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20년 맡은 업무 바뀐 뒤 돌연사…업무상 재해"

[서울행법] "전보 후 상당한 피로, 스트레스 받아"

2018-01-03     김덕성
20년간 맡았던 업무가 바뀐 뒤 스트레스를 받다가 돌연사한 쌍용자동차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김국현 부장판사)는 12월 15일 돌연사한 쌍용차 근로자 이 모(사망 당시 47세)씨의 부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16구합75487)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1994년 9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20년간 쌍용차 평택공장 프레스생산팀에서 프레스 판넬 제작 업무 등을 수행하다가 주 · 야 교대근무를 하는 조립팀으로 전보됐다. 회사에서 조립라인 인원 충원을 위하여 부서이동 희망직원을 모집 · 공고하자 이씨가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야근 업무를 할 수 있는 도장팀에 지원했으나, 이씨보다 사번이 빠른 직원이 도장팀에 지원하여 조립1팀으로 전보된 것이다. 조립1팀의 업무는 전동공구를 이용하여 부품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조립해야 하는 부분에 따라 업무가 나뉘어져 있는데, 이씨는 차량의 배선 정리 작업 등을 담당했다.

특히 회사에선 근골계의 질환을 예방하고 단순업무 수행의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하여 맡은 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 이씨가 숨지기 하루 전날 시행되었는데, 이날 야간근무를 한 이씨는 로테이션 시스템에 따라 조립1팀에서 본래 맡은 업무인 '플로워와이어링LTFRT'가 아닌 '와샤탱크' 업무를 수행했다.

조립팀으로 전보된 후 직장 동료들에게 "20년을 근무한 곳인데 아무 말 없이 순수하게 나온 게 한이 된다" "무슨 큰돈을 벌겠다고 야간을 신청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등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이씨는 6개월 뒤인 2015년 4월 22일 오전 7시 30분쯤까지 야간 근무 후 퇴근해 집에서 잠들었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결과 추정되는 사망 원인은 해부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내적 원인. 이에 이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는 약 20년간 프레스팀에서 근무하다가 원하지 않은 조립1팀으로 전보되어 20년간 맡았던 업무와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을뿐 아니라 근무시간도 주 · 야간 교대근무로 바뀌었다"며 "보통의 근로자들도 약 20년간 근무해 왔던 근무 형태와 시간이 바뀐다면 그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 예측되고, 이에 더하여 이씨가 직장 동료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가족과 지인에게 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씨는 조립팀으로 전보된 후 상당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씨의 사망 전날에는 로테이션 시스템이 조립1팀에서 시행되었는데, 조립팀의 새로운 업무에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씨의 입장에서는 더욱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수 있고, 사망 당시 47세였던 이씨는 급성심장사 등을 발생시킬 기존 질환이나 위험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이씨는 프레스생산팀에서 조립팀으로 전보로 인한 업무와 근무시간의 변경 등으로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었을 것이라 보이고, 달리 이씨의 사망 원인이 될 수 있는 사정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이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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