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송 외길 제임스 이 변호사

"합의냐 재판이냐 빨리 결정해 전력투구해야"화이트앤케이스 서울사무소 대표 부임"韓 기업 美 소송 늘면 韓 로펌 역할 커져"

2015-09-14     원미선
"한국 기업이 관련된 미국 내 소송이 늘고 있어요. 그러한 소송에서 한국 기업을 변호해 법적인 위험으로부터 한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것이 화이트앤케이스(White & Case)가 서울사무소를 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화이트앤케이스의 서울사무소 대표로 부임한 제임스 이(James Lee) 미국변호사는 로스쿨 시절부터 소송변호사를 지향, 24년째 소송분야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소송 전문 변호사로 유명하다. 소송 분야를 전문한 변호사가 서울사무소 대표를 맡기는 드문 경우로, 그의 표현대로 한국 기업 등이 관련된 해외 소송과 중재 등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표와 함께 화이트앤케이스 서울사무소에 상주할 마크 굿리치(Mark Goodrich) 영국변호사는 또 건설과 국제중재가 전문분야로, 서울에 진출하는 외국 변호사들의 경력과 전문 분야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 대표는 "로스쿨에 다닐 때부터 변호사, 그것도 소송변호사, 재판변호사를 꿈꿨다"며 "로스쿨 강의도 M&A, 조세 등의 과목은 듣지 않고 나중에 소송변호사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과목에 집중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네소타 로스쿨 국제법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전미 모의재판대회(National Moot Court)에 미네소타 로스쿨팀의 팀원으로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또 미시간대 정치학과 4학년 때인 1985년엔 당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회사에서 해고된 미국인 근로자들이 중국계의 Vincent Chen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과 관련, 미시간주 주지사가 발족한 아시아계 미국인 문제를 위한 자문위원회에서 유일한 대학생 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국제법 저널 편집위원 활동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되어 처음부터 소송 쪽에서만 일했다는 이 대표는 "영업비밀과 특허 등 한국 기업이 관련된 IP 분야와 반독점법 분야의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하고, "한국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발전시키면서 미국 등의 경쟁사에서 한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위 · 과장광고 등 소비자와 관련된 집단소송은 집단소송법이 개정되어 요건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게 20년 넘게 소송 분야에서 활약해 온 그의 의견. 그는 실제로 집단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켜 더 이상 절차가 진행되지 않게 원고들의 청구를 물리친 사건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집단소송은 줄어

휴대폰 충전 후 사용시간이 광고에 나온 내용과 다르다며 휴대폰 구입자들이 몇 년 전 한국의 휴대폰 제조사와 미 통신사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이 대표적인 사건. 원고들은 "배터리 충전시간에 대해 거짓말했다"고 주장하며 해당 모델의 구매자 모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원고들 주장대로 집단소송이 인정되어 구매자 모두에게 배상책임이 인정될 경우 배상액이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는 중요한 소송이었다. 휴대폰 제조사를 대리한 이 변호사는 그러나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휴대폰을 어떻게 쓰는가를 알아야만 제조사가 잘못했는지 여부를 따져볼 수 있는데, 이용자마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조건이 다 다르지 않느냐"며 원고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고 반박, 집단소송 자체를 무산시켰다. 구매자 중엔 충전시간이 광고 내용보다 짧은 휴대폰을 산 사람도 있겠지만, 구매자별로 휴대폰 사용습관이나 사용환경 등이 다른데 이들 모두를 공통된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집단 와해' 전략으로 접근해 휴대폰 제조사의 책임여부를 가리는 본안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소송을 이겨버린 것이다.

"엔지니어, 리서처, 컨설턴트들 하고 함께 검토해서 대응논리를 짰어요. 어떤 사람은 100% 충전해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 쓰다가 다시 충전해 쓰는 등 구매자마다 휴대폰을 충전하는 방식, 사용습관이 다르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송신탑 인근에서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송신탑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추운 곳에서, 또 다른 사람은 더운 곳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등 사용환경도 서로 다를 수 있는 데 이들 모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유형화할 수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지요."

