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기 변호사]

파산은 일종의 경제규제

2004-05-20     김진원
파산법은 채무자가 계약상의 채무를 털어 버리고(discharge) 재정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fresh start)하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과 도덕의 원칙을 손상한다는 면에서 판사, 변호사, 채권자를 비롯하여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까지 당혹하게 한다.

아니 판사가 돈을 떼먹으라고 하다니!

일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 체계에서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파산법의 취지를 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므로 다른 곳에서 그 정당화의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산법의 본질은 경제규제(economic regulation)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마치 모든 계약서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채무자는 언제든지 그 선택에 따라 법원에 파산법의 보호를 신청할 수 있고, 그 이전의 채무에 대하여는 그 당시 가진 적극재산의 한도 내에서 채권자 사이에 변제한다”는 약관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계약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은 수도 없이 많다. 최저임금을 정한 규정이 그것이고, 법정퇴직금을 정한 규정이 그것이다. 대기업은 하도급거래에 관하여 심한 규제를 따라야 하고, 약관을 일반적으로 규제된다.

아주 오래 전에 미국 대법원이 취했던 입장(예: Lochner 사건)을 따르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경제규제의 합헌성은 의문을 가질 수 없고, 그 입법목적은 정책적으로도 정당화되는 것이다.

첫째, 노예제도의 방지이다. 기능적으로 고찰하면 자산이 없는 채무자는 노예이기 때문에 인적자본을 해방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둘째, 사회안전망의 부담 경감이다. 사회연대성에 기하여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정당화되는 상황에서 저소득 채무자에 대한 채권의 지속적 행사는 납세자의 부담을 늘린다. 사회보장을 떠받치는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셋째, 내수기반의 확충이다. 현대의 대기업은 대중의 소비를 기반으로 존립한다. 채무자는 대기업 생산물의 수요자로 나서지 못한다.

물론 도덕심에 호소하는 반론도 그럴 듯하다.

그러나, 명분론이 발전해 온 동양에서도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도덕이 밥 먹여주는가? 삼강오륜을 외치고 향약으로 기강을 잡아도 임진왜란이 닥치자 민중은 피난가는 임금에게 돌을 던지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 무렵의 우리 지도자들은 그래도 뉘우치지 못하고, 여진족이 강성하게 되어 중원을 따먹는 현실을 무시하고, 또 의리와 도덕 운운 하다가 대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청나라 군대에 한 번도 맞서 싸우지도 못한 채 그 잘난체하던 임금이 머리통을 땅에 여러번 들이박는 수모를 겪었다.

◇김관기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법학과(법학석사)를 졸업하고, 제30호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민사지법,수원지법, 제주지법 판사 등을 거쳐 1997년부터 변호사로할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미국 버지니아 로스쿨에서 법학석사학위(LL.M.)를 받았으며, 개인파산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단행본으로 "늬들이 카드빚을 갚어" "개인 파산의 이해" 등이 있습니다.

본지 편집위원(sharkguar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