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 깨닫고 진지해져야"

비행소년에서 소년사건 전담 판사 된 대전가법 고춘순 판사의 비행극복 조언

2013-07-26     김덕성
청소년 시절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며 일탈에 빠졌던 사람이 판사가 되어 비행 청소년의 재판을 맡으면 어떤 심정일까. 올 2월 말 대전가정법원으로 옮겨 소년재판을 맡고 있는 고춘순 판사 이야기다. 그는 대법원이 매달 발간하는 《법원사람들》2013년 7월호에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비행소년 재판에 임하는 소회를 밝혔다.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고 판사는 영월고 2학년때 동강의 둑방 근처에서 자취하며 불량학생들과 어울렸다. 흡연과 음주를 일삼고, 비행친구들이 훔쳐온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다니거나 집에 가서 쌀과 김치를 가져오는 등 장물취득과 무면허운전을 반복했다.

결국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피해자인 오토바이 주인과 마주쳐 어머니가 30만원 정도를 주고 합의해야 했다. 당시 고 판사의 어머니는 "다시는 안 그러리라 믿는다"고 말했을 뿐 별다른 훈계 없이 고 판사를 학교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어 자취방을 정리하고 고 판사를 집으로 데려가 버스로 통학하게 했다. 더 이상 비행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후 고 판사는 강원대 행정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별 탈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고시공부에 뛰어든 것은 대학졸업 이후. 고시원에서 야간총무로 일하는 등 어려운 수험생활 끝에 만 30세 때인 2001년 12월 제43회 사법시험에 최종합격했다. 사시 준비를 하면서 고 판사 보다 3년 늦게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는 등 사시 공부는 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비행을 저질렀더라도 원래 나쁜 아이는 아닐 거예요. 소년들이 기대하는 사회적 욕구나 부모의 사랑 등이 채워지지 않아 일탈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봐요."

고 판사는 "엄정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이 그런 어리식은 일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자각하는 게 필요하다"며, "법정에서도 비행소년들이 자신의 존재, 미래에 대한 가치를 알고 좀 더 생활에 진지해 질 수 있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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