"빨리 해결하는 변호사가 최고"

그는 이어 "오랫동안 소송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니 어떤 변호사가 일 잘하는 변호사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사건을 빨리 해결하는 변호사를 으뜸으로 쳐야 할 것"이라며 "휴대폰 충전시간 집단소송은 이 점에서도 성공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이익을 도모한 사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송이 장기화되었을 경우 승패에 관계없이 거액의 변호사비용과 함께 피고 회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 등 파장이 적지 않았을 텐데 이런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기 때문이다.

이번엔 '불편의 법정지(forum non conveniens)' 이론을 주장해 마찬가지로 재판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원고들의 공격을 막아낸 경우. 서울 강남에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개발이 추진되어 시행사가 미국에 가서 광고도 하고 투자설명회를 열어 분양권을 판매했다. 그런데 이 사업을 벌인 시행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미국의 아파트 분양권 구매자들이 배상능력이 있는 시공사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시행사가 미국에서 투자설명회 등을 열 때 시공을 맡은 한국 건설회사의 직원도 함께 따라가고, 시공사의 이름이 광고 등에 포함되어 있어 시공사에 대한 관할, 책임도 문제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미국에서 재판하면 불편"

시공사를 대리한 이 변호사는 그러나 forum non conveniens 이론을 내세워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소송을 각하시켰다. 그는 시공 중인 아파트가 모두 한국에 있고, 증인, 서류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 이런 소송을 미국에 와서 하는 것은 정말 편리하지 않다고 재판부를 설득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이겼다고 설명했다.

사건의 신속한 해결은 특히 피의자가 구금되어 있는 형사사건에서 더욱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이번엔 2주만에 LA 구치소에 구금된 한국 회사 직원을 풀어낸 사건을 소개했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회로판(circuit board)을 만드는 한국의 한 중소기업체 직원이 F-14 등 전투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미국 회사에 파견되어 접히는 회로판을 만드는 기술에 대해 교육을 받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가 비행기 탑승 전 미 FBI에 체포되어 연행된 사건이다.

이 직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보아서는 안 될, 비밀로 분류된 도면을 보았다는 것. 토요일 저녁이 직원 회사의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 변호사는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 아침 마약범죄자 등 흉악범 등이 함께 수용되어 있는 LA 시내의 악명 높은 구치소를 방문, 구금된 직원을 면담한 후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서 사장과 회사 직원들을 만나 그 직원이 정말 도면을 몰래 보지 않았는지, 몰래 보았다는 해당 도면과 이 회사의 사업과 혹시 관련은 없는지 그 직원을 변호할 자료와 반박할 증거수집에 나선 것. 한국에서 회사 현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공장시설과 관련 서류도 상세히 살펴보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 변호사는 담당 연방검사를 설득, 2주만에 이 직원을 풀어냈다.

"사건에 맞는 대응전략 선택 중요"

이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상당한 성취감을 느꼈던 사건 중 하나"라며 "사건의 신속한 해결엔 무엇보다도 그 사건에 맞는 대응전략의 선택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희망대로 빨리 끝낼 수 없는, 빨리 끝내서는 안 될 사건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빨리 해결하는 게 잘 안되면, 그때는 재판에 가서 이겨야지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해가 더 필요해요. 미국 법원의 재판은 한국 법원과는 다릅니다. 한국에선 몇 주에 한 번씩 재판을 열어가며 상당기간 심리를 진행한 후 결론을 내는데, 미국 재판은 보통 1년씩 걸리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절차가 모두 끝나는 시점에 열려 보통 며칠에서 몇 주간 쉬지 않고 매일 재판을 열어 결론을 내립니다. 변호사의 역할과 실력이 정말 중요하죠."

물론 이 변호사의 소송파일을 들춰 보면 재판까지 가서 이긴 여러 사건을 발견할 수 있다. 몇 해 전 이긴 한국의 유명 웰빙업체인 A사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 그에 따르면, A사가 지금은 미국에서 아주 잘 하고 있지만, 진출 초기엔 미국 내 유통업자(distributor)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등 곡절이 없지 않았다. 제품을 받아 재고는 많이 쌓아놓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던 한 유통업자가 A사가 대금지급을 요구하자 "물건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내가 기대한 만큼 세일즈가 안 된다"고 오히려 계약위반이라고 주장하며 대금을 지급하는 대신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

