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삼각(午時三刻)

[김종길 변호사]

2017-08-01     김정덕
'오시삼각'을 사형집행시각이라고 가장 먼저 언급한 자료는 송나라때의 소설 이라고 한다. 수호전에는 송강이 사형집행장에 끌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시삼각!'이라는 말과 함께 사형집행이 시작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후 명나라때의 , 를 비롯한 많은 고전소설들에서도 사형집행시각은 모두 오시삼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현재도 중국의 고대를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에서 사형집행시각은 여전히 오시삼각이다. 그리하여 오시삼각은 사형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되었고, 이를 책의 제목으로 하는 경우도 있으며, 중국 고대의 사형집행시각이 오시삼각이라는 것은 거의 사람들 사이에서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법조인 중에 이런 상식이 중국의 법제사상에 전혀 근거가 없으며 소설가의 억측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재 시간으로 몇 시

여기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주로 다음의 세 가지 점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오시삼각은 현재 시간으로 몇 시에 해당하는가? 둘째, 오시삼각에 사형을 집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중국 고대의 사형집행시각은 정말 오시삼각이었는가?

먼저 오시삼각이 현재 시간으로 몇 시 몇 분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에 대하여는 11시 45분설, 12시 45분설, 11시 43.2분설, 12시 43.2분설, 12시 30분설, 명확하지 않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는 중국 고대에 '시(時)'와 '각(刻)'이 모두 시간 개념이기는 하지만 전혀 별개 계통의 시간단위이기 때문이다.

우선 '시'는 해시계로 재는 시간 개념이다. 하루를 12시로 나누어, 자(子), 축(丑), 인(寅), 묘(卯)…의 12간지로 나누었으며, 오시(午時)는 현재 시간으로 11시부터 13시까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각'은 물시계로 재는 시간 개념이다. 하루는 100각으로 나누었다. 그러다보니 1시진은 8과 1/3각이 된다. 이렇게 시와 각이 서로 맞물리지 않다보니, 명나라 말기 서양선교사들은 하루를 100각이 아니라 96각으로 할 것을 주장했고, 청나라때부터 이를 받아들여 하루를 96각으로 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1시진은 8각이 된다

1시진은 대략 8각

어쨌든 이전에도 1시진은 대략 8각이므로 1시진을 8각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정식명칭은 이렇다. 오시의 경우를 예로 들면 차례대로 오초(午初), 오초일각, 오초이각, 오초삼각, 오정(午正), 오정일각, 오정이각, 오정삼각. 오초는 11시가 되고 오정은 12시가 된다. 그런데 사각, 오각 등으로 부르는 법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오시삼각이 과연 이중 어느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오시삼각을 정시인 오정삼각으로 보고 있으나, 오초삼각으로 보는 견해도 많고, 일부 법조인은 오시삼각이라는 것은 아예 없었고, 오초삼각인지 오정삼각인지도 불분명하며 그저 소설가가 법률지식이 없는 일반 백성들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일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삼각에 대하여도 하루를 100각으로 보고 계산할 것인지, 하루를 96각으로 보고 계산할 것인지에 따라 45분 혹은 43.2분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1개 시진을 4각으로 계산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며 12시 30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향 2자루 태워 3각 계산

그렇다면 시계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고대에 어떻게 삼각(三刻)을 계산했을까? 사형장에 정교한 물시계나 해시계를 구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당시에 선향(線香)이 있는데, 그 한 자루의 향이 다 타면(一柱香) 반시진, 즉 현재시간으로 1시간 혹은 당시의 4각이 된다고 한다. 이 선향을 이용하여 3각을 계산한다.

