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

[이주연 변호사]

2016-08-16     원미선
올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인터넷 자기게시물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이른바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네이버와 다음에서는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을 위한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ECJ, 구글에 삭제 판결

2014년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가 구글에 대해 한 개인의 십 수년 전 채무 관련 기사를 구글 검색목록에서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내에서도 개인의 권리 강화를 위해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견해와, 이미 현행법을 통해 충분히 보호되므로 추가적인 권리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과거 게시물이나 신상정보를 삭제하고자 하는 '디지털 장례' 혹은 '디지털 세탁'이라는 용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프라이버시권과 인격권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EU와 달리 제3자의 게시물에 대해서는 저작권법상 복제 · 전송 중단요청(저작권법 제103조), 언론중재법상 정정 · 반론 · 추후보도청구(언론중재법 제14조 · 제16조 · 제17조),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등의 법적 구제수단이 있다. 하지만 이용자 본인이 게시한 게시물(자기게시물)에 대해서는 회원 탈퇴나 게시판 폐지 등으로 관리권을 상실한 경우 타인의 접근을 배제하고자 하더라도 이를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가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기게시물에 대해, 이용자의 권리 구제를 도모하면서도 표현의 자유 침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자기게시물에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할 책무를 부담한다고 하면서,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이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그리고 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책무 등에 근거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용자 본인의 접근배제요청

이용자 본인이 직접 자기게시물을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예를 들어 회원을 탈퇴하였거나 회원 계정정보를 분실한 경우, 자기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삭제가 불가능한 경우 등), 이용자 본인은 게시판 관리자에게 요청서와 함께 자기게시물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하여 자기게시물에 대한 타인의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후술하다시피 이용자 본인이 직접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경우에는 게시판 관리자가 요청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이용자 본인은 요청에 앞서 우선 자신이 직접 자기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자(死者)가 생전에 게시한 게시물에 대해서도 지정인이나 일정 범위 내 유족이 접근배제를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死者게시물도 요청 가능

게시판 관리자는 요청인이 제출한 입증자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게시물을 요청인이 작성한 게시물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경우 지체 없이 해당 게시물을 블라인드 처리 방식으로 접근배제 한다. 반대로 게시판 관리자는 이용자 본인이 직접 해당 게시물을 삭제 할 수 있거나, 해당 게시물이 자기게시물임이 입증되지 않거나 접근배제 예외기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접근배제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이때 접근배제 예외기준으로는 (1)다른 법률 또는 법령에서 위임한 명령 등에 따라 접근차단 또는 삭제가 금지되어 사업자가 해당 게시물의 보존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2)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예를 들어 공인이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하여 게시한 게시물인 경우, 공직자 및 언론기관 관계인 등이 게시한 게시물이 그 업무에 관한 것으로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게시물 관리자로부터 접근배제 통보를 받은 요청인은 추가적으로 검색서비스상 검색목록에서의 배제를 원할 경우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검색목록 배제를 요청할 수 있고, 요청을 받은 검색서비스 사업자는 캐시 등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검색목록에서 배제한다. 한편 게시판 관리자가 사업을 폐지하였거나 기타 게시물 접근배제가 어려운 경우, 요청인은 곧바로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검색목록 배제를 요청할 수 있고, 이 때 검색서비스 사업자는 요청인이 제출한 증빙자료를 기초로 검색목록 배제 여부를 결정한다. 게시판 관리자는 접근배제 조치시 해당 게시물 자리에 게시자의 요청으로 접근배제 조치를 하였다는 사실을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3자가 알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에 대해 해당 게시물이 접근배제 요청인이 게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게시한 것임을 주장하는 제3자는 이에 대한 입증자료를 첨부하여 접근재개를 요청할 수 있다.

제3자의 접근재개요청

수차례 논의를 통해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일부 사업자들이 동참하게 되었지만, 위 가이드라인의 내용과 구체적인 시행 방안 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기게시물인지 여부와 접근배제 예외기준 해당 여부 등은 요청을 받은 개별사업자가 전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향후 본인확인을 위한 방법이나 자기게시물 여부에 대한 통일적인 판단 주체 내지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있을 경우 종전 접근배제요청과의 충돌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잊혀질 권리 본연에 대한 논의도 안팎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올 7월 초 도쿄고등법원은 한 개인의 체포이력을 구글 검색결과에서 삭제하는 것은 다수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였던 1심을 뒤집고 구글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일본의 사례가 상기 가이드라인에 따른 '공익과의 관련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러한 국제적인 동향 파악과 함께, 우리나라 현행 법제 하에서 충돌하는 여러 법익이 조화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주연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juyoun.lee1@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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