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세금, 관세 이해하기
2015-03-10 원미선
또 국세에 대한 일반적인 규율은 국세기본법에 마련되어 있는데, 관세만 그 적용대상에서 빠져 있다. 관세는 다른 세금과 달리 '관세법'에서 완결된 규율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세는 국세이면서도 전혀 별개의 취급을 받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별종'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관세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친근한 세금이다.
초대 관세청장은 독일인
필자가 업무 차 서울세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청사를 둘러보는데, 1층에 관세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처음 눈에 띈것은 오래된 사진 속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서양인의 모습이었다. 구한말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우리 관세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조선의 초대 관세청장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사진 속의 독일인이었다. 당시 관세는 우리에게 생소한 제도였지만, 세계적으로 관세는 역사가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관세는 영어로 customs(관습)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관습처럼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세는 국경이라는 길목에서 세금을 매겼기 때문에, 일일이 소득과 거래를 포착하여야 하는 다른 세금보다 징세가 편했다. 이러한 이유로 관세는 그 긴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세금으로 여겨져 왔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래 국고를 지탱해 온 1등 공신도 바로 관세였다. 우리나라가 점차 발전하면서 다른 내국세의 세수가 관세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관세청은 매년 60조가 넘는 세수를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매년 60조 이상 책임
관세의 중요성은 세수확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관세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다. 일찍이 경제학자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통해서 교역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밝혔다. 이론대로라면 각 나라들은 비교우위에 있는 물품을 자유롭게 교역함으로써 부(富)를 극대화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외국의 값싼 물품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국가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할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교역은 더 활발해졌지만, 국가는 관세율을 높여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국가는 수입되는 물품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관세율을 책정함으로써, 국민들의 소비를 조정하고 특정 산업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라마다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려 무역장벽을 쌓자, 교역이 제한되었고 결국 불황이 닥쳤다.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관세율을 올리는 것이 서로에게 손해임을 깨달았다. 마침내 국가들은 모여서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합의에 이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인 GATT 협정,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WTO 등이 바로 그러한 합의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 내용이 그대로 우리 관세법에 반영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렇다면 관세는 어떻게 매길까? 우리 법은 '관세율표'를 만들어서 수입되는 물품의 유형을 일일이 구분해 놓은 다음, 그에 대한 관세율을 정해놓았다. 관세율표를 적용하려면 우선 수입 물품을 그 유형에 맞게 분류하여야 하는데, 이 작업을 '품목분류'라고 한다. 이 때 수입되는 모든 물품은 HS코드라는 고유번호에 따라 분류된 후, 그에 따른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세계 공통 품목분류
수입되는 물품의 종류는 무수히 많을 텐데 이것을 미리 정해진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까? 품목분류표를 보면 이 지구상의 모든 물품, 심지어 지구 밖 우주의 물품까지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 주는걸 작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품목분류를 우리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세계의 국가들이 모여서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합의에 따라 공통된 기준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HS코드만 입력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그 물품에 대한 품목분류는 동일하게 취급된다. 품목분류에 따라 관세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수입물품이 어떻게 분류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실제로 품목분류에 대한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해당 세액이 수천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물품의 성질이 애매해서 판단이 쉽지 않으면,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거나 WTO와 같은 국제기구에 의견을 묻기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관세법은 세법 중에서 가장 글로벌(global)하다고 볼 수 있다.
관세 부담 주체는 소비자
지금까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관세법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래도 독자들은 여전히 관세는 수입업자만의 관심사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관세는 간접세이므로 실제로 관세를 부담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소비자들이다. 예컨대 우리가 수입 와인 또는 수입 농산물을 먹을 때 거기에 붙은 관세는 실제로 우리가 부담한다. 뉴스에 FTA에 관련된 소식이 많은데, FTA로 인한 효과 또한 곧바로 소비자들에게 직접 미친다. 예컨대 FTA 체결 이후 수입와인과 농산물에 대한 가격이 하락한 것은 관세 철폐에 따른 효과이다.
더구나 최근 일반 소비자들의 해외직구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제 소비자가 직접 수입자가 되어 관세를 신고, 납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관세를 '몰라도 되는 세금'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이종혁 변호사(jonghlee@yulchon.com)
◇이종혁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USC대 로스쿨(LLM)을 졸업했다. 한국과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며, 글로벌 로펌인 Steptoe & Johnson 워싱턴사무소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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