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미국 특허 간접침해와 그 대응방안

[이승헌 변리사]

2018-10-10     김정덕

"미국에 있는 고객사에 부품을 납품하는데 저희도 미국 특허권의 침해에 해당될 수 있나요?"

◇이승헌

미국 특허권은 완제품에 관한 것인데 일부 부품만을 납품하는 경우에도 해당 특허권의 침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한국 회사들이 있다(고객사가 해당 부품으로 인해 특허권자로부터 침해소송을 당하는 경우 고객사가 부품사에게 IP Indemnity 계약에 기한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허권자는 간접침해를 이유로 부품사를 직접 제소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특허의 직접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침해자가 특허 청구범위에 기재된 발명의 모든 구성요소를 실시(생산, 사용, 판매 등의 행위)해야 한다. 따라서 특허권으로 보호되는 완제품의 구성요소들 중 일부만을 판매하는 위 한국 회사는 특허의 직접침해 책임을 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직접침해 외에도 유도침해(induced infringement) 및 기여침해(contributory infringement)와 같은 간접침해 규정의 입법을 통해 특허권자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도침해와 기여침해는 어느 경우에 인정될 수 있는지 간략히 살펴보자.

유도침해

미국 특허법 271조 (b)는 ‘특허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자는 침해자로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도침해의 요건은 여러 판결들을 통해 구체화되어 왔는데 이를 요약하면, (1)제3자에 의한 특허권의 직접침해가 발생하고, (2)유도행위가 있었으며, (3)특허권의 직접침해 행위를 유도하려는 인식이 있는 경우 특허권의 유도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위 (3)번 항목, 즉 유도침해가 인정되기 위한 주관적 인식의 정도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06년 DSU Medical 사건에서 '직접침해를 구성할 행위에 대한 인식을 한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특허의 존재를 인지하고 침해행위를 조장하려는 특별한 의도까지 있어야 한다'며 주관적 인식 요건의 인정 범위를 좁게 보았다. 그러나 2011년에 이르러 미국 연방대법원은 Global-Tech 판결을 통해 ‘특허 침해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었던 경우는 물론이고 이러한 인식을 의도적으로 회피(willful blindness)한 경우에도 침해 인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주관적 인식 요건의 인정 범위를 확장하였다. 따라서 ‘나는 특허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유도침해 책임이 없다’는 식의 회피만으로 유도침해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여침해

미국 특허법 271조 (c)에 기한 기여침해는 (1)제3자에 의한 특허권의 직접침해가 발생하고, (2)기여침해자는 자신의 부품이 특허 대상 완성품을 위해 제조/적용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3)해당 부품은 상당 수준의 비침해 용도가 없고(전용품이고) 완성품의 중요한 부분인 경우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부품이 침해품과 관련이 없는 다른 용도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요건들을 모두 만족한다고 해도 기여침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다만 유도침해 책임은 질 수 있다). 한편 미국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06년 DSU Medical 판결을 통해 해당 기여행위가 '미국 내에서' 발생해야 기여침해가 인정된다는 지역적 제한을 부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간접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요건별로 상세히 판단을 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유도침해와 기여침해 이슈가 있는 당사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간접침해 이슈에 대한 대응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간접침해 책임이 인정되려면 침해자의 주관적 인식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정황 증거만으로 이를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간접침해를 주장하는 특허권자의 경우 잠재적으로 간접침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에게 미리 특허번호, 제품 및 제품이 어떻게 해당 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하는지 분석한 내용을 기재한 서신을 보내둠으로써 추후 소송에서 주관적 인식 요건을 용이하게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상대방이 특허권자를 상대로 IPR(무효심판)이나 DJ Action(특허 비침해 ·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반면 간접침해 주장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변호사의 특허 침해 여부 검토를 통해, 특허 비침해 의견서를 미리 받아두는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해당 특허를 비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자라면 위에서 설명한 간접침해의 주관적 성립요건의 결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 특허가 무효라고 믿은 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까? 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5년 Commil 사건에서 '유도침해에 있어서 주관적 요건은 침해행위의 인식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 특허 유효성의 인식에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함으로써, 선의로 해당 특허를 무효라고 믿었던 사실 만으로 간접침해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간접침해에 있어서 변호사의 무효의견서는 유효한 방어 수단이 될 수 없다.

이 밖에 청구범위를 잘못 해석한 경우라도 그러한 해석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기여침해 책임이 없다는 판결(2016년 연방순회항소법원 Philips 판결), 특허권자는 상대방이 비침해라고 믿었던 것이 비합리적이었음을 보임으로써 간접침해의 주관적 성립요건의 충족을 증명할 수 있다는 판결(2016년 연방순회항소법원 Warsaw 판결) 등이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간접침해 주장을 방어하는 입장에 있는 자는 합리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정보를 변호사에게 제공한 후, 청구범위 해석에 대한 내용을 충실히 포함한 침해 여부 의견서를 받아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다.

한국의 간접침해 규정 개정 동향

한국 특허법은 전용성이 있는 물건에 한정하여 기여침해를 인정하는 제127조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그 밖의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하고 있는 바가 없다. 따라서 특허권자의 보호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다행히 최근 한국에서도 특허권의 실효적인 보호를 위해 간접침해 규정의 개정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전용물이 아닌 경우에도 간접침해의 적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거나, 미국과 같이 특허침해 유도행위에 대해 간접침해 책임을 인정하는 한편 간접침해가 적용되는 범위를 핵심 부품인 경우로 한정하거나 주관적 인지요건을 부과함으로써 간접침해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 비즈니스 환경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공급선이 다변화되면서 부품, 서비스별로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는 수십 년 전 제정된 기존 특허 침해규정과 이에 기초한 부분적인 개정만으로 특허권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간접침해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의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어 한국도 금번 특허 침해규정의 개정을 통해 특허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승헌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shlee6@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