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주유기 판매금지 사건

[김용갑 변호사]

2016-06-21     원미선
특허방법 발명과 균등한 범위에 속하는 방법의 실시에 사용되는 물건을 생산 · 판매하는 경우 특허권 침해가 성립할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피고가 생산 · 판매하는 셀프주유기를 사용하여 주유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게 되면, 신용카드 결제방법에 관한 원고의 특허와 균등범위에 속하는 방법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 특허권의 간접침해를 인정한 후, 피고에게 셀프주유기 생산 · 판매의 금지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6. 1. 22. 선고 2014가합552322 판결).

생산 ㆍ 판매 금지 명해

피고가 생산 · 판매하던 셀프주유기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용해 보았을 셀프주유소에 설치된 주유기다. 피고의 셀프주유기에서 신용카드를 읽히고(swipe) '가득주유' 옵션을 선택하면 미리 설정된 금액(예컨대 15만원)이 선승인된 후 주유가 시작되고, 주유 종료 후에는 실제 주유된 금액만큼 재승인 되면서 선승인은 취소된다. 또한 5만원을 주유하겠다고 선택하면 5만원 선승인 후 주유가 시작되는데, 5만원이 다 주유되면 미리 이루어진 선승인만으로 주유 대금이 청구될 뿐 재승인이나 선승인 취소는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이유로든 4만원밖에 주유되지 않으면 4만원을 재승인하고 5만원 선승인은 취소된다.

원고의 특허권은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은 단계를 가지는 카드결제 방법에 관한 것이다(실제 청구항을 쟁점과 관련 있는 것만으로 추려 단순하게 정리하였다).

원고의 특허 출원 전에 이루어지던 선결제 방식의 경우 미리 결제한 금액과 실제 주유 금액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종업원이 나서서 처리하여야 하므로 셀프판매 방식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고, 후결제 방식의 경우는 소비자가 주유 후 결제를 하지 않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원고의 특허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 결제방식 문제점 해결

셀프주유기를 생산 ·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특허의 카드 결제 방법을 그대로 실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피고가 원고의 특허권을 직접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피고가 생산 · 판매한 셀프주유기 제품을 사용하면 원고의 특허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피고가 셀프주유기를 생산 · 판매하는 것은 원고의 특허권에 대한 침해행위를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허방법에 사용되는 물건을 생산 · 판매함으로써 타인의 침해행위를 조장 · 방조하고, 이에 따라 특허권자에게 귀속되어야 할 이익을 부당하게 얻고 있다고 평가되는 경우에까지, 그 물건의 생산 · 판매자가 직접 특허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애써 등록해 둔 특허권을 무력하게 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특허법은 이런 행위를 특허권 침해행위로 간주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특허법 127조 2호). 실무상 이러한 형태의 특허침해행위를 '간접침해'라고 부른다.

특허법에 간접침해 규정

현금결제가 이루어지는 경우 또는 카드결제 시에도 정액 · 정량주유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특허방법이 사용되지 않으나, 법원은 거래금액의 차액이 생겨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 선승인 거래의 취소를 요청하는 구성을 실시할 개연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간접침해를 인정하였다.

이 사건의 다른 쟁점은 피고의 셀프주유기를 사용할 때 실시되는 카드 결제 방법이 원고의 특허방법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렇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경우에도 여전히 간접침해를 인정할 수 있는가가 다투어졌다. 양 방법 사이에 단 한 가지 다른 점은, 피고의 셀프주유기는 소위 'swiping' 방식으로 카드를 읽도록 설계되었는데, 원고의 특허는 카드를 투입하였다가 반환받는 방식으로 카드를 읽는다고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대법, 균등침해 예외적 인정

특허의 모든 구성을 갖춘 경우에만 침해를 인정한다는 것이 특허법의 기본 원칙이고, 통상 이를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All Element Rul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특허발명의 구성 중 일부를 다르게 치환하여 실시하는 경우 특허침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법원은 ①양 발명에 있어서의 과제의 해결원리가 동일하고, ②치환에 의하더라도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동일한 작용효과를 나타내며, ③치환하는 것을 당업자가 용이하게 생각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자명한 경우라는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특허침해를 인정하고 있다(실무상 이를 '균등침해'라고 부른다).

서울중앙지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균등침해를 인정했다. "이 사건 특허발명과 확인대상제품은 모두 예상거래와 실제 거래의 금액 차이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과제 해결원리가 동일하고, 신용카드를 투입하였다가 반환받는 구성에서 이를 읽는 구성으로 변경하더라도 '가상금액 선승인-실제금액 재승인-가상금액 선승인 취소'라는 동일한 작용 효과가 발생하는 점에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중략…이 사건 특허 출원 전부터 신용카드를 사용한 거래에 있어 신용카드를 읽는(swipe) 방식과 투입하는 방식이 모두 공지된 사실이 인정되고, 위 각 구성은 신용카드의 정보입력을 위한 구성부분의 단순한 변경에 불과한 것으로 기술적 효과에 있어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 채택에 어려움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중략…위와 같이 구성요소에 차이가 나는 부분은 균등관계에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러한 구성의 차이만으로 간접침해를 부정할 수 없다."

결국 법원은 피고가 주유기를 생산 · 양도하는 행위가 원고 특허의 간접침해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균등 범위의 간접침해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김용갑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ygkim@kimc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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