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에서의 Localization

[정진환 변호사]

2018-07-09     김정덕
◇정진환 변호사

지난 몇 년간 제약업계에서는 대규모 글로벌 M&A가 진행되었다. 2016년부터 직전 10년간의 제약업계 M&A 규모가 2조 4,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자료도 있고, Wikipedia에 따르면 역대 제약업계의 상위 20대 M&A 중에서 7건이 지난 2015년 이후에 진행되었으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그 규모는 12건에 달한다.

제약업계에서 M&A가 활성화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조 단위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신약 개발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약 후보물질의 개발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나아가 화학에 기초한 전통 제약에서 바이오에 기반한 제약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도 그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국내 제약시장, 세계 1~2% 불과

이러한 글로벌 차원에서의 M&A는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의 규모가 전 세계 제약시장의 1~2% 정도에 불과하고, 국내 제약기업이 지속적으로 그 규모를 키우고 R&D 투자를 늘리는 한편 해외시장 개척에도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글로벌 제약기업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까닭에 대한민국이, 그리고 한국기업이 글로벌 M&A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Localization은 "지방분권; 지방화; 국지 해결" 등으로 영한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M&A 관련 칼럼에서 '지방화'를 얘기하는 것이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글로벌 M&A에 있어서의 localization은 해당 국가의 법령에 따른 M&A process의 진행을 의미한다.

규제산업 분야에서 실행되는 글로벌 M&A의 경우 이러한 localization이 중요한데, 특히 제약업의 경우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제품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개발 완료 후 판매 단계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이 정부의 규제 아래 놓여 있는 까닭에 localization의 효율적인 진행이 글로벌 M&A의 성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컨대 개발 중인 신약을 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전 승인을 받은 후 임상시험기관과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글로벌 M&A의 과정에서는 이러한 정부 승인과 임상계약의 이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임상계약 이전 문제 해결해야

물론 이와 같은 정부 승인이나 계약의 이전 문제는 일견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영업양도의 형태로 진행되는 M&A에 있어서 양수회사가 국내에 법인을 두고 있지 아니하면, 임상시험 관련 법규에서 정한 요건의 충족을 위해 양수인이 국내에 별도의 법인을 신설하거나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활용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고, 글로벌 M&A가 예정된 시한 내에 종결(closing)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슈에 대한 적확한 분석 및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localization을 담당하는 변호사의 책무가 될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의약품의 품목허가권자와 통관 서류상의 수입자가 동일해야 하므로, 제약 분야 글로벌 M&A의 localization을 담당하는 경우 단순히 약사법에 관한 자문뿐 아니라 관세법 관련 자문도 함께 제공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의 경우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이 강제되어 있고, 주요 의약품들에 대한 요양급여가 인정되고 있는 까닭에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수입자 변경에 따른 보험급여 문제에 대해서도 법률자문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통관이나 보험급여 문제가 단순 법률자문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통관 시기의 조정을 위해서는 사전에 생산 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보험급여 변경의 경우 개별 의료기관의 전산 코드 변경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는 까닭에 이를 고려한 기존 재고의 적정 보유도 필요하므로, 사업적인 측면에 대한 자문이나 조언이 함께 제공되어야만 원활한 localization 및 글로벌 M&A의 성공적인 종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관세법, 보험급여 자문도 필요

M&A는 기업법무의 꽃이고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 예술가로서의 M&A 변호사는 실사, 계약서 작성 및 수정, 협상, 종결 및 종결 후(post-closing) 업무에 이르기까지 고객의 단순한 자문역을 넘어서 고객의 동반자로서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역할에 대한 고객의 요청도 점차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률지식 이외에 업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춰야 하고, 또한 고객의 니즈에 능동적(proactive)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M&A 변호사의 자질과 능력이 보다 돋보일 수 있는 분야가 제약산업을 비롯한 규제산업 영역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탈(脫)규제, 규제 완화의 요청이 드높고 또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라든가 창의적 경제발전의 관점에서는 규제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안전이나 환경과 직결되는 산업영역에 있어서는 그 규제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고, 또한 그 필요성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의약품의 경우 효능(efficacy)과 안전(safety)을 양대 축으로 하여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의약품이 국민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시대가 도입되어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어서 약제비용에 대한 규제 내지 통제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 주체의 사적 이익 추구가 극대화되는 M&A 영역에서 그와 대척점에 서있는 규제의 틀과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M&A 추진 주체의 사익과 규제가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이 적절히 조화점을 찾도록 하는 것이 제약을 비롯한 규제산업 분야 M&A 전문변호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는 제약업계의 글로벌 M&A를 진두지휘하는 영미 로펌 변호사들의 능력과 역할에 솔직히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글로벌 M&A에 있어서 M&A를 추진하는 주체가 직접 개별 국가의 법률자문사를 선정하는 예는 흔치 않다. 오히려 해당 M&A 당사자에게 오랜 기간 동안 자문을 제공하여 왔던 영미계 로펌이 lead counsel로서 수십 개 국가에 산재한 'local' 로펌을 물색하여 'localization' 업무를 의뢰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Lead counsel이 로컬 로펌 물색

Lead counsel의 이러한 역할을 업무의 재위탁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으나, 개별 국가에 고유한 법적 문제를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수십 개 국가의 로컬 로펌이 통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양식으로 질의서와 체크 포인트 등을 작성하여 배포하여 취합하고 이를 분석하여 M&A 거래 당사자들이 원하는 시한 내에 거래가 종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는 한 수행하기 어려운 직무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제약기업이 글로벌 M&A의 거래주체가 되어 한국 로펌에 lead counsel의 역할을 부여하고, 한국 로펌이 선진 각국 로펌을 'local law firm'으로 선정하여 글로벌 M&A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정진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jinhwan.chung@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