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문' 김지수 변호사의 'Sink or Swim'
기업체 근무 20년, 로펌 변호사 8년
법무법인 율촌의 김지수 미국변호사가 5월 15~16일 도쿄의 오쿠라 호텔에서 열린 제50회 한일경제인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번 회의에 참석한 몇 안 되는 변호사 중 한 사람인 그는 율촌에 합류하기 전 20년간 일본에서 활동한 일본 전문가이자 서울재팬클럽(SJC) 회원으로, 이번 회의도 그런 위치에서 참석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북한과의 경제협력, 북한에 대한 투자가 단연 가장 관심을 끈 주제였다"고 소개하고, "한국과 달리 사람이 없어서 야단이라는 일본의 구인난과 한국과 일본의 고령화 사회 진입 등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고 전했다.
2년 전 율촌 합류
2016년 10월 율촌에 합류한 김 변호사는 한국 자본의 일본 투자, 일본기업의 한국 투자 등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특히 자산운용사 등의 일본 부동산 투자가 그가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로, 김 변호사는 지난해 9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국내에 설정한 공모부동산펀드가 일본에 설립한 합동회사(GK)를 통해 도쿄에 소재한 Ariake Central Tower 빌딩에 투자하는 1800억원 규모의 거래에 주도적으로 자문했다. 김 변호사는 GK 방식으로 이루어져 나중에 투자이익이 나더라도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일본의 낮은 금리로 금융을 일으켜 일본 투자의 메리트를 십분 활용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지스자산운용이 국내에 설정한 사모펀드가 같은 GK 방식을 이용해 도쿄에 있는 임대주택 3동에 350억원을 투자하는 거래를 수행, 지난 3월 말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무리했다. 이외에 또 다른 일본 내 오피스 빌딩 투자를 진행 중이라는 그는 "일본 상사들이 북한팀을 만드는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하고 있고, 일본기업의 한국 투자도 앞으로 증가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미국의 로스쿨을 나와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가 어떻게 해서 일본 전문가가 되었을까. 변호사 경력 28년째인 그의 흥미진진한 이력을 들춰보면 궁금증은 금방 풀린다. 그는 또 로펌에서의 활동보다도 투자은행, 기업체, 자산관리회사 등에서 사내변호사, 경영진으로 근무한 기간이 더 긴 다양한 경력의 주인공으로, 율촌 근무가 로펌 변호사로서는 네 번째 근무가 된다.
91년 미 변호사자격 취득
그는 1991년 미국 코네티컷주, 92년 뉴욕주 변호사자격을 취득, 2018년 현재 변호사가 된 지 근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로펌 변호사로서의 활동은 율촌에서의 그것을 포함해 8년밖에 안 된다. 나머지 20년은 모건 스탠리, GE, 일본의 유니클로 지주회사인 Fast Retailing, 지금은 중국의 시틱(CITIC)그룹 소속인 CLSA에서 법무담당 임원, 인베스트먼트 뱅커, 경영담당 임원, COO, 해외 자회사 사장 등을 맡아 기업 일선에서 활약했다. 담당했던 업무는 법무와 컴플라이언스는 물론 부동산 투자, 투자금융, PE, 소비자 부문 등 광범위한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에게 자문하기보다 기업체에 소속되어 직접 사업을 펼치고 로펌 등에 자문을 구하는 클라이언트의 위치에서 더 많은 변호사 경력을 쌓아온 셈이다.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제게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성격이 변호사가 되어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저를 이끌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가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근본바탕은 미국의 포담(Fordham) 로스쿨(JD)을 나와 취득한 변호사자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든다면 브라운대 학부에서 전공한 경제학 지식과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의 외국어 실력이 뒷받침이 되었다.
CLSA까지 일본에서만 20년 동안 근무했다는 그가 수 십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데 국내 시중은행의 일본 지점에 발령받은 아버지께서 국제학교가 아닌 일본의 공립 소학교에 저를 전학시켰어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데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되는 아주 극한적인 상황에 저를 일부러 빠트리신 겁니다. 일본어는 그때 집중적으로 익혔어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돌아온 그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2학년이 되었을 때 이번엔 미국의 코네티컷주에 있는 고교 기숙학교로 옮겼다. 지금은 초등학교나 중,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조기유학하는 학생들이 꽤 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미국 고교행은 매우 드문 결정이었다.
