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이종혁 변호사]

2016-06-07     원미선
필자가 이전 글에서 소개하였던 '미신고 해외소득 · 재산 자진신고제도'가 지난 3월말로 끝났다. 애초에 법에서 '단 한 번'으로 못 박은 특례였기 때문에, '자수하여 광명 찾을' 마지막 기회가 지나간 것이다. 자진신고 세액은 1500억원 남짓으로, 국세청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약속한 관용조치를 믿지 못하였거나 '신고하지 않고 버텨도 별 탈 없을 것이다'고 생각한 것 같다.

3월말로 자진신고 끝나

기다렸다는 듯이 국세청은 미신고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예고했다. "이제 관용은 없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우연이겠지만 절묘한 타이밍으로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 사건으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파마나에 있는 조세회피전문 로펌의 자료가 언론에 유출된 것이다. 역외탈세 혐의자들의 리스트에는 전 세계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어림잡아 200명의 한국인이 명단에 포함되었다고 하니, 국세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요즘 세금 이슈 중 '역외탈세' 만큼 뜨거운 주제도 없는 듯하다.

과세대상 소득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나라 거주자라면 전 세계를 통틀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건 파나마에서 돈을 벌건 원칙적으로 과세대상 소득은 같다. 그런데 각 나라마다 세법은 모두 다르다. 세금은 국가통치의 근간이므로 그 나라의 실정에 맞게 거두는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간섭할 일도 아니다. 때문에 내가 어느 나라 세법의 적용을 받는지는 큰 차이를 낳는다.

역외탈세와 조세피난처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잔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주체를 조작해서 세금을 낼 나라를 바꾸면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대한민국 거주자라도 세금이 없는 나라에 명목상 회사를 세우고 마치 그 회사가 사업을 하는 것처럼 꾸미면, 대한민국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 된다. 이처럼 소득의 귀속이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조작해서 세금을 포탈하는 행위를 '역외탈세(offshore tax evasion)'라고 부른다.

보통 역외탈세를 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상 세금이 없거나 아주 적은 나라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러한 나라들을 '조세피난처(tax haven)'라고 부른다. 대개 우리가 신혼여행지로 떠올릴만한 아름다운 섬나라들이 많은데, 국제사회에서는 검은돈을 양성하는 어두운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조세피난처를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조세피난처들이 계속 '외로운 섬'으로만 남을 상황은 아닌 듯싶다.

2009년 추적 전담센터 출범

국세청이 2009년 역외탈세 추적전담센터를 출범할 당시만 하더라도, 역외탈세 행위가 문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이전부터 해외에 명목상 회사를 설립해서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절세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다수가 그러한 형식을 취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국세청이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국세청이 거주자의 해외 소득을 찾아 과세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아가 몇몇 대기업 총수들과 업계의 대표적 사업가들이 역외탈세 혐의로 기소되면서, 역외탈세의 위험성이 본격적으로 인식되었다. 어느덧 '기발한 절세방법'에서 '교묘한 탈세수법'으로 인식이 전환된 것이다.

역외탈세라고 하여 제재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탈루된 세액이 확인되면, 그에 대한 세금 및 가산세를 부과한다. 고의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음이 확인되면 조세포탈죄로 처벌한다.

보통 국세청은 외국에 차명으로 재산을 보유하거나 명목상의 회사를 세워 소득을 올린 사실이 확인되면 조세포탈로 고발한다. 법원도 기본적으로 소득의 귀속이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조작하는 경우에 조세포탈죄를 인정한다. 다만 최근의 판례를 보면,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해외에 차명으로 재산을 보유하거나 명목상의 회사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소득을 은닉하려는 행위가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차명행위'와 '적극적인 소득 은닉행위'를 구분하겠다는 취지인데, 기준이 명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밖에도 역외탈세 행위는 해외금융계좌 신고의무 위반에 따른 과태료, 명단공개 및 형사처벌의 제재를 수반한다. 자금 흐름에 관하여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나 재산 국외도피가 문제될 수도 있다. 이렇듯 제재가 매우 무겁고 종류도 많아서, 일단 문제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다.

외국환거래법 등 문제될 수도

조세회피의 리스크로는 결코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대개 역외탈세로 문제된 사람들의 첫 번째 변명은 조세포탈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물론 역외탈세 행위를 시작하였을 때의 분위기로는 그렇게 생각하였을 수 있다. 정부가 특별한 자진신고제도를 마련하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고려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조세포탈범이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 선처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는 지나갔고, 기존의 변명은 통하기 어렵게 되었다. 미신고를 선택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자진신고의 기회를 놓친 미신고자들에게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역외탈세를 엄벌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헛구호는 아닌 듯싶다. 최근 국세청장은 홍콩 국세청장을 만나 역외탈세 관련 공조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한 · 홍콩 조세조약이 국회의 비준을 얻게 되면 금융계좌정보를 포함한 조세정보가 교환될 예정이다. 한 · 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도 올 9월이면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50개가 넘는 국가가 참여한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도 내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 9월 시행

역외탈세는 나라마다 세법이 다르고 정보가 교환되지 않는 틈을 이용한 꼼수이다. 이제 국제사회가 서로 조세조약을 맺고 조세정보를 공개한다면, 역외탈세나 조세회피는 설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파나마 페이퍼' 사건에서 보듯, 역외탈세가 국제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는 범죄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가 확인되었다. 결국 원칙에 충실한 것이 답인 것 같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이종혁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jonghlee@yulch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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