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덕수=민변 탄생에 주도적 역할한 인권변호사의 산실
기업 법무로의 영역 확대 추진 주목…일부 변호사 법무법인 정민으로 독립 곡절도
2004-05-09 김진원
그러나 덕수가 재야법조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은 이런 규모에 비할 바 아니다.
참여정부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법률회사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수의 변호사들은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많은 사건의 대리인이나 형사 변호인이 돼 법정에 나서고 있으며, 참여정부와 직,간접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덕수 출신 변호사들도 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참여정부 들어 덕수의 이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며 사건 수임에 있어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덕수엔 소속 변호사 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덕수의 30년 역사와 구성원들의 면면을 보면 해답은 금방 풀린다.
1970년 창립 이후 인권변호사의 산실
우선 덕수가 인터넷 홈페이지(www.cyberduksu.co.kr)에서 소개하고 있는 연혁을 보자.
1970년 신창동, 석은만, 고재호, 김창규 변호사가 덕수궁 옆 광학빌딩에 사무실을 얻어 덕수합동법률사무소라 이름짓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의 법무법인 덕수의 시초로 덕수궁 옆에 사무실을 열어 이름을 덕수로 지었다고 한다.
덕수 사람들은 서울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지금도 ‘이름이 괜찮은 것 같다’며 덕수라는 이름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이후 덕수는 고영구, 황인철 변호사가 합류한 데 이어 수많은 인권변호사들이 몰려 들면서 재야법조계의 대표적인 인권 법률사무소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덕수의 변호사들은 인권사건, 시국사건의 변호인이 돼 군사독재정권에 맞섰으며, 덕수의 30년 역사는 이른바 인권변호의 그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수에 따르면 73년 4월의 유택형 전 대법관 합류, 87년 3월 최병모 변호사 합류, 89년 9월 이석태, 김형태, 조용환 변호사 (현재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합류, 92년 8월 이돈명 변호사 합류, 95년 2월 김창국 변호사(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합류 등이 특히 주목할 대목으로 꼽힌다.
민변 탄생에 주도적 역할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덕수의 주요 멤버들은 유신 이후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세력을 대변하기 위해 애써 온 우리 법조사의 인권변호사들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탄생과 발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93년 1월 타계한 황인철 변호사는 민변의 2대 대표간사(3대까지는 회장 대신 대표간사제를 유지했음)를 지냈으며, 현재 국가정보원장으로 있는 고영구 변호사는 민변 4대 회장을 역임했다.
또 현재 덕수의 공동 대표인 최병모 변호사는 올 5월까지가 임기인 8대 회장을 맡고 있다. 마찬가지로 덕수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이돈명 변호사는 민변 고문이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활동했던 이석태 변호사는 2002년 4월까지 2년 임기의 부회장을 지냈다.
덕수를 가리켜 ‘민변 계열의 가장 오래된 법률회사’라고 하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덕수와 민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와 위상을 떠나 이들 변호사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보면 이들과 이들이 몸담고 있는 덕수가 변호사 및 법률사무소로서 어떠한 길을 걸어 왔는지를 보다 잘 알 수 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하여 옥고를 치른 적이 있는 이돈명 변호사는 ‘김지하 필화사건’, ‘3.1 구국선언사건’, ‘청계노조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김재규의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 등의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최병모 변호사는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로비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로 이름을 날린 것으로 더욱 유명한데,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법무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등 주요 자리에 여러차례 하마평이 올랐으나 민변 회장 임기 도중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변호사는 지난해 여름 대법관 임명 제청을 앞두고 대한변협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야의 대법관 후보 1순위로 추천되기도 했었다.
그가 처리한 사건중엔 ‘국제그룹해체 위헌소원과 주식반환청구소송’,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관련 헌법소원 및 민사소송’, ‘지하철 노조와 한국방송공사 노조 파업사건’, ‘이영희 교수 방북 취재 계획 사건’ 등이 유명하다.
인천지법 판사를 끝으로 86년 변호사가 돼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환경운동연합 공익법률센터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또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의 특별검사보를 거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천주교 인권위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지난해 이후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송두율 교수 사건’의 주심 변호사로 유명하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른바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도 그가 맡아서 혐의를 벗긴 사건이며,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 방북 사건’, ‘영화법 사전 검열 조항 위헌 결정 사건’ 등도 처리했다.
