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익 변호사의 '기업과 법' ⑭이중대표소송
대법원 판례상 인정 안 돼국회 입법 논의 기대
2018-01-10 김정덕
지난 10월호 '기업과 법' 시리즈에서는 주주대표소송을 개괄적으로 설명해 보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주주대표소송 중에서 '이중대표소송'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다뤄 보고자 한다. 자회사의 이사들뿐만 아니라 손자회사 이사들에게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이중대표소송과 구별해서 다중대표소송이라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냥 이중대표소송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현행 상법 규정상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이중대표소송을 구태여 별도로 다뤄보고자 하는 취지는, (주주대표소송조차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이중대표소송이 허용되지 않고서는 주주들의 권리가 제대로 구제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주회사 제도 하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우선 아래 사례들을 살펴보자. 사례 1과 사례 2는 예시적으로 작성한 가상의 사례이고, 사례 3은 한국에서의 실제 사례, 사례 4는 미국에서의 실제 사례다.
(사례 1)
A회사는 B회사의 주식 80%를 소유하고 있다. A회사는 상장사이고 B회사는 비상장회사다. B회사의 대표이사는 A회사의 대주주이자 그룹 오너인 사람의 장남이다. B회사의 대표이사는 그룹 오너와 모의하여 자신들의 지배력 확보를 위하여 B회사에게 30억원의 손해가 초래되는 계열회사 간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B회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았다. B회사는 위와 같이 A회사가 주식의 80%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20%들도 관계회사들이나 그룹 오너의 지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B회사의 주주들도 B회사로 하여금 해당 대표이사 및 다른 이사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도록 하지도 않고 주주들이 직접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지도 않는 상태이다. A회사의 소수주주들은 B회사의 해당 대표이사 및 다른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사례 2)
상장사인 지주회사의 자회사인 A회사는 상장사인데, 손자회사인 B회사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B회사의 이사 한 명이 임무해태로 회사에 1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 B회사의 다른 임원들은 해당 이사의 임무해태를 추궁할 경우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떨어질까 두려워 해당 이사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고 있다.
한편 B회사 주식의 100%를 보유하고 있는 A회사 역시 B회사 규모에 비해서 회사가 입은 손해가 미비하고 주주대표소송을 한다거나 B회사로 하여금 직접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하는 경우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에 A회사의 소수주주들은 B회사의 해당 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사례 3)
2016. 5. 31. 현대증권 이사회는 13년 넘게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전량(발행주식 총수의 7.06% 상당)을 대주주인 KB금융지주에 매각하기로 결의했다. 공교롭게도 결의를 성사시킨 이사 5명 중 3명은 같은 날 그와 같은 이사회결의가 이루어지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사람들이었다. 결의된 자사주의 매각가격(주당 6,410원)은 한 달 여 전, 현정은 회장과 현대상선 등이 KB금융지주에게 같은 주식을 매도한 가격인 23,183원의 1/4 정도에 불과했으며 주당 순자산가치(주당 13,955원)는 물론 평균취득가격(주당 9,837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소액주주 29명이 1261억원 청구
당장 현대증권 이사회가 대주주인 KB금융지주의 이익을 위해 염가에 자사주를 매각한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은 반발했고, 대주주 KB금융지주의 이익만을 위해 오랫동안 보유해 오던 자사주를 염가에 매각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사들의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증권 소액주주 29명이 현대증권의 이사들을 상대로 약 1,261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액주주들이 현대증권을 상대로 이사들의 책임을 물으라는 청구를 한 지 불과 일주일 여 후인 8. 2. 돌연 현대증권과 KB금융지주 간 포괄적 주식교환이 현대증권 이사회에서 결의된다. 포괄적 주식교환이란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를 소유해 완전모자회사 관계가 될 수 있도록 주식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소 제기 1주일 후 포괄적 주식교환
그 때까지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합병하리라는 예상 보도가 있었을 뿐, 현대증권과 KB금융지주 사이에 포괄적 주식교환이 이루어지리라는 전망이나 발표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포괄적 주식교환은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소액주주들의 몇 차례에 걸친 주주명부 열람 신청은 거부되고, 임시주주총회 날짜 등 관련 절차는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포괄적 주식교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결집은 좌절되고, 현대증권과 KB금융지주 간의 포괄적 주식교환이 현대증권 주주총회에서 결의되었다.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70.38% 주식 전부는 KB금융지주 신주와 교환되었다.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은 더 이상 현대증권의 주주가 아니게 된 것이다.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던 주주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포괄적 주식교환 이후에는 현대증권의 주주가 아니라 현대증권의 모회사인 KB금융지주의 주주가 된 상태에서 KB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현대증권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사례 4)
미국의 렉싱턴사의 주주들은 1985년 회사의 임원들이 500만 달러 규모의 불량 내지 사기적 대출을 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면서 임원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 이후 렉싱턴사는 콜로니얼사에 흡수합병되는 바람에 렉싱턴사의 주주들은 콜로니얼사의 주주가 되었다. 회사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주주들이 이제 더 이상 렉싱턴사의 주주들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자격(원고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2. 위 사례들의 결말
사례 1: 가상의 사례이긴 하지만 자세히 주위를 살펴보면 아마도 가끔씩 또는 자주 접해 볼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B회사가 입은 손해는 모회사인 A회사의 손해로 돌아오고, A회사의 손해는 결국 A회사의 주주들의 손해로 귀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현행 상법 하에서는 A회사 주주들이 B회사의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A회사의 주주는 B회사의 주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례 2: 이 사례 역시 현실 세계에서 발생할 것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모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 상황, 다시 말하면 문제가 발생한 자회사에는 모회사 외에는 주주대표소송 자체를 제기할 수 있는 다른 주주가 없는 상태임에도 이 경우 역시 현행 상법 하에서는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A회사와 B회사는 별개의 법인격을 지닌 서로 독립된 주체라는 점에서다.
