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로스쿨인가

[유승룡 판사]

2004-10-12     김진원
19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논의하면서 시작된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에 대한 개선 논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사법개혁이 거론될 때마다 핵심적인 쟁점으로 등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개선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실패해 사법시험의 합격자 수만 1000명으로 증원한 채 현재까지 기존의 양성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 제도로 인한 문제점은 오히려 증폭되어 법조인 양성제도의 개선이 더 이상 미루어져서는 안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3년 10월에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선을 주요 의제 중의 하나로 삼아 지난 1년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계속해 왔고, 그 결과 지난 4일 제21차 본회의에서 법조인 양성 및 선발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내용의 법학전문대학원제도(이른바 로스쿨 또는 학사 후 법학교육제도)의 도입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했다.

현행 법조인 양성제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지난 수 십년간 유지되어 온 현행 법조인 양성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깊은 반성과 우리나라의 법률문화 및 법학교육의 미래상에 대한 전망이 놓여져 있다. 따라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왜 도입되어야 하는가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제도의 문제점과 그 원인,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법률가 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장기간 수많은 응시생이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사법시험 준비에 매달림으로써 발생하는 국가 인력의 낭비현상이다. 2002년도에 3만146명이 사법시험에 지원해 그 중 998명이 최종 합격, 합격률은 3.61%에 불과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시험 준비기간은 갈수록 장기화되고, 2004년도 사법연수원 입소생의 평균연령은 30.17세로 높아졌다. 여기에 사법연수원에서의 2년 연수과정을 합산하면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평균 32세가 넘어야 변호사로 진출하게 되는 셈이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법조인 양성에 매우 많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탈락하고 사회의 다른 분야로 진출할 기회도 가로막는 결과가 되어 국가 인력의 극심한 낭비 및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되었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대학에서의 법학 및 기타 전공교육의 파행, 부실화 현상이다. 대학에서의 교육과 상관없이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되므로 다양한 법률과목 중 사법시험 과목에만 교육이 집중되고 있고, 그것조차도 시험합격에만 대비하는 고시학원식 교육이 우위를 점하게 됨에 따라 종합 사회과학으로서의 깊이 있는 정규 법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법학 이외의 다른 전공자들도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학습보다는 일찍부터 고시학원을 통한 단편적인 법률지식 습득에 집중하게 되어 대학에서는 법학 이외의 다른 학문분야까지 부실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법학 이외의 학문 분야까지 부실화

다음으로 현행 제도가 과연 전문적이며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 보면 총론적으로 현행 법조인 양성제도는 고비용, 저효율적인 양성체제라고 할 수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특정과목에 편중된 학습과 암기식 학습에 의존해 장기간 수험생활과 법학교육기간을 거치고도 투입 노력 및 시간에 비해 체계적이며 깊이 있는 법률지식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판·검사의 실무교육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는 연수원 교육의 특성상 다양한 분야에 대한 변호사 교육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결국 사법연수원을 수료해도 전문인으로서의 법률가가 양성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여년간 논의가 비록 개선안 마련에는 실패했지만 논의과정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으며, 그 원인 및 개선의 기본방향에 대해서도 상당 정도 근접했다는 점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논의의 성과로부터 도출되는 개선의 기본방향은 ▲첫째 일회적인 시험에 의해 법률가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법학교육, 사법시험, 사법연수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과정’으로서의 법조양성제도가 필요하다는 점 ▲둘째 사법시험이 충실한 법학교육에 따른 소양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자격시험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응시자격 및 응시횟수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점 ▲셋째 그동안 판사, 검사 등 국가 법률공무원의 양성에 중점을 두어 왔으나 앞으로 변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직역에서의 법률전문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 ▲ 넷째 법조인 양성의 주체를 민간으로 이양해 경쟁을 통한 질적 향상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선의 기본 방향성에 기초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이 논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법개혁위원회는 그동안 법조인 양성제도에 관한 개선방안으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시험 응시자격 및 응시횟수를 제한하는 방안 ▲ 형행 법학사 과정을 유지하면서 2년제 법률대학원을 신설하자는 방안 (이른바 4+2) ▲ 국립 로스쿨 (국립법률대학원) 방안 등 여러가지 제안을 검토해왔다.