A사를 대리한 이 변호사는 주법원에 제기된 이 소송을 연방법원으로 옮긴 후 그 유통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연방법원으로 옮긴 것은 모든 것을 규칙대로 진행하고 판단하는 연방법원이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상대방 회사는 합의할 생각이 없는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재판이 본격 진행되었다. 결과는 A사의 완벽한 승소. 이 변호사는 유통업자의 청구를 막아냈음은 물론 유통업자로 하여금 재고를 다 돌려주고 손해배상도 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재고 돌려주고 손해배상하라"

이 대표는 앞으로 한국 기업이 관련된 미국 내 소송이 늘면서 한국 로펌의 역할도 한층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로펌을 직접 선임해서 미국 내 소송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사내 법무조직이 잘 발달된 대기업의 경우는 한국 로펌의 관여 없이 미국 로펌과 함께 소송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대기업은 많지 않다는 게 이 대표의 의견이다.

그는 사건마다 다르다는 전제 아래, "클라이언트가 미국 내 소송에 대한 협조를 다 잘 해주고, 말이 잘 통하고 그러면 꼭 한국 로펌이 관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국 로펌이 가운데 있으면 외국 로펌 입장에서 더 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디스커버리 절차 같은 경우 한국 로펌의 변호사들이 나서서 서류나 자료 등을 클라이언트에게 잘 설명하고 설득해주면 미국 현지에서 소송을 수행하는 미국 로펌의 변호사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미 디스커버리 절차 등에서 한국 로펌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한국 로펌이 비록 직접 미국 법정에 나갈 수는 없더라도 한국 기업의 미국 내 소송에서 한국 로펌이 할 역할이 상당히 많다"고 한-미 로펌의 협업 가능성에 주목했다.

아홉 살에 한국을 떠나 유명 미국 로펌의 서울사무소 대표가 되어 돌아온 그가 한국 기업들에게 조언할 대목은 없을까. 그가 미국에서 소송을 당했을 때의 효과적인 대처방안이라며 중요 순서대로 노하우를 풀어냈다.

'내가 해결한다'는 생각 금물

첫째, 소송이 제기되면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 즉, 변호사를 만나 상의하라는 것. 그는 실무자 중엔 '내가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한 나머지 위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직접 사태수습에 나선다든가 심지어 CEO 중에도 '내가 가서 만나보면 해결할 수 있어'라고 하며 전문 변호사를 찾지 않고 시간을 끌 수 있는데, 두 경우 모두 문제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어 "사람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얘기하고 불리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데 유불리(有不利)를 따지지 말고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변호사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이 시간당 요율로 청구되는 변호사 비용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하나 그가 강조하는 소송 전략 중 하나는 위험(risk)과 가치(value)를 빨리 정확하게 산정해 합의해서 종결할 것인지 아니면 재판에 나가 본격적으로 다툴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정하라는 것. 그는 이어 "이러한 판단을 거쳐 재판이 시작된 후 처음엔 기세등등하게 나가다가 재판이 한참 진행된 후 겁을 집어먹고 끝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합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갈 때는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메일 삭제하면 엄청난 불이익

미국법에서 중요한 디스커버리 절차와 관련해서도 그는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하나는 이른바 디스커버리 홀드(discovery hold). 소송이 제기된 시점 또는 소송이 생길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이메일 등 모든 서류를 있는 그대로 보관하고 삭제해선 안 되는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일종의 증인신문 절차인 데포지션(deposition) 과정에서의 주의사항. 그는 "데포지션을 시작하기 전에 증인에게 '제발 상대방 변호사가 물어보는 것만 대답해주세요'라고 당부하지만 막상 데포지션이 시작되면 증인들이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시작해 이를 컨트롤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당부하고, 한국 기업이 관련된 소송은 특히 통역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통역이 실수하는 경우가 많아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yes라는 대답이 yes가 될 수도 있고, no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캐치하지 못하면, 그래서 기록이 생성된 후엔 바꿀 수가 없고, 나중에 지우고 고치면 재판에 가서 매우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앤케이스의 서울대표로 부임한 이 대표는 물론 이런 자세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미국 내 소송 등의 대응방안에 대해 조언하고, 자문할 것이라고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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