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물증은 없고 금품제공자 진술만 있는 경우의 유죄 선고 요건

[중앙지법] '금품수수' KT&G 민영진 전 사장 무죄"증거 돼도, 진술자의 궁박한 처지 등 살펴봐야"

2016-07-01     김덕성
협력업체와 부하직원 등에게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민영진(57) 전 KT&G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 판결은 특히 물증은 없고 금품을 제공했다는 공여자의 진술만 있는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경우여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상세한 요건을 제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현용선 부장판사)는 6월 23일 "민 전 사장에게 금품을 줬다는 부하직원과 협력업체 측 사람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시,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민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6고합14)

민 전 사장은 지난 2009~2012년 부하직원과 협력업체, 해외 수입상 등으로부터 인사 청탁, 납품계약 유지 등의 명목으로 현금과 고급 외제 시계 등 1억 78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고 연초제조창 공장부지 매각과 관련 청주시 공무원에게 6억여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금품제공자들이 자신의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수사 등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허위로 진술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금품을 주었다는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우선 피고인이 KT&G 생산부문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10월~11월 대전 대덕구 KT&G 임직원 사택에서 생산부문장 산하에 있던 신탄진제조창장 이 모씨로부터 2010년 2월경 있을 임원급 인사에서 희망하고 있던 직책으로의 전보 및 승진 등 인사청탁 명목으로 4000만원을 받았다는 배임수재 혐의.

재판부에 따르면, 민 전 사장의 부하직원인 이 모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출근을 하기 전 아침에 민 전 사장의 사택에 찾아가 벨을 누르고, 탁자 위에 '좀 가지고 왔습니다. 잘 쓰십시오'라고 말하며 검정색 비닐봉지 안에 신문지로 포장한 4000만원을 놔두고 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전에 연락 없이 상당히 어려운 사이(이씨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2단계 위의 상급자로서 친하게 지내거나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었으며 상당히 어려운 사이었다고 진술했다)로서 상급자인 피고인의 집에 출근하기 전 아침 시간에 찾아가 돈을 전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것이고, 이씨는 법정에서 '여러 정황들을 봐가지고 피고인이 계실 것 같아서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피고인이 자고 있다거나 샤워 중이라거나 운동하러 갔을 가능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라고 진술하였는데, 상급자의 집에 찾아가면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금원 제공의 장소와 방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또 구체적인 청탁의 존재 여부와 관련, 이씨는 '신탄진제조창장 다음으로 제조본부장을 하고 싶어서 피고인에게 돈을 준 것이고, 자신이 제조본부장을 하고 싶다는 것은 피고인에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부탁한 적은 없다'고 진술하였으나, "이씨가 제조본부장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는 사정을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4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주면서 '제조본부장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청탁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이씨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사장이 될지 여부가 확실하지도 않은 피고인에게 4000만원이라는 거액의 금원을 공여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타인의 사무처리자의 지위를 취득하기 전에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경우에 배임수재죄로는 처벌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사장이 될 것이 확실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상, 피고인에게 임원급 인사에 관한 권한이 있는 사장으로서 사무처리자의 지위를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앞서 대법원 판결(2010도14487)을 인용, "금품수수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금품수수자로 지목된 피고인이 수수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금융자료 등 객관적 물증이 없는 경우 금품을 제공하였다는 사람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이 증거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어야 하고,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됨, 그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 특히 그에게 어떤 범죄의 혐의가 있고 그 혐의에 대하여 수사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이를 이용한 협박이나 회유 등의 의심이 있어 그 진술의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로 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 등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다른 협력업체 S사 사장의 부인으로부터 협력업체 평가 및 원활한 납품계약 유지 등에 대한 대가로 처를 통해 딸 결혼식 축의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고,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KT&G의 러시아 최대 수입상으로부터 부정한 청탁과 함께 4540만원 상당의 파텍필립 시계를 받은 혐의, 부하직원 등과 공모하여 청주시 공무원에게 모두 6억 6020만원을 준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무법인 율촌과 법무법인 중추, 법무법인 양헌, 조근호, 최순용, 이병훈 변호사가 민 전 사장을 변호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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