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증권집단소송 판결의 시사점
[배기완 변호사]
2017-03-16 김정덕
소 제기 후 판결까지 5년
그런데 이 판결이 법조계나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투자자들이 본안소송을 제기한 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만약 항소심과 상고심까지 진행된다면, 투자자들이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피해 구제를 받는데 본안소송 제기 시부터 최소한 6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구제를 받는 데 이토록 장기간이 소요된다면 집단적으로 피해 구제를 받는다는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증권집단소송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후 12년동안 9건의 증권집단소송이 제기되었고, 그중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이 내려진 5건이 법원으로부터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을 확정받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4년이 넘는다. 본안소송 판단을 받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데만 4년의 기간이 소요된 것이다.
'사실상 6심제 폐단 없애자'
이와 같이 증권집단소송제도를 통한 피해 구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에 대해서는 불복할 수 없도록 하게 하자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 방안은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에 대한 불복 절차가 허용됨으로써 증권집단소송 제도가 사실상 6심제(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 관련 3심, 본안소송 3심)로 운영되는 폐단을 없애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같은 맥락에서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에 집행정지의 효력을 갖지 않도록 하고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법원이 집행정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어 현재 국회법사위 심사 중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도입된다면,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 절차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허가가 내려지면 강력한 효력을 갖는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의 불복절차를 없애거나 집행정지의 효력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따른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증권집단소송 허가 결정이 쉽게 내려지는 경우 남소 방지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고, 허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에 집행정지의 효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증권집단소송 허가 신청을 기각하는 경우 그동안 진행되었던 본안소송 자체가 아무런 효력이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소 방지 어려움 우려
이러한 우려를 감안하면, 법원에 집단소송 허가 결정을 '가능한 한 빨리' 내려야 한다는 권고를 하고, 그 결정을 본안판결 이전까지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제23조 (c)(1)의 내용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규칙 내용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법원의 신속한 판단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또 다른 방안으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미국식 증거개시제도(Discovery)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이 피해자 집단 전체의 피해 구제를 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기업의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에서 택하고 있지 않은 미국식 증거개시제도를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에 예외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된다면, 빠른 기간내에 원고들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고, 원고와 피고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소송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원고들의 증거 확보가 용이해진 만큼 피고 회사들이 원고들과 화해의 방식으로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인도 커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고 회사들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제출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증권집단소송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는 미국에서 화해 방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비율이 높은 원인 중의 하나로 증거개시제도의 활성화가 꼽히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15년 한 해 동안 80개의 증권집단소송이 화해 방식으로 종결되었고, 화해 금액도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 해 80건 화해 종결
12년 만에 첫 본안판결이 선고된 후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고, 다양한 개선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첫 본안판결이 증권 거래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의 효율적인 구제와 기업 경영 및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배기완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gwbae@jip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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