김 변호사는 "서울에서 다니던 고교에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아버지가 그냥 무조건 집어넣은 거"라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말도 잘 안 통하고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미국에서 고교를 마친 김 변호사는 곧바로 브라운대에 입학했다. 조기유학의 조그마한 결실을 거둔 것이다. 또 일본과 미국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익힌 일본어와 영어가 그가 이후 로펌의 변호사 또는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김 변호사는 일본의 소 · 중학교와 미국 고교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얻은 교훈을 'Sink or Swim'이란 함축적인 표현으로 요약했다. '빠져 죽거나 아니면 헤엄쳐 살아 나오라'는 주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겐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태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린 시절 일본과 미국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제게 그런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이러한 자세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로펌과 기업체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유니클로 파리 시절 애먹어
물론 그가 어려운 상황을 항상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김 변호사는 "일이 잘 안 풀려 싱크(sink)되었다는 느낌, 우울증 등을 느낀 적도 있다"며 "유니클로의 프랑스 자회사 사장으로 나가 한 장에 1000엔 하는 티셔츠 등을 팔 때 본사의 기대와 달리 현지에서의 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브라운대를 졸업한 그는 콜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곧이어 포담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어 얻은 첫 직장은 뉴욕에 나와 있던 영국계 로펌으로, 여기서 그는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로 3년간 변호사 업무를 익혔다. 이어 1994년 서울의 우방법률사무소로 옮겨 1년간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이나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 등에 자문했다. 그의 첫 번째 한국 로펌 근무다. 우방에서 근무한 지 1년 만인 1995년 그는 미국의 유명 로펌인 데이비스 포크(Davis Polk & Wardwell)에 합류해 도쿄와 뉴욕사무소에서 2년간 한국과 일본기업의 해외증권과 채권의 발행 및 상장, 크로스보더 M&A, 조인트벤처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서울에 있는 로펌에서 근무할 때 미국변호사로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어요. 그때만 해도 크로스보더 일이 많지 않아 그랬는데, 일본에 있는 로스쿨 동기들은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거예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데이비스 포크의 파트너 변호사에게 얘기해 데이비스 포크 도쿄사무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 일본에서 살아 일본어, 일본 문화에 익숙한 점 등이 고려되어 뉴욕에서 잠시 훈련을 받은 후 줄곧 도쿄에서 근무했어요."
그러나 김 변호사의 초기 로펌 근무는 일단 여기서 끝난다. 그는 1997년 데이비스 포크를 떠나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 도쿄지점으로 옮겼다. 처음 몇 년은 사내변호사로서 법무와 컴플라이언스를 담당했다. 이어 2001년부터는 사업부서로 옮겨 2003년까지 본격적으로 인베스트먼트 뱅커로 활동했다. 한국의 부실채권을 사 이를 유동화해 매각하는 업무 등을 수행했다.
GE 캐피탈에서도 근무
그 다음 직장은 2003년 옮길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혔던 GE의 캐피탈 부동산 부문 아시아태평양의 법무총괄. 당시 도쿄에 아시아태평양본부가 있었다. 김 변호사는 GE에서 2007년까지 법무분야를 이끌며 여러 크로스보더 거래의 성공을 도왔다.
눈여겨봐야 할 내용 중 하나는 그가 데이비스 포크 도쿄사무소 부임 이후 유니클로의 프랑스 자회사 사장을 맡아 잠시 파리에 거주한 기간을 제외하고 2016년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20년간 줄곧 도쿄에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소 · 중학교를 다니며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익힌 것이 나중에 미국변호사가 되어 일본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 로펌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이어진 셈. 김 변호사는 "소 · 중학교 시절을 포함하면 일본에서만 25년간 살았다"며 "일본이 지금까지 내가 가장 오래산 나라"라고 말했다.
2007년 김 변호사는 본격적인 사업가로 변신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함께 일본 내 최고 부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야나이 유니클로 회장을 만나 유니클로의 지주회사인 Fast Retailing에서 크로스보더 M&A 등을 추진하고 나중엔 프랑스 자회사 사장을 맡아 직접 의류 소매업 경영을 지휘했다. 율촌에 합류하기 전 일본에서의 마지막 직장은 CLSA의 범아시아 부동산 펀드 사업개발부서의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 겸 COO이자 법무총괄. 그는 7년간 CLSA에서 근무하며 부동산 펀드의 투자구조 수립과 거래를 주도하고 회계, 조세와 미국 등의 규제사항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2016년 가을 그는 약 20년에 걸친 일본 생활을 뒤로 하고 율촌에 합류해 다시 로펌의 변호사가 되었다. 투자은행과 기업체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한층 원숙한 자문이 기대되는 그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높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변호사인 그에게는 역시 로펌이 친정인 것 같았다.
