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의 보호와 제한

[김현호 변호사]

2017-07-21     김정덕

통신의 비밀은 사생활의 자유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헌법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통신의 비밀 보호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역시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취급 중에 있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거나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전기통신업무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가 그 재직 중에 통신에 관하여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여 통신비밀의 보호를 위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제83조 제1항, 제2항).
 

통신비밀의 보호대상은 통신에서 형성되거나 교환된 내용뿐 아니라 통신의 유무, 통신의 당사자에 관한 사항, 통신의 일시, 통신의 횟수, 통신의 방법 등 통신과 관련된 일체의 사실을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통신사실에는 일정한 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로서 통신서비스의 이용자에 관한 사항(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통신에 이용한 아이디 및 통신서비스의 이용유무(통신서비스에 가입 또는 해지한 날짜)와 특정한 통신사실에 관한 정보로서 전기통신의 일시, 전기통신을 행한 시간, 상대방에 관한 사항, 전기통신을 행한 장소 등의 정보가 포함된다.


통신비밀 해제 필요 발생

한편 범죄의 단서 또는 증거를 확보하거나 범인을 추적하는 등의 수사목적 또는 국가안보 등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통신의 비밀을 해제할 필요가 종종 발생한다. 흉악범죄가 급증하고 특히 최신의 통신기술이 범죄에 이용되면서 수사 등 공적 목적을 위하여 통신의 비밀이 제한적으로 해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통신자료제공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은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여 통신비밀의 해제를 위한 제도에 해당한다.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비밀보호 의무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용자의 통신사실에 관한 정보 누설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때 전기통신사업자가 공적 목적을 위한 통신 관련 정보의 누설에 반드시 협조해야 하는지, 이러한 통신 관련 정보의 누설을 당사자에게조차 알려서는 아니 되는지, 공적 목적을 위한 통신비밀의 누설은 절대적으로 면책이 되는지 등의 다양한 쟁점이 파생되고 있고 실제 사건화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쟁점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 정보수사기관의 장은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통신을 행한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통신에 이용한 아이디 및 통신서비스에 가입 또는 해지한 날짜에 관한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고,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가령 수사에서 통신자료는 수사대상과 관련 있는 통신을 행한 이용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이용자를 특정한 후에는 그 이용자가 행한 통신의 내용(로그기록, 방문기록 등)을 탐지하거나 통신의 상대방을 파악하는 등 일련의 수사 진행을 가능하게 한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제공 요청에 대하여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요청에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기통신사업자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제공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헌법재판소 2012. 8. 23. 선고 2010헌마439 결정). 그렇다면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자료제공 여부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으므로 아무런 제한 없이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는 것까지 허용될 것인가?

서울고등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개별 사안에 따라 그 제공 여부 등을 적절히 심사하여 개인정보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하고, 침해되는 법익 상호 간의 이익 형량을 통한 위법성의 정도,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여부 및 어느 범위까지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할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법 2012. 10. 18. 선고 2011나19012 판결).

형식적 · 절차적 심사의무만 인정

그런데 대법원은 동일한 사안의 상고심에서 '전기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사업법에서 정한 통신자료제공 요청의 형식적 · 절차적 요건을 심사하여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였다면,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의 제공 요청권한을 남용하여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표현의 자유 등이 위법하게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과 달리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제공 요청에 대한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정하였다(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 다만 대법원이 통신자료제공 여부에 대한 전기통신사업자의 무제한의 자유를 인정한 것은 아니고 형식적 · 절차적 요건에 대한 심사의무를 인정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제공요청이 있는 경우 전기통신사업자가 전기통신사업법이 정한 형식적 · 절차적 요건을 충족한 요청인지를 심사한 후 이를 충족한 것으로 판단하여 통신자료를 제공한다면 통신자료를 필요로 하는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거나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입수할 긴급한 수사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이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전기통신사업자 또는 수사기관에게 통신자료의 제공을 이용자에게 통지할 수 있는지 또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수사는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수사의 밀행성)만을 생각하면 수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통신자료제공을 함구해야겠지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중시한다면 이용자가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자료제공 여부의 공개를 청구한 경우 전기통신사업자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해석도 일면 타당하다.

