 기업이 부담한다.
평가등급은 "AAA(최우수)" 등급에서 "D(매우 미흡)" 등급까지 6등급(AAA, AA, A, B, C, D)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등급평가 결과 A등급 이상 기업 중 공정거래 관련 법규 위반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는 등 CP 제도의 공정성 및 신뢰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평가등급을 부여하는데 부적절한 사유가 있는 기업에 대하여는 해당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평가등급 부여를 보류하거나, 평가등급을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
CP 평가등급의 유효기간은 2년이지만, CP 등급평가를 받은 기업이 유효기간 내에 공정거래 관련 법규 위반으로 인하여 과징금 부과처분, 고발처분을 받은 경우에는 제재 1회당 기존에 인정받은 평가등급을 하향 조정한다(과징금 부과는 1단계, 고발은 2단계 하향).
CP 규정 개정의 주요내용
공정위가 2019. 10. 22.부터 시행하는 CP 규정의 주요 개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 위반 이력 사업자의 등급평가 신청 제한 규정을 삭제하여, 법 위반을 기업의 법규 준수에 대한 새로운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앞으로는 기업이 법 위반 이력에 관계없이 등급평가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단계 서류평가, 2단계 심층면접평가, 3단계 현장방문평가로 이루어지던 3단계 등급평가 절차를 2단계(서류평가, 현장방문평가)로 개편하여 효율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였고, 8등급으로 과다하게 세분화된 평가 등급을 6등급으로 개편하여 평가 등급 체계의 합리성을 높였다.
AAA 기업엔 공표명령 면제도 가능
이전에는 시정조치 공표명령의 '감경'만 가능했는데, 이제는 최우수(AAA) 평가를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공표명령의 '면제'가 가능하도록 유인을 강화했으며, 2년 연속 등급평가 결과가 AA(우수) 이상인 기업에 공정위원장이 표창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일반적으로 법 규범의 강제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이나 제재와 같은 불이익을 주는 것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제재와 달리 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자에 대하여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여 법 준수를 유도하는 유인책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규제 중심의 정책 추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기업의 자율적인 준법 문화 확산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공정위 역시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다시 CP 확산을 추진 중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미 기업의 준법경영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기업 및 국가기관 또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후적인 규제나 처벌 외에 사전적인 의미의 준법감시, 제재, 법 위반 가능성 축소 등은 앞으로의 기업 경영에 필수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이에 공정위의 CP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미 CP를 도입한 기업은 등급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아직 CP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은 CP 도입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CP가 확립된다면 그로 인한 혜택도 향유하면서, 궁극적으로 법 위반에 따른 리스크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류태일 · 최슬기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taeil.ryu@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