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푸빌딩사건-외국인의 국외범

[김종길 변호사]

2017-04-01     김정덕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2017년 3월 22일 대법원 2호법정에서 주심 대법관이 화푸빌딩사건과 관련된 한국인 L과 중국인 M의 형사사건에서 검찰과 피고인들이 제기한 상고를 모두 기각함으로써 7년을 끌어온 화푸빌딩사건의 형사소송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한중간의 분쟁 가운데 분쟁금액이 가장 크고, 분쟁의 내용이 가장 복잡하고, 또한 분쟁 강도가 가장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종착점에 도착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화푸빌딩사건은 중국 베이징 중심가에 위치한 시가 1조원이 넘는 3개동의 오피스빌딩을 둘러싼 분쟁을 가리킨다. L, M이 공동으로 설립한 B사가 2007년 12월경 W은행으로부터 3800억원을 대출받아 2008년 2월경 화푸빌딩을 인수한 이후 화푸빌딩의 시행사인 Z사와 L, M 그리고 W은행간에는 수십건에 이르는 분쟁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소송(민사, 형사, 행정), 중재, 행정심판뿐만 아니라 국제투자분쟁(ISD)까지 들어있다.

시가 1조원 넘는 오피스빌딩

이 사건의 3대 주역은 W은행과 M(M은 원래 B사의 3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 후 L의 국내 사업이 부도나면서 W은행이 L의 지분까지 M에게 이전하여 M이 B사의 100% 주주가 된다), 그리고 Z사이다. 이들간에는 2008년 5월경 제기된 M과 Z사와의 중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9년에 걸쳐 한국, 중국, 홍콩, 그리고 바베이도스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발생하는 분쟁사건이 얽혀있다.

그 동안 이들 3대 주역간에는 삼국연의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전투와 합종연횡이 이어졌다. 여기에 다양한 조역들도 가담하는데, 주요한 조역으로는 L, 화푸빌딩을 B사에 매각한 홍콩의 R사, 화푸빌딩에 1순위 저당권을 보유한 홍콩의 D은행(이 채권은 후에 중국의 자산관리회사인 X사로 양도 되었다) 등이 있다.

또한 이 사건을 대리한 로펌들의 면목도 화려하다. 한국에서는 김앤장, 태평양, 화우, 바른, 동인 등의 로펌이, 중국에서는 진두(King & Wood), 쥔허(Junhe), 중룬(Zhonglun), 통상(Commercial), 징텐공청(Jingtian Gongcheng), 환츄(Global), 캉다(Kangda), 베이더우(Beidou), 하오텐신허(Hylands), 휘중(Huizhong) 등의 로펌이, 홍콩에서는 모리슨포어스터(Morrison Foerster), 오멜베니앤마이어스(O'Melveny & Myers) 등의 미국계 로펌이 참여했고, 여기에 바베이도스의 변호사들도 추가된다. 바베이도스 변호사에 따르면, 이 사건은 바베이도스 유사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고 한다.

김앤장, 태평양, 화우 등 관여

화푸빌딩사건은 많은 뒷얘기와 갖가지 흥미 있는 법적 이슈를 던져주었다. 여기에서는 형사사건에서 최대의 쟁점이 되었던 이슈 중 하나인 '외국인의 국외범'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아래의 사실관계는 '외국인의 국외범' 이슈를 설명하기 위하여 간략하게 요약한 것으로 사실관계의 전부는 아니다).

3800억원의 화푸빌딩 인수대금 중 일부는 한국 내에 이자유보금, 수수료, 중국 현지 대출에 대한 예금담보금 등으로 남겨두고, 일부는 중국에 출자금으로 송금되었다. 홍콩으로 송금된 금액은 1700억원가량인데, 그 중 약 1100억원은 화푸빌딩을 보유한 해외 모회사의 100% 지분을 인수하는 대금으로 사용되었다.

600억원의 사용처가 핵심 문제

형사소송에서 핵심으로 문제된 것은 나머지 약 600억원의 사용처이다. 이는 원래 중국시행사인 Z사가 화푸빌딩의 등기명의를 넘겨주면 그 대가로 지급하여야 할 이익금인데, 화푸빌딩 인수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Z사와 분쟁이 발생하면서 Z사는 등기명의 이전을 거부했고, M도 Z사에 이익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 후 M은 Z사와의 중재, 소송에서 모두 승소하고 2016년에 이르러 마침내 재산권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M은 600억원 중에서 200억원가량을 한국으로 보내어 차입금 변제 등에 사용했다.

