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조달청 계약보다 고사양 의자 공급 이유 입찰참가자격 제한 위법"
[대전고법] "재량권 일탈 · 남용"
조달청과 물품구매계약을 맺은 업체가 지방자치단체의 요구에 따라 계약에서 정한 의자보다 고사양의 의자를 공급했다. 법원은 이를 이유로 3개월의 입찰참가 제한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전고법 행정2부(재판장 최창영 부장판사)는 6월 20일 연결의자 제조 · 판매업체인 H사가 "3개월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취소하라"며 조달청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7누11679)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상고심 판결 선고 시까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했다.
H사는 2014년 7월 조달청과 약 1년 전에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된 연결의자를 수요기관인 지방자치단체에 납품하는 내용의 물품구매계약을 체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7월경 지역발전정책의 일환으로 개봉관이 없는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최소 20개의 '작은 영화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2015년까지 지원계획을 밝힌 데 따른 것이었다. 지원규모는 관람의자 1석당 33만원씩 100석 합계 3,300만원 정도. 이 물품구매계약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인 H사와 조달청 사이에 이루어지고, H사는 수요자에게 계약에 따른 이행을 하며, 조달청은 계약체결업무의 대가로 수요자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그런데 영월군, 진안군, 장흥군, 고령군, 고흥군, 합천군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프리미엄급 관람의자의 납품을 요구, H사가 2016년 5월경까지 극장식 의자를 수요기관에 납품하였으나, 조달청이 수요기관에 납품한 연결의자가 물품구매계약에 따른 우수조달물품이 아닌 일반제품이라는 이유로 3개월간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자 H사가 소송을 냈다.
H사가 공급한 극장식 의자는 연결의자와 비교하여 좌석 폭이 넓고, 의자에 앉을 때 소리나 진동이 발생하지 않으며, 착석감이 좋고 마무리가 천이 아닌 가죽으로 되어 있어 청결상태 유지가 용이하다. 가격도 개당 약 40만원이 넘는 등 조달청이 H사에 요구했던 의자보다 비싸다. 조달청이 H사에 요구한 납품요구서에는 연결의자 중 단가 35만원인 의자가 납품요구대상인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또 연결의자에 적용된 특허기술은 '좁은 영화관에서 자동으로 접히는 기술' 등인데 극장식 의자가 설치된 곳은 공간이 넓어 굳이 이 기술이 적용될 필요가 없었다.
재판부는 "원고가 우수조달물품이 아닌 다른 물품을 요구하는 수요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그에 부응한 측면이 있지만, 그 목적이나 경위가, 국가계약법에서 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조달사업법에서 우수조달물품을 지정하여 예외적으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한 취지를 해치려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물론 조달계약은 공급자와 피고가 계약당사자가 되고 수요자는 마치 제3자를 위한 계약에서 수익자 유사한 지위를 가지게 되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공급받는 물건의 대가는 결국은 수요자가 피고에게 지급하고 피고는 거기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급자에게 지급하는 구조이니 입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다면 수요자의 의사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우수조달물품보다 더 고사양의 물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절차의 투명성이 훼손되지도 않았고, 예산낭비적 요소도 발생하지 않아 국가계약법이나 조달사업법의 입법취지를 크게 훼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 책임을 온전히 공급자인 원고에게만 물어, 다소 불분명한 근거규정을 가지고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과 같은 중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해 보이고, 원고는 연 매출 147억원 정도의 중소기업으로 47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으로 상당기간 사업상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 예상된다"며 "원고의 위반행위 내용, 위반의 정도, 처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상 필요와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행위로 침해된 공익의 정도에 비하여 원고가 처분으로 입게 될 불이익이 훨씬 크다고 판단되므로, 결국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은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 · 남용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지자체 담당자들은 관리의 용이성이나 편의성 등이 고려된 적절한 물품에 관한 의견을 나누다가 조달품목에 등재되지 않는 프리미엄 의자가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경쟁입찰을 거칠 경우 공고기간 등이 소요되어 예정된 공사기간을 맞추기 어려워 H사에 예산에 맞추어 공급을 원한다면서 조달품목이 아닌 이른바 프리미엄급 제품의 납품을 요구했고, H사는 우수조달품목을 등록한 업체라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조언해 고사양 의자의 납품이 이루어졌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