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할인과 공정거래법
[김철호 변호사]
2014-07-25 김진원
사례 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또 다른 부품을 제조하는 M사는 해당 부품시장에서 점유율이 5% 정도이고, 점유율이 각기 30%, 20%인 상위업체들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M사는 국내 1위 스마트폰 제조사인 X사와의 거래를 뚫기 위해 X사에게 해당 부품을 전량 자사 제품으로 사용하면 1개당 30%를 할인해주겠다고 제안했다. X사는 M사의 기술력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 정도 할인가격이면 자사 제품의 가격경쟁력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A사 점유율 80%, M사 점유율 5%
위 사례들에서 A사와 M사의 가격할인은 공정거래법 측면에서 위법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A사의 가격할인은 위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크고 M사의 가격할인은 그렇지 않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아주 단순화한 결론이고, 실제로는 더 복잡한 분석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두 회사의 가격할인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고, 오히려 M사의 가격할인이 할인 폭이라든가 가격할인 조건 면에서 더 문제일 것 같은데 결론은 그렇지가 않다.
시장 상황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례에서 나타나 있듯이 A사는 경쟁자가 둘 뿐인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80%인 업체인 반면 M사는 수십 개의 업체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5%인 업체이다. 그러한 차이 때문에 A사의 가격할인은 비록 할인 폭이 더 적고 또 경쟁사의 선제적 가격할인에 대응한 측면이 있음에도 문제 될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A사가 단지 시장점유율이 높다거나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은 아니다. 공정거래법이라고 해서 큰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A사의 가격할인이 더 문제되는 것은 A사의 사업규모나 시장점유율 때문이 아니라 A사의 가격할인이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위 사례는 일견 비슷해 보이는 행위라 할지라도 이와 관련된 여러 사정, 특히 그 행위자가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해당 시장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위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공정거래 변호사들이 가끔 받는 질문의 하나가 "우리 물건 값 우리가 깎아주는 것도 문제가 되느냐" 하는 질문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어지간해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항상 괜찮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일리지, 쿠폰도 가격할인의 일종
현실에서 가격할인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가격 자체를 인하하는 것에서부터 물량할인(volume discount), 조건부 할인(가령 수요 전량 또는 일정비율 이상의 구매를 조건으로 하는 할인), 일상에서 자주 목격하는 대형마트의 '1+1 행사', 항공사 마일리지, 커피전문점의 쿠폰까지도 넓게 보면 가격할인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무수한 형태의 가격할인을 공정거래법에서는 어떻게 규율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가격할인은 구매자와 소비자에게 이롭다. 공정거래법의 이념은 단순히 말한다면 소비자가 더 싸고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그런 이념에 부합하는 가격할인은 장려할 일이다. 그래서 경쟁당국은 가격할인에 대해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 문제는 가격할인이 때로는 경쟁자를 시장에서 배제함으로써 경쟁상태를 비경쟁상태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유해(有害)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해할 수 있는 가격할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쉽게 말하면 단독으로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가격할인이다. 앞서 본 첫 번째 사례가 그것이다.
시장지배적 기업에 엄격한 잣대
시장지배적 기업의 가격할인은 일반 기업의 가격할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우선 원가 미만으로 가격을 할인하는 것은 위법행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가 미만으로 가격을 책정한다는 것은 일시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경쟁자를 시장에서 떨구어 내려는 행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할인가격이 원가 이상인 경우라도 일정한 조건이 붙는 경우, 가령 자기 제품만 사주는 조건 또는 일정비율 이상 자사 제품을 사주는 조건으로 가격할인을 해주는 경우에는 그로 인해 경쟁자가 배제될 우려가 있으면 문제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는 물량할인의 경우에도 드물지만 문제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조건부 가격할인, 심지어 경쟁자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공하는 가격할인조차도 가격할인을 안 해주는 것보다는 구매자에게 더 이로운 법인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될까. 시장지배적 기업의 가격할인은 한편으로는 이로운 측면이 있지만 때로는 경쟁자를 배제하는 효과가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후생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앞서 든 사례를 예로 들면, 고객사의 총 수요량이 10만개이고, 그 중 A사와 B사가 각각 80%와 20%를 점하고 있으며, 제품가격은 각기 100원인 상황에서, A사가 고객에게 수요 전량을 자사 제품으로 구매하면 1개당 10%를 할인해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고객사 입장에서 수요 전량을 A사 제품으로 구매하면 총 100만원(10만개 x 10원)의 할인혜택이 생긴다.
50% 할인해줘야 100만원 혜택
이런 상황에 직면한 B사 입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잃지 않기 위해 동일한 100만원의 할인혜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사는 1개당 10%를 할인해서는 부족하고 50%의 할인을 해주어야 한다(2만개 x 50원=100만원). 이는 B사 입장에서는 원가 이하가 될 수도 있어서 정상 경쟁이 어렵고 결국 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말하면, A사의 가격할인은 당장에는 고객에게 이익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점시장을 초래하여 소비자에게 더 불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기업의 가격할인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일반 기업의 가격할인은 경쟁을 제한하는 유해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극히 이례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가격할인이 부당염매, 즉 덤핑 수준에까지 이르는 경우이다. 과거에 종종 문제되었던 '1원 입찰'이나 몇 년 전에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시장점유율 10% 미만이면 안전지대
다른 하나는 배타적 거래를 조건으로 하는 가격할인이다. 그러나 배타적 가격할인조차도 지배적 기업의 가격할인보다는 위법행위가 될 가능성은 훨씬 적을 것이고, 특히 해당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인 경우에는 안전지대(safe zone)에 속할 수도 있다. 일반 기업의 가격할인은 경제적으로 경쟁자를 배제하는 효과를 발생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본 두 번째 사례의 가격할인이 문제 되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가격할인은 매우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그 경쟁효과도 천차만별이어서, 가격할인이 위법하냐 하는 문제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각각의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가격할인이 혹시라도 경쟁당국으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는다면 시정명령, 과징금, 손해배상 등 여러 불이익이 따를 수 있으므로 기업(특히 시장지배적 기업)이 가격할인을 시행할 때는 그 위법 가능성에 대해 미리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가격할인에 대한 규제는 나라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가령 미국에서는 문제되지 않는 똑같은 가격할인이 EU에서는 문제 될 수가 있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의 경우에는 하나의 가격할인 정책이 어떤 국가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위에서 인용한 사례는 실제 사례를 본 원고의 목적에 맞추어 가공한 것이며, 실제 사례의 사실관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철호 변호사(chkim@yoonyang.com, 법무법인 화우)
◇김철호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가로, Intel, Qualcomm, Nike, Infineon, SK, 포스코, 이랜드 등 유수의 국내외 기업을 대리해 카르텔,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기업결합 등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처리했다. 제약과 방송통신 분야에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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