형사사건의 수사, 기소내용은 몇 번의 변화를 거쳤는데, 첫째, 경찰의 수사단계에서는 홍콩에서의 600억원 인출 자체를 횡령죄로 보고 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대하여 변호인이 외국인의 국외범이므로 재판권이 없다고 항변하였고, 결국 구속영장은 2차례에 걸쳐 기각된다. 둘째, 검찰의 기소단계에서는 한국 내에서 사용한 200억원을 횡령죄로 기소했다. 그런데 1심 법원은 홍콩에서 600억원을 인출할 때 이미 횡령행위가 발생했고, 그 이후 한국으로 가져와 사용한 것은 불가벌적사후행위로 보아 무죄로 판결했다. 셋째, 검찰은 2심에서 수차례 공소장 변경을 통하여 주위적으로 홍콩에서 인출한 행위를, 예비적으로 한국에서 홍콩으로 송금한 행위를 횡령으로 구성했다.

"홍콩 인출, 송금은 횡령죄"

우선 우리 형법상 외국인의 국외범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외국인의 국외범은 한국법원에 재판권이 없다(내란, 외환, 화폐위조 등 일부 범죄는 제외). (2)다만, 한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한국법원에 재판권이 있다. (3)한국인이 피해자인 경우에도 해당행위가 현지법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않거나 소추 또는 형의 집행이 면제되는 경우에는 한국법원에 재판권이 없다.

그리하여 법정에서 '외국인의 국외범'과 관련하여 주로 다투어진 이슈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피해자가 한국인이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횡령죄를 홍콩에서 처벌하느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이슈는 피해자를 한국 B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국 B사의 홍콩 자회사인 B1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M의 변호인은 W은행이 B사에 대출한 이후에는 B사가 소유자이고, B사가 B1사에 대출한 이후에는 B1사가 소유자이므로, 피해자는 홍콩법인인 B1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법원과 대법원은 돈의 소유자를 B사로 보았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법인 소유의 자금에 대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지배, 처분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표자 등은 법인에 대한 관계에서 그 자금의 보관자 지위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법인이 특정 사업의 명목상의 주체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여 그 명의로 자금 집행 등 사업집행을 하면서도 자금의 관리, 처분에 관하여는 실질적 사업주체인 법인이 의사결정권한을 행사하면서 특수목적법인 명의로 보유한 자금에 대하여 현실적 지배를 하고 있는 경우에는, 사업주체인 법인의 대표자 등이 특수목적법인의 보유 자금을 정해진 목적과 용도 외에 임의로 사용하면 위탁자인 법인에 대하여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 "내국 법인이 외국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에 위탁해 둔 자금을 정해진 목적과 용도 외에 임의로 사용한데 따른 횡령죄의 피해자는 당해 금전을 위탁한 내국법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피해자가 한국인이냐

대법원의 판시는 몇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횡령죄의 피해자는 소유자이어야 한다. 횡령죄의 보호법익은 소유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전의 소유자가 B1인지 B인지를 따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법의 기본원칙상 소유권은 배타적이기 때문에 소유권자는 1명이 되어야지, 2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B1을 소유자로 볼 수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시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대법원이 B가 소유자라고 하기 위하여 한 설명은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 대법원은 "송금의 원인된 법률관계의 실질이 금전소비대차나 해외투자라고는 할 수 없고...단지 B1의 계좌에 보관시켜 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B1계좌에서 B2계좌로 자금을 다시 이동시킨 것도 자금의 보관방법을 변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특수목적법인과의 자금이동은 실질이 보관방법의 변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같은 판결문에서 공범인 L에 대하여 특수목적법인과의 자금이전 자체만을 가지고 횡령행위, 배임행위로 보아 처벌했다. 동일한 판결문에서 특수목적법인이 국내에 있는지 국외에 있는지에 따라 하나는 자금보관방법의 변경으로 다른 하나는 횡령, 배임행위로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홍콩, 절도죄가 횡령죄 포괄"

두 번째 이슈는 홍콩법상 동일한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느냐의 문제이다. 원심 법원은 홍콩에 비록 횡령죄가 없지만, 절도죄가 횡령죄를 포괄하고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의 판결문에는 홍콩 법률상의 절도죄에 대한 규정 문구를 보면, 우리나라의 횡령죄가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정도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하여, M의 변호인은 2심 판결의 홍콩 법률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면서, 홍콩의 법률전문가 2명(교수, 법정변호사)으로부터 홍콩에는 횡령죄가 없고, 절도죄는 있지만 은행대출금의 용도가 특정된 경우에 그에 위반하여 사용하였다고 하여 대표자가 절도죄로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의견까지 제출하였다. 홍콩의 법률전문가는 "만일 이런 대출 민사분쟁까지 형사로 문제 삼았다면 홍콩은 절대 세계의 금융중심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에 대하여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원심의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이 부분 범행은 행위지인 홍콩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므로 중국 공민인 M의 이 부분 범행에 대하여는 형법 6조 본문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만 판시하여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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