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시아 국제중재의 허브되자"

'국제중재의 날' 행사, 전 세계서 500명 참가"중재센터, 전문인력 확보 등 인프라 갖춰야"

2011-04-12     최기철


"서울이 아시아 국제중재의 허브가 될 것입니다."

지난 3월 4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변호사협회(IBA) '국제중재의 날' 행사장. 동양인으론 최초인 아키라 카와무라(Akira Kawamura) IBA 회장은 국제중재의 날 행사를 유치한 서울의 법률인프라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며 국제소송을 많이 경험하고 있고, 승소 사례도 늘고 있다"고 평가하고, "그만큼 한국의 국제중재 리더십이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힘주어 말했다.

IBA 아시아본부 유치

실제로 오는 11월 IBA의 아시아본부가 서울에 설치되는 등 서울이 아시아 법조의 중심으로 본격 발돋움하고 있다. 서울 아시아본부는 유럽(영국), 남미(브라질), 중동본부(아랍에미레이트)에 뒤이은 IBA의 네 번째 지역 본부. 특히 일본,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 쟁쟁한 후보지를 따돌리고 따낸 쾌거여서 더욱 고무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법조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맨 앞에 등장하는 분야가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국제중재 분야다.

무엇보다도 한국 기업 등이 관련된 국제중재 사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제중재의 날 행사 참가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ICA)의 제이슨 프라이(Jason Fry) 사무총장에 따르면, 2006년부터 5년간 ICC ICA에 제기된 국제중재 사건 중 한국 기업이 관련된 사건은 161건. 중국(124건), 일본(95건)을 큰 차이로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한 해만 해도 당사자수 기준으로 모두 31개의 한국 기업이 관련된 국제중재사건이 ICC ICA에 제소됐다.

31개 한국기업 제소

또 국제중재 분야의 수요 증가에 비례해 이 분야에 특화하려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등 전문가 층이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2011년 서울에서 IBA 국제중재의 날 행사가 열린 게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닌 셈이다. 이번 행사엔 전 세계의 주요 로펌과 국제중재기구 등에서 활약하는 변호사와 전문가 등 약 500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성장과 달리 계약서의 중재약관에서 서울을 중재지로 정하거나 현실적으로 서울에서 중재가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ICC 국제중재 사건을 예로 들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중재지는 싱가포르다. 이어 홍콩도 중재지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ICC 중재 등 국제중재법정의 심리를 맡아 활약하는 중재인 선정에 있어서도 한국인은 여전히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중재인은 '중재의 꽃'으로 불리는 선망의 대상으로, 중재인이 한국에서 많이 나와야 서울로의 중재 유치도 유리하다. 통계에 따르면, 2009년 1년간 ICC 국제중재법정에 선 중재인 1305명 중 한국인은 단 4명에 불과했다.

한국인 중재인 단 4명

ICC ICA의 파리 본부에 1년간 파견근무하기도 한 대한상사중재원의 안건형 차장은 이와 관련, "ICC 국제중재법원의 단골 고객이라고 할 만큼 한국 기업이 관련된 국제중재사건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서울이 중재지가 된 경우는 2010년 1년간 단 1건에 그쳤다"고 지적하고, "외화를 낭비하고, 외국의 중재기관만 좋은 일 시켜주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특히 "한국 기업끼리의 분쟁인데도 싱가포르나 홍콩에 가서 중재심리를 진행하는 한심한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며, "중재 전문가 풀을 확대하고, 하드웨어 등도 보완해 서울을 한시바삐 국제중재의 실질적인 허브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국제중재 사건의 심리를 진행할 경우 어떤 이익이 있을까. 국내 법률시장 등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우선 국내 로펌 등이 더욱 활발하게 대리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 변호사는 "국제중재는 물론 관련 소송이 늘어나게 돼 소송변호사도 바빠지게 되고, 집행재산을 서울에 갖다 놓을 가능성이 높아져 이로 인한 파생적인 수요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사자, 대리인, 증인 등 국제중재에 관련된 여러 사람이 한국을 찾아 서울에 체류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과 숙박 등 부수적인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기업 사이의 국제상사 분쟁의 경우 서울이 중재지로 선택될 여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이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운데다 문화적 전통도 비슷한 점이 많고, 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중국-일본 기업, 일본-미국 기업 사이의 분쟁도 중립적인 지역을 선호하는 국제중재의 속성상 서울이 유력한 중재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00억원 들여

물론 서울이 중재지가 되려면 계약서의 중재조항에 중재지를 서울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당사자인 경우 협상력을 높여 서울을 중재지로 확보해야 하며, 외국 기업간의 계약에선 중재장소로 서울이 선호되도록 중재 허브로서의 서울의 장점을 적극 홍보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와 함께 중재 허브 서울을 겨냥한 여러 인프라가 충족되어야 한다. 자주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싱가포르의 Maxwell Chambers와 같은 국제중재센터의 건립. 싱가포르 정부는 약 400억원을 들여 Maxwell Chambers를 건립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엔 원활한 국제중재 심리를 위한 각종 첨단장치가 마련돼 있다.

또 중재 전문가의 양성은 물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전문인력 풀의 확보 등 소프트웨어에 있어서의 보완이 한층 요구된다는 의견이 많다. 대한변협 등에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런 전제가 충족되어야 서울이 아시아 중재의 허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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