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보이스피싱 범행 구체적으로 몰라도 미필적 인식으로 도왔으면 유죄"

[북부지법] "1% 보수 제의에 20회 이상 1800만원 받아 무통장 입금"

2019-11-12     김진원

보이스피싱 범행 전반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 등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것임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범행에 나섰다면 사기방조 유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북부지법 송유림 판사는 최근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부터 '고객을 만나 돈을 받아 지정하는 계좌로 무통장 입금을 하면 해당 금액의 1%를 보수로 지급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1800만원을 받아 무통장 입금시킨 혐의(사기방조)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2019년 1월 중순경 '해외 비트코인을 대신 구매해주는 구매대행 업체'라고 소개하는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부터 돈을 받아 무통장 입금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사실은 이 제안이 보이스피싱 범행을 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도와주기로 승낙했다. 이 조직의 또 다른 보이스피싱 유인책은 2019년 2월 피해자 B에게 전화로 '국민은행 직원인데 정부정책 자금으로 3%의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겠다. 먼저 기존 대출금을 지정하는 계좌로 상환해라'는 취지로 거짓말하여 이에 속은 B가 C 명의의 새마을금고 계좌로 1800만원을 교부하자 모집책의 지시를 받은 A가 서울 성북구에서 C를 만나 'D 대리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서 이 돈을 받아 무통장 입금시킨 사건이다.

A씨는 재판에서 "해외 비트코인 구매대행을 위한 자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았을 뿐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송 판사는 그러나 "설령 피고인이 성명불상자 등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보이스피싱 범행 전반에 대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 등을 모두 알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것임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인식 또는 예견하였음에도 이를 용인하면서 범행을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 판사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아 지정된 계좌에 입금하는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 전달한 금액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보수로 받는다는 것은 그 업무의 난이도 등에 비해 매우 이례적으로 높은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어서, 그 대가만 보더라도 이는 합법적인 일에 대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고 봄이 상당하고,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끼리 직접 계좌이체를 하는 등 다른 간편하면서도 안전한 거래방법들이 있음에도 서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통해 현금을 주고받고, 그 돈을 다시 신원을 모르는 다수의 입금자 명의로 나누어 입금하는 방법으로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오늘날 정상적인 금융거래방법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을 만큼 이례적"이라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피고인은 자신에게 현금 전달을 제안한 성명불상자(일명 '동실장')에 관하여 카카오톡 내지 메신저를 통한 연락처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위 성명불상자가 재직한다고 주장한 '## 컨설팅'의 실재 여부, 이례적으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납득할 만한 이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주고받는 이유 등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성명불상자의 제안을 승낙하고 범행으로 나아갔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의 구체적인 범행내용이나 수법 등을 보더라도, i)피고인은 성명불상자로부터 현금을 받은 다음 피고인이 받을 대가(수수료) 상당액을 뺀 나머지 금액만을 전달한 점, ii)피고인은 오직 메신저를 통해 돈을 전달해 주는 사람의 용모나 복장 특징, 전달받을 금액, 금액을 입금할 계좌 및 입금명의인의 인적사항 등을 지시받아 그 지시에 따라 돈을 받아 입금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시로 현재 위치, 돈의 전달 및 입금여부 등을 보고한 점, iii)피고인은 약 10일간 20회 이상 위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였는데, 그동안 매번 피고인에게 돈을 준 사람이 다르고, 그럼에도 그 전달자의 인적사항에 관하여도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전달자를 만나면 피고인 역시 아무런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은 채 나아가 '동실장'으로부터 지시받은 대로 '송## 대리가 보낸 사람이다', '정## 팀장이 보낸 사람이다', '김## 대리가 보낸 사람이다', '권## 대리가 보낸 사람이다'라는 등 그때그때 다른 허위의 내용을 말하기까지 한 점, iv)피고인은 전달받은 돈을 입금할 때 '동실장'으로부터 지시받은 대로 다수의 인적사항(성명 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까지 포함되어 있다)을 참칭하여 여러 명의 사람들이 소액씩 입금하는 것처럼 분산 입금하는 방법을 취했고, 그 입금자들 명의 역시 계속하여 변동하였던 점 등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거래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정들이 다수 존재한다며, "피고인은 위와 같은 이례적인 사정들에 대하여 단지 '비트코인(암호화폐) 거래의 관행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하는데, 피고인이 실제 비트코인의 거래방식이나 관행 등에 대하여는 위 '동실장'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냐고 물어본 외에는 달리 알아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화금융사기(일명 보이스피싱)는 전체적인 범죄를 계획하고 지시하는 '총책', 피해자를 기망, 공갈하는 '유인책', 대포통장 또는 현금카드, 범행 계좌 등을 모집하고 전달하는 '모집 및 전달책', 현금지급기에서 피해자들이 이체한 돈을 인출하거나 직접 전달받는 '인출책', 인출책으로부터 현금을 교부받아 국내 혹은 국외의 총책에게 전달하는 '현금전달책', 입금된 범죄수익금을 전달하는 '송금책' 등 여러 단계의 점조직을 갖추어 지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적인 범행이다.

송 판사는 양형과 관련,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조직적 · 전문적으로 저지르는 자들의 현금수금책으로서의 역할을 분담하여 그들의 범행을 방조한 것으로서,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공범인 성명불상자가 편취한 돈을 궁극적으로 취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