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억대 은퇴금 받기로 한 교역자…교회 결의 거치지 않아 무효"

[중앙지법] "교회 구역회 또는 총회 결의 있어야"

2013-09-26     이은재
교회 설립당시부터 담임목사로 재직한 70대의 교역자가 매달 1000만원의 생활비와 매달 3000만원의 선교비, 6억 7000만원의 은퇴금, 아파트, 차량 등을 교회로부터 받기로 했으나 교회의 구역회나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아 이미 지급받은 생활비 등을 반환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정효채 부장판사)는 8월 28일 L교회에서 오랫동안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은퇴한 김 모(79)씨가 "약속대로 미지급 생활비와 은퇴금 등 15억 6000만원과 향후 매달 생활비와 선교비 4000만원을 지급하라"며 L교회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2011가합14751)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오히려 "원고는 피고에게 이미 지급받은 생활비 등 5억 9000만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김씨는 1968년 1월 L교회의 설립 당시부터 담임목사로 재직하다가 2005년 3월말 퇴임했고, 2005년 4월부터는 김씨의 아들이 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김씨는 은퇴한 후에도 2005년 4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원로목사로서 교회의 운영과 재산관리 등을 총괄했다.

김씨가 퇴임을 앞둔 무렵인 2004년 12월 L교회의 구역회 회의록이 작성되었는데, 그 내용은 김씨가 은퇴한 후 사망할 때까지 매월 생활비로 1000만원, 선교비로 3000만원을 지급하며 그 외에 은퇴금 6억 7000만원과 아파트, 차량을 제공하는 것 등을 결의한다는 것이었다. 2005년 12월에도 김씨의 은퇴 후 예우에 관한 동일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구역회 회의록이 작성되었으며, L교회는 김씨의 담임목사직 퇴임 후 2010년 5월경까지 김씨에게 아파트 매입자금 및 매월 생활비 지급 등으로 이 결의 내용을 이행해 왔다.

그러나 L교회의 3대 담임목사인 B씨의 교역자 자격 여부를 놓고 B씨를 지지하는 측과 김씨를 지지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측으로 나뉘어 분쟁이 일어나 생활비 등의 지급이 중단되자 김씨가 소송을 냈다. 한편 L교회는 김씨를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해 1심에서 구역회를 개최한 적이 없는데도 아파트 매입자금에 교회 자금을 사용하는 등 교회 돈을 횡령했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1심에서 김씨에게 징역 2년 6월이 선고된 가운데 항소심이 진행 중에 있다.

재판부는 먼저 "교회는 일반적으로 권리능력 없는 사단이라고 할 것이므로, 그 재산의 귀속형태는 총유로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교회재산의 권리와 처분은 그 교회의 정관 기타 규약에 의하되 그것이 없는 경우에는 그 소속교회 교인들 총회의 과반수 결의에 의하여야 할 것"이라며, "피고 교회가 소속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헌법으로서 피고 교회에도 적용되는 '교리와 장정'은 교역자의 은퇴와 은급, 즉 퇴직금에 관한 결정을 구역회의 고유 직무로 규정하고 있고, 이는 피고 교회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대한 정관 기타 규약에 준하는 규범으로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 교회가 원고에게 생활비, 은퇴금 및 선교비 등을 지급하려면 위 규정에 따라 구역회의 적법한 결의를 거치거나, 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 교회 구역회의 직무에 속하는 원고에 대한 은퇴금 등의 지급 관련 사항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매번 구역회를 열어 처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기획위원회에 위임하여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교리와 장정에서 교회 재산의 관리와 처분 등의 중요사항을 기획위원회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구역회에서 결의하도록 하고 있고, 구역회의 고유 직무를 기획위원회에 위임하여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기획위원회를 결정기구가 아닌 협의기구로 규정한 취지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피고 교회의 구역회에서 기획위원회에 그러한 사항의 처리를 위임하는 적법한 결의가 있고, 그 위임에 근거한 기획위원회의 적법한 결의가 있으며, 기획위원회에서 결의한 사항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구역회 또는 총회에서 승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는 한, 피고 교회의 적법한 결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L교회의 기획위원회에 원고의 은퇴에 관한 사항의 처리를 위임하는 구역회의 적법한 결의가 존재하였다고 보기 부족하고, 이를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은퇴금 지급 등을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결의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05년 5월 19일자 원고의 은퇴 감사예배 때 은퇴금 지급 등에 관한 결의 내용이 수천 명의 교인 앞에서 공식적으로 공표되었고, 이를 교인들이 동의했다는 원고의 주장과 관련, "당시 참석하지 않은 교인들은 알 수 없는 사항이며, 은퇴 감사예배가 목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되어 직장인들인 일반 교인들의 참석이 불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은퇴 감사예배 시간에 결의 내용이 발표되었다거나 피고 교회의 전 교인들이 이를 동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설령 원고의 은퇴 감사예배 당시 원고에 대한 예우내용의 일부가 공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감사예배가 원고에게 생활비, 은퇴금 및 선교비 등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피고 교회의 총회(당회) 결의를 적법하게 갈음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2004년 12월경 원고에 대하여 은퇴 후 생활비와 선교비 등을 지급하는 것에 대한 피고 교회 일부 장로들의 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후 이 사건 결의 내용과 같은 구역회 회의록에 대하여 공증이 이뤄진 사실이 인정되나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장로들의 결정이 피고 교회 기획위원회의 결의였다고 보기 부족하며, 원고가 주장하는 기획위원회 결의 내용을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피고 교회의 구역회 또는 당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인정할만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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