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에서의 변호사 활용법

[이규화 변호사]

2014-09-15     김진원
"이 변호사, 30분 시간 줄게요. 한번 마음껏 싸워보세요."

국내 대기업을 대리하여 외국기업을 상대로 M&A 계약 협상을 하고 있던 중, 당해 거래의 실무를 총괄하는 PM(Project Manager)인 모 전무님이 필자에게 하달한 명령(?)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상당히 당황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아니 이런 별 것도 아닌 이슈를 가지고 왜 강하게 나가라는 거지? 그리고 무슨 할 말이 많다고 30분씩이나 논쟁을 하라는 거야?' 필자는 그러면서도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말 그대로 열심히 '싸웠었다'. 사실 그 전무님은 당시 그 이슈를 가지고 논쟁을 벌일 생각도 없었고 나름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양보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로 하여금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한 후 나중에 자기가 양보를 하는 형식을 취하며 당해 이슈를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합의를 해 주었다.

나중에 자기가 양보

소위 'good cop, bad cop'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다. 마치 아주 중요한 이슈를 양보하는듯한 태도를 취하며 다른 이슈에서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내는 성과를 올린 것은 물론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분은 변호사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 분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며(필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딜(deal)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그 분과 일한 기간을 아직도 매우 보람찼던 기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에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영화를 관람하지는 않아서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 제목을 보고 '야! 변호사사용설명서라는 안내서를 발간하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게 읽힐 수 있겠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처리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본인들이 수행할 수 없는 소송사건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법률지식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복잡하고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소송절차 때문에 소송전략의 수립 및 절차의 진행을 변호사에게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즉 변호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성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변호사를 선임하여 도움을 받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서 점점 더 어느 변호사를 선임할 것인가 만큼이나 어떻게 변호사를 활용할 것인가도 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M&A의 경우와 같이 수많은 이슈가 헝클어지듯 얽혀있고 변호사뿐만 아니라 회계사, IB 담당자 등등 수많은 관계자가 서로 한 마디씩 관여하는 복잡한 딜을 책임져야 하는 PM의 경우에는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아래에서는 변호사를 활용함에 있어서 필요한 몇 가지 요령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필자 개인의 경험에 따른 의견이므로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해 주기 바란다.

최종 판단은 본인이

우선 최종적인 판단은 변호사가 아니라 내가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M&A 거래를 진행하면서 도움을 주기가 가장 힘든 클라이언트는 변호사에게 무조건 의지하는 클라이언트다. 즉 자기가 결정하여야 하는 사항까지 변호사에게 결정해 달라는 경우이다. 변호사를 그 만큼 신뢰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인정해서 그런 것이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변호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유는 본인이 그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친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선을 본 사람과 결혼할 지 여부를 소개를 한 사람에게 결정하여 달라고 하는 경우라고나 할까?

변호사의 업무가 법률적인 면에서만 도움을 주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적인 지식과 경험에 의거하여 클라이언트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당해 업종에 대한 폭넓은 이해, 클라이언트 회사가 당해 거래에 나서게 된 이유와 목적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이슈를 결정하였을 때 또는 더 크게는 당해 M&A 거래가 성사되었을 때에 클라이언트 회사와 그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하는 등 실무적, 사업적인 면에 대한 고려나 판단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진정한 변호사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판단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변호사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변호사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작은 것도 알려주도록 훈련

그 다음으로, 변호사가 제기한 문제점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변호사들은 법률적인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을 그 업무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찾아낼 수 있도록 훈련을 쌓는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또는 우리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하였을 때 우리 클라이언트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가 변호사들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일단 클라이언트에게 알려주도록 훈련을 받는다. 클라이언트가 소위 'informed decision'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런데 문제는 변호사가 알려준 문제점 중에는 실제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 변호사조차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를 들은 클라이언트가 생각지도 않게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던 변호사마저 당황할 정도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세상일이 그러하듯이 어떤 문제점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존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채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클라이언트가 하늘이 무너질 듯 걱정을 하며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하면 그 거래의 진행이 꽉 막히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한다.

쓸 데 없는 것을 문제라고 제기해서 괜히 거래만 어렵게 만들었으니 책임지라는 상대방(또는 상대방 변호사)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난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변호사가 제기한 문제점이 실제로 발생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이론상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인지(달리 표현하면 발생가능성이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실제로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어느 정도일지, 쉽게 회복할 수 있는 피해인지 복구하기 곤란 것인지, 그 피해로 끝날 것인지 2차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 여러 사정을 확인하여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그만이다.

필자와 M&A 거래를 많이 하였던 클라이언트 한 분은 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슈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핀잔을 주곤 했다.

"Malpratice 피하려고 아무거나 막 문제라고 들이대지 말아요. 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으니 변호사로서의 책임은 다했고 이제 네가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지라는 것 아닙니까. 무책임한 변호사가 능력 없는 변호사보다 더 나빠요."

변호사말 일희일비 금물

그렇다. 그 분의 말이 맞다. 비록 핀잔을 듣기는 하였으나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니 안심이 된다. 그래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변호사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더 문제가 있는 경우는 위의 예들과는 반대로 변호사의 의견과 능력을 존중하지 않고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딜을 진행하거나 변호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소송의 경우와 달리 M&A 거래의 경우 클라이언트 당사자가 변호사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좀 더 낮다. 일반인이 처리하기 어려운 각종 복잡한 법률절차나 법원, 검찰 등 전문성을 갖는 국가기간을 상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앞의 예들과 달리 변호사의 의견이나 문제점 제시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보게 된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거나 내가 도와 달라는 것만 도와주면 되고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라는 태도이다.

물론 그 딜의 책임자는 PM이고 그 결과에 대하여도 자신이 마지막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책임자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여 참고할만한 내용들은 수용한다면 결국 그 이익은 자신과 회사에게 돌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배척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경우에 따라 변호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여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론상 분명이 모순되는 주장을 하게 하면서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경우, 무리한 일정을 요구하며 그 정도도 맞추어 일을 하지 못하냐며 무시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 변호사가 필자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너 이상한 클라이언트 만나서 고생한다. 하긴 나도 그럴 때 있으니 잘 견디어 보아라.' 장부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는 거창한 문구는 아니더라도 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클라이언트라면 조금 무리한 요구라도 관철하려고 애쓴다. 변호사도 사람이다.

오케스트라에 비유되는 M&A

M&A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기도 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수많은 법률적, 실무적 이슈들이 난무하고, 많은 직종의 관여자들이 협상테이블의 위치를 달리하여 논리를 다투고, 그때그때 순발력 있게 처리하여야 하는 문제들이 계속 나오는 M&A 거래는 수많은 연주가가 참여하고 각각 다른 악기들이 여러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기 때문 아닐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각각의 연주자들을 잘 이끌어서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변호사도 연주자 중의 하나다. 훌륭한 법률서비스를 받느냐 아니냐는 변호사에게 보다는 내게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이규화 변호사(kyuwha.lee@leeko.com)

◇법무법인 광장의 M&A팀을 이끌고 있는 이규화 변호사는 한글과컴퓨터 인수, 금호생명 인수, 대우조선해양 매각 자문 등 수많은 M&A 거래를 수행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미 튤레인대 로스쿨(JD)로 유학,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갖췄으며, 국내외 매체로부터 M&A 분야를 대표하는 리딩 로이어로 단골로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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