남부지법, 주주대표소 각하
사례 3: 이 사례에서 KB금융지주와 현대증권이 갑작스럽게 포괄적 주식교환을 하게 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인하여 이미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고 있었던 현대증권의 소액주주들은 더 이상 현대증권의 주주가 아니게 되어 버렸고, 이를 이유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들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을 각하시켜 버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이전에 유사한 판결을 내렸다. 외환은행 주주들이 론스타 측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간에 포괄적 주식교환이 이루어져서 소송을 제기한 외환은행 주주들 이 주주지위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각하판결을 내렸다.
사례 4: 1989년 미국 알라바마주 대법원은, 이 사례에서 렉싱턴사의 주주들이 콜로니얼사의 주주로 전환된 것은 주주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예외를 인정해 주었다. 알라바마주 대법원은, "강제적으로 주주지위를 박탈당한 원고들의 원고적격을 부정한다면, 주주대표소송 자체를 단지 다른 법인과의 합병을 통해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제 등 많은 것이 다르므로 단순히 비교하긴 물론 어렵지만 사례 3에서의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각하판결과 비교해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판결이다.
3. 입법례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이중대표소송을 판례를 통해서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단순히 이중대표소송뿐만 아니라 모회사의 주주가 손자회사의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다중대표소송'까지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만, 미국에서도 모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 완전모자관계회사 간에서만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하는 것이 다수라고 한다.
일본도 이중대표소송 허용
일본도 1997년 순수지주회사의 설립이 허용된 이래 순수지주회사의 주주보호를 위한 많은 논의가 있던 끝에 2012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서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하게 되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모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만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4. 의미있는 판결
현행 상법 하에서도 이중대표소송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취하는 학자분들도 소수이긴 하지만 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린 판사님들도 계시다. 2003년도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그것이다. 아래에 대법원 판결문에서 인용한 해당 고등법원 판결문 중 일부를 옮겨본다. 아쉽게도 그 고등법원 판결은 이듬해 대법원 판결로 부인당하고 말았다.
"이중대표소송을 허용하지 않으면 지배회사 및 종속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모두 지배하고 있는 경영진이 종속회사를 통하여 부정행위를 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위험이 존재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난점을 극복하기 어렵고, 반면 종속회사의 경영진이나 주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들의 종속회사에 대한 부정행위를 시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바, 이러한 경우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함으로써 종속회사 이사들의 부정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종속회사의 손해는 종국적으로 지배회사 주주의 손해로 귀속되므로 이중대표소송을 통하여 종속회사의 손해를 회복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배회사 및 지배회사 주주의 손해를 경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주의 개념에 '회사인 주주의 주주'를 포함함으로써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5. 입법 동향
상법 개정을 통해서 이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2006년부터 여러 차례 있어 왔으나 번번이 재계의 반대 등에 부딪혀 실패했다. 2017. 2.에도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논의되었으나 각 정당들의 의견 대립으로 논의가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재계 반대에 번번이 실패
2016년에 제출되었던 이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들은 내용도 제각각인데 중요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식소유 비율에 관해서는, 단 1주만 가져도 되는 단독주주권으로 하자는 안도 있고 1%를 최소 보유 요건으로 하자는 안도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다른 많은 소수주주권처럼 주식소유 비율 요건을 완화하는 대신 보유기간 요건을 추가하자는 개정안도 있다.
모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몇 % 소유해야만 모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들을 상대로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는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 논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다퉈지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30% 이상을 소유요건으로 규정하는 안도 있고, 50% 이상 소유해야 한다는 안, 100%를 소유해야 한다는 안도 있다. 기업집단에 소속된 회사로서 사실상 피지배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경우에는 주식 소유 요건에 구애받지 않고 지배회사의 주주가 피지배회사의 이사들을 상대로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안도 있다.
이중대표소송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 주주의 회계장부열람청구권의 허용 대상범위를 당해 회사뿐만 아니라 당해 회사의 피출자 회사로까지 확대하자는 안도 있다. 김종인 의원의 발의안에는, 주주가 대표소송 제기 후 합병 등으로 주주의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도 대표소송의 효력을 인정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합병 때도 인정하자는 내용도
이중대표소송제도의 도입 등과 소수주주의 보호장치를 새로이 또는 좀 더 강화하자는 제안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경제구조의 미성숙, 지배주주의 보호, 미국과 일본 등 선진 법제와의 비교 등을 이유로 한 반대논리이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너무 제도가 과하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감기에 걸린 환자와 폐렴에 걸린 환자에게는 처방약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기업 지배구조나 지배주주들의 행태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같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의 마지막 법사위 논의에서는, 이중대표소송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모회사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거나 부정한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에는 소송을 금지키로 하는 방안까지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영익 변호사(법무법인 넥서스, yichoi@nexusla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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