우선 사법시험제도를 두는 한 출제방식 및 내용을 변화시켜도 법학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시험에 매달리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2년 과정의 법률대학원 수료자에게 법조인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의 경우 입학정원 1만2000명이 넘는 전국 90여개의 법과대학, 한 학교당 평균 10명의 전임교원수, 게다가 10명 미만인 곳도 55개나 되는 열악한 법과대학의 현실에 비추어 자질이 부족한 법률가를 대량 배출하거나 입학자격이 엄격할 경우 제2의 사법시험화되는 문제점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사법연수원 교과과정 개편 방안이나 국립 로스쿨 설립 방안도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다른 방안보다 현실성 있고 우월하다고 판단

비록 최상의 방안이라 할 수 없으나 다른 개선방안의 한계와 문제점에 비추어 볼 때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방안보다 현실성이 있으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월한 방안이라고 사법개혁위원회는 판단했다.

결국 기존 학부와는 분리된 새로운 교육기관을 설립해 법조인 양성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교육기관을 설립하면서 엄격한 교육기준 및 교육과정에 대한 심사, 감독을 통하여 최소한 일정 수준의 법조인 양성을 담보할 수 있고, 법학전문대학원 사이의 자율적인 경쟁에 의하여 교육의 질이 제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다른 이유는 바람직한 법률가 상 또는 법조인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의 법조인 양성체제는 법관, 검사 등 국가로부터 사법작용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이를 실현하는 법률가의 양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변호사는 송무 분야에 국한되어 법관 및 검사를 보조하는 보충적 역할에 한정됐다.

법률가라는 이유로 일정 수준 생활 보장 용납 안돼

그러나 사회의 다원화 및 시장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법관 중심의 전통적인 법률가상 보다는 법률수요에 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법률가(변호사) 즉, 다양한 지식과 폭넓은 경험을 가진 전문가, 송무 이외의 다양한 직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단지 법률가라는 이유로 일정 수준의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용납되지 않으며, 시장주의의 원칙에 따라 끊임없는 자기 계발 및 경쟁을 요구받고 있다.

국가공무원 양성 측면에 중점을 둔다면 시험을 통한 선발제도가 의미있을 수 있으나, 위와 같은 사회의 요청과 전문직업인의 양성 측면에서 볼 때 결국 교육과정을 통한 자격부여라는 제도로 전환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서의 다양한 학부전공 요청과 폭넓은 교양교육은 이후 변호사가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는 기초가 될 것이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시 현재보다 변호사 자격 취득연령이 3~4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어 법률가의 국제경쟁력 및 현실적응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될 경우 변호사 자격 취득이 용이해지므로, 국가 인력의 낭비라는 현행 사법시험으로 인한 폐해는 극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으로 경쟁이 집중되어 입학시험이 제2의 사법시험화될 경우 인력 낭비 현상이 반복될 우려가 있으나, 사법시험제도와는 달리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제도에서 학부성적, 사회 경력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도록 하고,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의 전환을 통해 장기간 대학원 입학에 매달리는 현상을 일정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 수험생활로 인한 국가 인력 낭비 극복

이 제도의 초점은 대학교 학부 졸업시 조기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장기간 무의미한 수험생활에 국가 인력이 낭비되는 현상을 극복하는 데 있고, 이 점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다른 방안보다 우월한 장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될 경우 사법시험의 제약에서 벗어나 법학교육의 다양화, 전문화를 이룰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되고, 대학 학사 과정에서의 학부 교육 또한 학부성적의 중시, 교양 및 수학능력의 평가 등을 통하여 보다 충실화될 것이다.

나아가 법학전문대학원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입학생 선발에서부터 대학원 수료시까지 대학원뿐 아니라 대학원생에게까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요구할 것이며, 이를 통하여 교육의 질과 내용이 심화,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을 결정한 것은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된 법조인 양성 및 선발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로서의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이제 출발의 첫 걸음만을 내딛은 것이며,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기초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의 전체 규모 및 정원, 인가심사기준의 정비, 구체적인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 대학원 입학시험과 변호사 자격시험의 내용 및 시행기관과 평가방법 등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성공적으로 우리나라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학계와 법조계, 행정부 모두의 협력에 기초한 심도있는 연구와 의견수렴이 요청된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할 경우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혜가 모아져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가 우리나라 법률문화의 발전 및 법치주의의 확립에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승룡 판사와 국정브리핑(www.news.go.kr)의 동의를 받아 전재함.

유승룡(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 ·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 판사)