"역시 로펌이 친정"
"한국의 율촌으로 돌아오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일본회사에서 임원 일도 해 보았고, 딜도 일본의 부동산, 일본회사를 많이 사보았는데 한국기업들이 일본에 진출할 때 도와줄 수 있어서 변호사로서 상당한 보람을 느낍니다. 일본이 이웃 나라이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의 규제나 법, 시장상황 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는 이어 "한국에 일본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관습이나 문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런 것까지 파악하는 능력일 것"이라며 "일본에서 20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일본 부동산 투자 등 한국 고객들의 일본 진출을 안내하려고 한다"고 거듭 의욕을 나타냈다.
-오랫동안 사내변호사 등으로 기업체에서 근무했는데, 변호사로서 기업체에서 일하는 것과 로펌에서의 활동을 비교하면 어떤가.
"기업체 일이 로펌 근무보다 더 스트레스가 많을 수 있다(more stressful). 내가 회사 임원으로도 있어 보았고, 로펌과 기업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IB 쪽에서도 활동했는데, 스트레스가 많은 데는 아무래도 회사다. 기업에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유니클로 프랑스 자회사 CEO로 있을 때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다. 이에 비해 변호사들은 여러 종류의 일을 병행해서 할 수 있고, 여러 업계의 일도 할 수 있는 반면에 부담은 조금 덜하다고 할 수 있다. 변호사도 고객이 어려운 이슈에 접해 있을 때는 그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머리를 짜내야 하고, 그럴 때는 스트레스가 많겠지만, 아무래도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보다는 less stressful하다."
-보수는 어디가 더 높은가.
"변호사는 굉장히 좋은 직업"
"로펌의 변호사 보수는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지만, 기업은 보너스가 있기 때문에 회사 전체가 잘 될 때는 많은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모건 스탠리에 있을 때 임기 끝 부분에 보너스를 많이 받았고, 유니클로에서도 괜찮았다. 프랑스 자회사 사장을 맡아 파리에 부임했을 때 집도 아주 좋은 데 있었다. 회사가 잘 되고, 본인도 잘 하면 회사가 더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직장을 선택할 때 그런 면보다는 무슨 일을 하느냐,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느냐, 어떤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느냐 그런 점을 중시했다. 율촌은 나하고 딱 맞는다. 또 변호사라는 잡(job)이 굉장히 좋은 잡이라는 것을 느낀다."
-로펌의 클라이언트에 해당하는 기업의 CEO 등으로 근무한 경험자로서 로펌에서 기업에 자문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말해 달라.
"사내변호사들이 일을 그냥 쉽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로펌에서 보면 사내변호사들이 로펌 변호사들보다 시간도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하고 편한 거 같지만 그 사람들도 일이 엄청 힘들다. 그들에겐 회사의 중대한 리걸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로펌에서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어질 수가 있다. 비즈니스 사이드에 있는 그들이 로펌한테 일을 그냥 던지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슈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솔루션이 안 나오면 직을 걸어야 한다. 가족의 생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사일 수도 있다는 거를 로펌 변호사들이 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내변호사 직 걸 수도"
-결국 고객을 좀 더 이해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고객의 입장이 되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 '내 문제다', 이런 오너십을 가지고 고객의 이슈를 접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율촌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로펌 변호사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로펌 변호사가 법률자문에 앞서 클라이언트 회사의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리걸 인더스트리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업종에서 비즈니스 환경이 워낙 빨리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고객의 비즈니스는 물론 고객이 처한 비즈니스 환경, 생태계의 현황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변호사는 순수하게 법률자문만 하는 게 아니다. 고객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일단 이해하고 그 주위에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신문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계속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변호사가 선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로 이해된다. 변호사가 뒷북쳐선 곤란하겠죠.
"한마디로 바깥에 있는 로펌들은 고객의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자세로 일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고객의) 비즈니스가 안 된다. 이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 나는 비즈니스 사이드에 있을 때 그런 훌륭한 로펌의 파트너들을 많이 만났다. 율촌 등 한국 로펌의 변호사들 중에도 여러 명 있다. '이 사람 없으면 일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럭키(lucky)했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변호사들은 목표(goal)를 좀 높게 잡고 그런 변호사를 지향했으면 좋겠다."