그 방법은 향 2자루에 동시에 불을 붙이는데, 그중 한 자루는 양쪽 끝에 모두 불을 붙이고, 그중 하나는 한쪽 끝에만 불을 붙인다. 양쪽 끝에 불을 붙인 향이 다 타는 시점(2각이 지난다)에 한쪽 끝에만 불을 붙였던 향(아마 절반만 탔을 것이다)의 다른 쪽 끝에도 불을 붙여서 그 향이 다 타면 3각이라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사형집행시간을 그냥 오시나 미시로 하면 간단할 텐데, 왜 하필 계산하기도 복잡한 오시삼각이라고 했을까? 여기에 관한 의문을 풀고 나면, 오시삼각이 현재 시간으로 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할지에 대한 답도 나올 수 있을 것이므로, 오시삼각이 현재시간으로 언제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왜 오시삼각을 사형집행시간으로 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현대의 학자들은 오시삼각을 사형집행시간으로 정한 데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사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사형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셋째는 백성들에 대한 위하(威嚇)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중 둘째 이유는 '한낮이 가장 졸릴때이므로 사형수가 고통을 가장 적게 느낄 수 있어서'라는 것인데, 이는 현대에 서방법학이 유입되면서 들어온 사형수의 인권개념에 억지로 갖다 붙인 측면이 있고, 중국 고대에는 사형수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대화하는 것에 치중하는 면이 컸다는 것을 보면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셋째 이유로 드는 것은 한낮은 농사짓는 백성들이 쉴 때이므로 가장 많은 인원을 모을 수 있어서 그 시간으로 했다는 것인데, 이는 정오나 미시에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굳이 오시삼각으로 한 이유로는 부족하다.

결국 남는 것은 첫째 이유인데, 한낮에 태양이 정중앙에 떠올랐을 때가 양기(陽氣)가 가장 충만하고 음기(陰氣)가 없어진 때이므로, 사형수가 원한을 품고 죽어도 귀신이 될 수 없으므로, 그때 집행하면 사형을 집행한 관리들이 사형수의 원혼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러한 고려는 사형집행문에 서명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나는데, 사형집행명령문을 올리면, 책임관료는 붓을 들고 가만히 있고, 옆에 있던 형리가 붓을 움직여 명령문에 갈고리 표시를 한다는 것이다. 책임관료가 사람을 죽이는데 서명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양기가 가장 충만할 때 집행

이런 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사형집행은 양기가 가장 왕성한 해가 정중앙에 떴을 때 집행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바로 오시삼각이고 아마도 굳이 향으로 시간을 재어서가 아니라 막대기를 꽂아서 그림자가 사라졌을 때로 했을 것이다.

오시가 아니라 오시삼각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중국 고대의 시진은 장안(지금의 서안)이 수도이던 시절에 장안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송나라때 동쪽의 개봉으로 수도를 이전했고, 그 이후에는 북경이 600여년간 금원명청의 여러 왕조의 수도가 된다. 개봉과 북경은 장안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으므로 시차가 있어, 해가 정중앙에 위치하는 시간이 정오가 아니라 삼각정도 지난 오정삼각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오시삼각은 바로 오정삼각 즉 12시 45분 혹은 12시 43.2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는 공지의 사실로 되어 있는 사형집행시각인 오시삼각이 법제사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법제사적으로는 근거가 미약하다.

법제사적 근거 미약

송나라는 당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승계하였으므로 당나라의 제도를 보면될 텐데, 당나라때의 법전인 , 등의 자료에 따르면, 사형집행시간은 오시가 아니라 미시에서 신시 사이(즉, 13시에서 17시)였다. 그리고 를 보면, 가정제때인 가정원년, 유제(劉濟) 등의 관리들이 원래 미시, 신시에 집행하여야 할 사형이 절차를 모두 거치다보면 유시(酉時, 17시에서 19시)가 되어 집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앞으로는 미시 이전에 집행하도록 해달라고 상소를 올리고, 가정제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정 7년에는 다시 논의를 거쳐, "억울한 점이 있으면, 가족은 사형집행 전날 북을 울리고, 다음날 정오 전에 결정을 내리며, 정오가 지난 후에 집행한다"고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당, 송대까지는 미시, 신시에 이루어지던 사형집행이 명나라 이후에는 오시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법전의 어디에도 사형집행시간을 '오시삼각' 혹은 '오정삼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고대의 법전에서 사형집행시각을 오시삼각으로 정한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각종 소설에서 사형집행시각을 오시삼각으로 쓴 것을 보면, 법률상 사형집행시간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 사형을 집행하는 관리들은 나중에 사형수가 귀신이 되어 괴롭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오시삼각'에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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