이들 외에 변호사를 휴업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중인 김창국 전 대한변협회장과 이석태 변호사도 이름난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김 위원장은 ‘이근안 등 김근태씨 고문경관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 변호사로 활약했고,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보안사 윤석양 일병 사건’ 등을 맡아 변호했다.
이석태 변호사는 교육, 환경 분야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2001년 매향리 미군 사격장 소음 피해와 관련하여 국내 최초로 미군측의 환경 오염 책임을 묻는 판결을 이끌어 냈으며, 민법상의 동성동본 금혼 조항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들 선배변호사들에 이어 덕수의 다른 구성원들도 대부분이 민변 소속으로 활동하는 등 선배들의 이런 전통을 이어 가려는 분위기다.
정민가 합쳤다가 최근에 갈라져
주목할 것은 민주화의 진전으로 시국사건, 인권사건에 대한 법률 수요가 줄면서 최근들어 일반 기업 법무로의 영역 확대를 꾀하고 있는 점이다.
최병모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사건 등 시국 사건이 많이 줄어 변호사들도 여유가 생긴데다 사법시험 1천명 시대를 맞아 변호사 업계가 많이 변하고 있다”며 “국내 중견기업, 벤처 기업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업무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97년 법무법인으로 조직을 강화한 데 이어 2001년 6월 기업 · 금융 · 특허 사건을 주로 다뤄오던 정민종합법률 ·특허사무소와 합병, 규모를 키우고 나선 것도 이런 전략과 무관하지 않았다.
신입변호사들을 지속적으로 받아 들이는 한편 고형식, 김진 미국변호사 등 외국변호사를 영입해 가며 영역 확대를 꾀해 왔다.
그러나 정민에서 합류한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주로 기업 관련 일을 많이 처리하던 변호사들이 얼마전 덕수를 떠나 법무법인 정민으로 독립하는 바람에 덕수의 향후 발전과 관련해 또한차례의 고비를 맞고 있다.
문한성, 김병주, 이대순, 허경무, 강지현 변호사와 고형식, 김진 미국변호사 등이 정민으로 독립했는데 이들은 탈퇴전 덕수의 미래 비젼을 놓고 최병모 변호사등 기존의 덕수 멤버들과 이견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민의 한 변호사는 "(나누어 지기 전 덕수의 변호사수가 27,8명으로) 법무법인을 좀 더 키우기 위해선 변호사 수가 40∼50명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와달리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의견도 많았다"며 "이같은 의견 차이가 분리, 독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덕수의 한 변호사는 "구색을 갖출 필요가 있겠지만 변호사 수가 30명을 넘으면 비인간화된다는 생각 때문에 규모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법무법인의 규모 못지않게 기업 관련 사건을 맡더라도 어디까지, 어떤 사건까지 맡아야 하는지 수임 대상의 성격에 관한 고민도 덕수 사람들이 곱씹어 보는 대목이다.
덕수가 그동안 해 온 인권변호의 전통에 비춰 돈이 된다고 무조건 기업 사건을 맡을 수는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최병모 변호사는 “국내 법인을 공격하는 외국 법인을 맡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며 “파트너 회의 등을 통해 심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변호사가 20명 정도로 줄어든 덕수의 규모에서 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속성상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투입돼야 하는 사건은 맡아 처리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대기업등 의뢰인측에서 사건을 덕수에 맡기는 것 자체를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수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 “국내 중견기업이나 벤처기업등이 우리와 궁합이 잘 맞는 의뢰인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함께 덕수가 관심을 기울이는 또다른 분야는 아파트 입주자들이나 노조원들이 관련된 단체소송 분야.
'매향리 사건'을 비롯해 여러 아파트 분양 피해 사건이나 기업체 노조가 관련된 사건 등을 많이 맡아 왔다.
경기 일산의 청구 오딧세이 사건’, ‘충북 제천의 청구아파트단지 사건’, ‘경기 의정부의 삼신아파트단지 사건’, ‘경기 수원 영통의 삼익아파트단지 사건’, ‘경기 김포의 한국종건아파트단지 사건’ 등 IMF이후 부도난 건설회사와 관련된 많은 아파트 단지 관련 사건에서 피분양자 또는 입주민들을 대리했다.
정민과의 합병에 뒤이은 분리, 독립이라는 변화를 겪고 있는 덕수가 앞으로 얼마의 규모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갈 지 다른 법률회사들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