포털사, 이용자 공개청구에 응해야

실제로 이용자가 수사기관에 제공한 자신의 통신자료제공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하자 포털사가 거절한 사안에서 서울고법은 통신자료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0조 제2항 제2호에 의하면 이용자는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에 대한 열람이나 제공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포털사는 이용자들의 공개청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법 2011. 8. 26. 선고 2011나13717 판결,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1다76617 판결에서 원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더 나아가, 이동통신사와 이동전화이용계약 체결 후 이동전화서비스를 이용하였거나 이용하는 자들이 이동통신사인 피고를 상대로 통신자료제공 현황의 공개를 청구하였으나 상당기간 공개를 거부하다가 원고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통신자료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한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통신자료제공 현황을 공개할 의무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이용자에 대한 통신자료제공 현황 공개의 거부 또는 지연은 헌법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보호하는 이용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위자료 청구까지 인용하였다(서울고법 2014나2020811 판결).

통신자료 제공과 관련한 비밀유지의무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하에서 법원은 수사의 밀행성보다는 이용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확인자료 요청에 협조해야

통신비밀보호법은 가입자의 전기통신 일시, 발 · 착신 통신번호 등 상대방의 가입자번호, 사용도수(전화요금을 계산하기 위한 단위로서 일반적으로 통화시간에 비례한다),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한 사실에 관한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로그기록,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기지국의 위치추적 자료,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접속지의 추적자료 등을 통신사실 확인자료로 정의하고 수사기관 등이 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그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자는 검사 · 사법경찰관 또는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이 법에 따라 집행하는 통신제한조치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요청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통신비밀보호법 제15조의2 제1항). 따라서 통신자료제공과 달리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경우에는 법정의 절차에 따라 행해진 요청인 이상 전기통신사업자가 그 제공 여부를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관여한 통신기관의 직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자는 통신제한조치에 관한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같은 법 제13조의5, 제11조 제2항). 그런데 전기통신역무의 이용자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에서 정한 통신비밀보호의무를 근거로 전기통신사업자에게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과 관련하여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대장, 제공요청서 및 승인서 등의 서류의 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다투어진 사례가 있다.

통신제한 관련 누설 금지

원심은 전기통신서비스 이용자는 헌법 제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비밀과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의 통신비밀보호의무를 근거로 이용자는 직접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하여 자신의 통신비밀을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 것을 요구할 권리(이하 "통신비밀보호청구권")를 갖고 통신비밀보호청구권에는 타인에게 통신비밀을 확인할 권리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용자는 전기통신사업자를 상대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대장, 제공요청서 및 승인서 등의 문서에 대하여 열람 · 등사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법 2010. 9. 1. 선고 2009나103204 판결).

하지만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은 전기통신 이용자에게 전기통신사업자를 상대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 등에 대한 열람 · 등사를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는 않으며,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의3에서 규정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집행사실에 관하여 수사기관이 통지를 할 무렵에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관여한 통신기관 직원 등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사항에 대한 공개금지의무가 해제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시(2012. 12. 27. 선고 2010다79206)함으로써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내역 공개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제공내역 공개의무 불인정

한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30조 제2항에서 정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에 대한 열람청구권을 근거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관한 문서의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뤄진 판례는 아직 없지만, 압수 · 수색영장의 집행으로 수사기관에 이메일을 제공한 것과 관련하여 영장의 집행현황의 공개를 청구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사항에 관하여는 비밀준수의무를 부담하면서도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사항과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 · 수색 사항에 대하여는 비밀준수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면 비밀준수의무의 취지가 몰각된다는 등의 이유로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 제2호, 제4항에 기한 이용자의 이메일 압수 · 수색 사항의 공개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1다76617). 이러한 판단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을 근거로 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에 대한 열람청구권도 부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에 관하여 법원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보다는 수사의 밀행성을 더 중시하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현호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hyeonho.kim@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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