-사실 관련 판례나 법조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정도는 로스쿨생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그런 일은 앞으로 로봇, AI가 다 해낼 것이다. 변호사는 리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어드바이스, 실제적인(practical) 어드바이스까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를 잘 이해해 포인트에 딱 맞는 맞춤(tailor-made)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변호사를 지망하는 로스쿨생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로펌은 비즈니스 하는 곳"
"판사가 되고 싶다, 검사가 되고 싶다 또는 정부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다, 로펌 변호사를 지망한다는 등 각자 생각하는 장래 희망, 케이스가 다양할 텐데 로펌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명백하게 알고 로펌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로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비즈니스 오브 프랙티싱 로(business of practicing law)',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다. 결국은 비즈니스라는 거다. 무슨 얘기냐 하면 로펌의 변호사를 그냥 자문을 해 주는 컨설턴트라고만 착각하면 안 되고, 로펌은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거다."
-로펌 일을 리걸 컨설팅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도 하나의 비즈니스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거죠.
"그렇다. 파트너는 물론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도 그런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 로펌의 비즈니스, 상품을 구성하는 요소엔 개개인의 지식, 스킬도 있지만 조직력도 있다. 팀워크도 있다. 다른 비즈니스랑 별로 다를 게 없다. 따라서 이 비즈니스를 잘 하려면 조직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이크로 생태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변호사들과의 협업, 팀워크가 중요하고, 비즈니스를 지속하려면 마케팅 스킬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고객한테 자문만 잘 한다고 로펌의 비즈니스가 지속되는 게 아니다. 고객 쪽에서 뭘 원하는지 그것을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객의 비즈니스, 생태계를 이해해야 하고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로펌에 들어간다는 것은 판사, 검사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비즈니스 월드에 들어가는 거다."
"사내변호사는 재미있는 job"
-로스쿨을 나온 한국의 젊은 변호사들 중엔 기업체에 들어가 사내변호사로 활동하는 변호사도 상당수 있다. 기업체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선배 입장에서 사내변호사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사내변호사는 내가 보기에 아주 재미있는 잡이라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를 진짜 100%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내변호사가 법률전문가로서의 포지션만 생각하면 그 사람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회사의 일원이다'라고 생각하고 다른 부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탑 매니지먼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내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같은 사내변호사라도 더 큰 포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영원히 변호사로 남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필드에서 최고의 변호사가 되고 싶다' 그런 분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사내변호사가 되어 그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파악하고, 그 다음에 이 회사가 어떤 비즈니스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가를 배우는 게 내가 사내변호사가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사내변호사가 편하다고 해서 간 게 아니었다. 사내변호사를 지망하는 변호사들은 그런 기회를 좀 활용하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Sink or Swim'의 시추에이션(situation)에 놓였었다는 김 변호사는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이런 상황을 즐기는 '도전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사실 인간에겐 모티베이션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젊은 변호사들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한다든가 좀 자극적인 일을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것이 변호사의 본업에도 도움이 되고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계속 똑같은 일만 하다보면 모티베이션을 잃어버릴 수 있어 자극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4년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일본에 있을 때 CLSA에서 근무하면서 베이징, 싱가포르를 오가며 칭화대가 INSEAD와 공동운영하는 경영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2016년 Executive MBA 자격도 취득했다.
칭화대 EMBA도 취득
"저는 인생을 살면서 이걸 좀 해보고 싶다, 저것도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 왔어요. 그리고 그것을 실행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일본에서 3년 반 살고 어른이 되어 돌아와서 일본에서 좀 일을 해 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일본에 와서 일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에 변호사로 일 하다가 인베스트먼트 뱅커도 좀 하고 싶다 그랬더니 모건 스탠리에서 그 일을 하게 되었어요. 또 미국, 일본, 한국에서는 많이 살아보았으니 유럽도 죽기 전에 한 번 살아봐야지 하니까 야나이 회장님이 프랑스 사장으로 가라고 해서 1년 3개월 동안 파리에서 생활하며 유니클로 프랑스 자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게 되었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희망하면 그렇게 되지 않나요."
그는 의지력(will power)를 강조했다. 그것을 기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후배들에게 당부한 조언도 같은 내용으로, 그가 유창한 영어로 마무리를 지었다.
"If you want something, go figure out how to get it and make sure to execute it."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